-공정위, 미디어 시장 급변에 합병 빗장 풀어…추가 M&A 등 ‘빅뱅’ 예고
‘글로벌 OTT, 다 덤벼’…통신 3사 체제로 재편된 유료방송
유료 방송 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의 티브로드 합병과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 인수를 각각 승인했기 때문이다. 통신사와 케이블 TV업계 간 합종연횡으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군림하는 국내 미디어 시장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지 주목되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최종 승인 등이 남아 있지만 3년 전 SK브로드밴드-CJ헬로의 기업 결합 불허 판정을 내렸던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으로 강한 추진력을 얻은 셈이다.

◆국내 미디어 생태계 경쟁력 강화

공정위의 인수 조건도 비교적 무난했다는 평가다. 업계는 공정위가 인수·합병(M&A)을 허가하면 ‘교차 판매 금지 규정’을 조건으로 내걸 것으로 예상해 왔다.

SK브로드밴드에서는 티브로드 상품을 팔지 못하고 티브로드 대리점에서는 SK브로드밴드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 같은 고강도 승인 조건은 없었다. 두 회사의 유통망 결합을 통한 효율성 증대, 소비자 편익 등을 고려해 제외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공정위가 이번 M&A를 승인하면서 내건 조건은 5가지다. 우선 케이블 TV 수신료를 물가상승률을 초과해 인상할 수 없다. 기존 8VSB 케이블 TV 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8VSB 케이블TV 가격을 올리거나 디지털 전환을 강요할 수 없다.

8VSB는 아날로그 방송 가입자도 셋톱박스 없이 신호만 변환하면 기존 아날로그 요금으로 디지털방송을 볼 수 있는 방식이다. 또한 케이블 TV의 채널 수, 소비자 선호 채널을 임의로 줄여서는 안 되고 기존 가입자들의 저가형 상품 전환과 계약 연장을 거절하거나 고가형 방송 상품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시정 조치는 2022년까지 3년간 유효하지만 1년이 지나 시장 상황이 바뀌면 사업자들이 조치안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3년 전 SK텔레콤의 CJ헬로 인수를 막았던 공정위가 이번에 승인 결정을 내준 것은 유료 방송 시장 경쟁 상황에 대한 인식과 판단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유료 방송 시장에서 디지털 방송이 대세로 굳어진 점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배영수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방송통신 융합의 시대가 도래했고 주문형 비디오(VOD) 서비스 소비 등 디지털 방송 상품 중심으로 구매 패턴이 바뀌었다”며 “디지털 상품 경쟁 제한성을 보려면 디지털 유료 방송을 독립된 시장으로 봐야 했다”고 말했다.

업계는 공정위의 이번 승인과 관련해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신속하게 대응할 있도록 기회를 주는 취지라고 해석한다.
아직 과기정통부와 방통위의 심사 결과가 남아 있는 상태지만 국내 유료 방송 체질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 만큼 인허가를 내주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의 관심은 어떤 조건이 붙느냐에 쏠려 있다. 공정위가 문제 삼지 않았던 ‘홈쇼핑 송출 수수료’나 ‘알뜰폰 사업 매각’ 등 다양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11월 18일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나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과기정통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할 생각”이라며 “알뜰폰 이야기도 있었지만 (인수합병 심사에 있어) 공정위가 기준으로 생각하는 내용과 과기정통부가 생각하는 기준들은 사실 조금 다르다”고 언급했다

케이블 TV업계 1, 2위가 모두 통신사에 흡수되면서 국내 유료 방송 시장은 통신 3사 경쟁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국내 유료 방송 시장은 KT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해 왔다. 지난해 6월 기준 KT와 KT스카이라이프의 합산 점유율이 31.5%로 독보적인 선두다.

2위인 SK브로드밴드(14.4%), 3위인 CJ헬로(12.4%), 4위인 LG유플러스(12.2%), 5위인 티브로드(9.5%)와 격차가 크다. 하지만 2건의 기업 결합 이후에는 1~3위의 점유율 격차가 좁혀진다. CJ헬로를 품은 LG유플러스는 단숨에 점유율 2위로 뛰어오른다.

