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에 대한 소비자 눈높이 높아져…신제품 개발 위해 대기업이 ‘직접 영입’
HMR 급성장에 귀한 몸 된 ‘셰프’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편의점 GS25의 운영사인 GS리테일 내부에는 유명 호텔 출신 요리사(이하 셰프) 5명이 ‘연구원’이란 직급의 정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상품 담당 머천다이저(MD)가 먹거리 신상품을 기획하면 직접 요리하며 쌓아 올린 경험을 활용해 재료 선정부터 레시피 연구, 대량 생산을 위한 최적화 방법, 시제품 양산 등을 계획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식품연구소’라는 조직에 소속된 이들은 99㎡(30평) 규모 주방 형태의 작업장이 일하는 ‘사무실’이다. 상품 기획이 결정되면 이곳에서 끊임없이 조리와 레시피 테스트를 진행하며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최적의 맛을 구현해 낸다.

매달 15개 이상의 신상품을 개발하고 있고 트렌드에 맞춰 리뉴얼한 제품도 포함하면 매년 200여 개의 제품이 이들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들은 전국의 GS25 편의점 등에서 기존 주력 제품인 도시락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정간편식(HMR) 형태로 포장돼 판매된다. GS리테일은 2017년 밀키트(반조리 음식) 브랜드 ‘심플리쿡’을 론칭하고 HMR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레스토랑이나 호텔을 넘어 최근에는 유통 기업들도 ‘셰프 모시기’가 한창이다. HMR 시장이 급성장한 것이 그 배경으로 분석된다.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HMR 시장 규모는 올해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이 급성장하다 보니 여러 기업들이 관련 시장에 진출하며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맛의 차별화 구현이 배경


자연히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맛의 차별화’가 제품 성공의 관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늘어나는 제품에 발맞춰 HMR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도 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만 하더라도 HMR에 대한 인식이 간단하게 한 끼 때우는 식품이었지만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급변했다”며 “점차 제품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이제는 간편하면서도 제대로 된 한 끼를 원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HMR 급성장에 귀한 몸 된 ‘셰프’
이런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셰프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 역시 자체 개발 브랜드(PB)인 피코크를 통해 HMR 시장에 대응 중인데 그 중심에는 역시 셰프들이 자리한다.

이마트는 서울 성수동 본사 9층에 피코크 상품 개발 전담 조직인 ‘비밀연구소’를 구축하고 한식·중식·양식 등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5명의 셰프를 영입한 상태다. 내부적으로는 이들을 피코크를 위해 뭉친 ‘최정예 요원’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한식 상품 출시가 결정되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셰프가 주축이 돼 최적의 레시피를 구현하는 작업에 돌입하는 방식으로 최종 제품을 완성해 낸다. 그렇게 HMR에서부터 조미료·음료·과자·반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피코크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손질된 식재료와 레시피를 담은 ‘밀키트’ 등 HMR 시장의 제품이 더욱 다양화되는 모습인 만큼 필요에 따라 셰프 수를 늘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식품 전문 기업들은 셰프 채용을 늘리고 더 많은 권한을 허용하는 추세다. CJ제일제당을 예로 들 수 있다. 소비자의 다양해진 취향에 맞추기 위해 2011년 푸드시너지팀을 신설하면서 전문 셰프 2명을 채용했는데 최근에는 특급 호텔 경력을 가진 셰프 등을 추가로 영입하며 그 수를 12명으로 늘렸다.

업무에서도 더 많은 역할을 부여했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상품 기획은 마케팅 조직에서 논의하며 결정했다. 상품 출시가 확정되면 셰프들은 단순히 이를 개발하는 업무에만 집중했다.

◆협업 활용한 상품 개발도 봇물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12명의 셰프들이 상품 기획부터 레시피 개발까지 제품 생산 과정 전반에 걸쳐 관여하기 시작했다.

최근 CJ제일제당이 론칭한 밀키트 브랜드인 ‘쿡킷’도 그 결과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HMR 상품 다양화에 대한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그 결과 셰프의 요리 키트라는 의미를 담은 쿡킷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셰프를 영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일반 직원을 채용하는 것과 같은 ‘공개 채용’ 방식이다. 자격 요건에 ‘셰프 경력’을 필수로 지정하고 지원자들을 받아 면접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채용한다.
HMR 급성장에 귀한 몸 된 ‘셰프’
직접 발로 뛰며 셰프를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출시를 염두에 둔 상품을 정한 뒤 해당 분야에서 요리 잘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셰프를 발굴하고 직접 찾아가 채용을 제안하는 것이다.

물론 셰프를 직접 채용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유명 셰프는 높은 보수를 책정해야 하고 다소 맞추기 까다로운 요구 조건 등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또 이들은 기업에 소속되는 것보다 호텔의 ‘파인다이닝’이나 본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운영을 더욱 선호하는 성향도 강하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셰프를 직접 채용하지 않고 셰프와 일시적으로 ‘협업’하기도 한다. 롯데푸드는 올해 ‘쉐푸드’ 제품의 냉동 간편식 라인을 출시하면서 이런 방식을 활용했다.

소고기덮밥과 파스타 등을 새롭게 선보였는데 제품 개발 과정에서 각각 전문 셰프를 섭외해 참여시켰다. 현재 롯데푸드는 내부적으로 상품 개발을 전담하는 셰프가 따로 없다.

특히 활발하게 방송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 셰프’와의 협업은 많은 기업들이 선호한다. 레시피 등을 제공받은 뒤 직접 셰프의 이름까지 걸고 상품을 출시하는 것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다소 비용이 들겠지만 유명 셰프의 이름이 포장에 달리면 소비자들에게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홍보 효과도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는 2017년 9월 ‘잇츠온’이라는 브랜드로 밀키트를 선보이면서 남성렬
(한식)·정지선(중식)과 같은 스타급 셰프들과 협업했다.

제품 전면의 이들의 이름과 사진을 내건 제품들은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지난해 약 345만 개를 판매하기도 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HMR 시장의 급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내년에는 더 많은 HMR 관련 제품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관련 시장에 진출한 식품·유통 기업들의 셰프 영입이나 협업도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6호(2019.12.23 ~ 2019.12.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