◆LG유플러스 2위로 시장 재편

경쟁사들이 바짝 추격하고 있지만 KT는 발이 묶였다. KT는 업계 3위인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했지만 합산 규제 논의에 가로막혀 딜라이브 인수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합산 규제는 유료 방송 가입자 수의 3분의 1(33%) 이상을 확보할 수 없는 법안이다. KT가 딜라이브를 인수하면 시장점유율은 37%가 된다. 이 법은 현재 일몰된 상태지만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와 방통위가 이견을 보이며 국회가 후속 법안을 진행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던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양 부처 간 차관급 정책협의체를 구성, 합산 규제 일몰에 따른 후속 대책인 유료 방송 규제 개선 방안과 관련한 주요 이견을 정리했다.

KT가 만약 다시 딜라이브 인수에 속도를 낸다면 케이블 TV업계 1위, 2위, 3위 기업 모두 통신업계 품에 안기게 된다. CMB와 현대HCN 등 다른 케이블 TV 업체도 M&A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통신사와 케이블 TV가 힘을 합치면서 국내 미디어 시장의 돌파구가 생길지도 기대된다. 최근 국내 미디어 시장은 케이블 TV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고 통신사의 IPTV도 가입자·매출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반면 글로벌 미디어 시장은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글로벌 OTT 서비스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애플·아마존·디즈니·AT&T 등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가 모두 OTT 시장에 뛰어드는 상황에서 국내 업계도 체질 변화와 서비스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5G 기반의 실감형 미디어 서비스 등이 국내 미디어업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 경쟁력을 가진 통신사와 많은 가입자를 보유한 케이블 TV업계가 손을 잡으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황성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이번 M&A와 지분 취득을 통해 5G 환경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통신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축인 미디어 플랫폼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됐다”며 “규모의 경제를 통해 미디어 콘텐츠 소싱, 홈쇼핑 수수료 협상, 해외 콘텐츠 업체들과의 대응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돋보기] 넷플릭스가 일으킨 ‘코드커팅’…국내엔 아직
유료 방송 시장의 정체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등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격전지는 유료 방송 시청자가 가입을 해지하고 OTT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코드커팅(cord cutting)’ 현상이 발생한 지 오래다.

미국 넷플릭스 가입자 규모는 2017년 이미 유료 방송 서비스 가입자 규모를 넘어섰다. 영국 컨설팅 회사인 OVUM은 2022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입형 OTT 서비스 가입자 규모가 유료 방송 서비스 가입자 규모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유료 방송 구독을 끊고 OTT 가입으로 전환하기보다 OTT를 ‘보완재’ 성격으로 가입하는 이가 많다. 국내 유료 방송 가입비용은 미국 등 해외에 비해 저렴한 편이고 인터넷 결합 상품 등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유료 방송 서비스 가입자의 72.2%는 여전히 OTT 서비스 중 유료 방송 서비스를 대체할 서비스가 없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국내 유료 방송업계는 그동안 글로벌 서비스와 협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 왔다. 딜라이브는 2016년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넷플릭스와 라이선스 계약, TV를 통해 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하도록 했다.

통신사들 역시 글로벌 OTT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SK텔레콤은 지난 10월 지상파 3사와 함께 새로운 OTT ‘웨이브(wavve)’를 선보인 뒤 최근에는 미국 컴캐스트와 글로벌 e스포츠 전문 기업을 설립하고 게임 영상 제작과 스트리밍 방송 서비스를 추진해 왔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와 콘텐츠 공급 독점 계약을 하고 IPTV 시장에 공급해 왔다.

국내 유료 방송업계는 그동안 가입자 확보와 시장 점유율 확대에 집중해 왔다. IPTV를 운영하던 통신사와 케이블 TV업계 간 결합으로 통신사가 플랫폼 역량을 확보한 만큼 이제 유료 방송업계의 관심이 ‘콘텐츠’로 옮겨 갈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