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주주대표소송 휘말린 ‘부탄가스 1위’ 태양, 대표이사 책임 인정 판결
[단독] “현창수 태양 대표, 회사에 95억원 배상해라” 법원, 소액주주 손 들어줬다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회사 대표이사가 법령을 위반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5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아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태양의 소액주주들이 현창수 태양 대표이사를 상대로 총 423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제기한 주주 대표 소송에서 1월 10일 법원이 “현 대표(피고)가 95억7600만원을 회사(태양)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95억7600만원은 2015년 태양의 휴대용 부탄가스 가격 담합 행위가 공정위에 적발돼 회사에 부과된 과징금 159억6000만원의 60%에 해당한다.

태양은 ‘썬 연료’로 유명한 썬그룹의 코스닥 상장사로 휴대용 부탄가스 업계 1위 회사다. 상장사인 승일과 비상장사인 세안 등 총 6개의 계열회사를 가지고 있다. 주력 사업인 휴대용 부탄가스 사업은 국내 시장점유율 70% 이상, 세계 시장에서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 대표는 썬그룹 창업자인 현진국 회장의 아들로 23.57%의 지분을 보유해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있으며, 친족인 현정은·현서영과 세안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하면 60.31%다. 현 대표는 태양을 비롯해 핵심 계열사인 승일과 세안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다. 세안은 현창수 태양 대표가 지분 91.12%를 보유한 사실상 개인회사다.

최근 특수 관계 회사인 승일·세안 등과의 내부거래와 가족 경영 체제 등으로 지배구조상 취약점을 드러내 SC펀더멘털 밸류펀드 엘피 등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를 받기도 했다. 이번 주주 대표 소송에는 SC펀더멘털 등도 원고 공동 소송 참가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2015년 썬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태양과 세안이 국내 휴대용 부탄가스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과점 체제에서 2007년 9월부터 2011년 2월까지 2~4위 업체들과 함께 9차례에 걸쳐 제품 출고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공정위에 적발됐다. 세안은 영업 지역만 다를 뿐 태양과 같은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태양의 관계사다. 태양은 과징금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한 바 있다.

이에 윤제선 씨 외 6인으로 구성된 태양의 소액주주들은 2018년 4월 현 대표의 책임을 추궁하는 손해배상의 소를 제기할 것을 회사 측에 청구했다. 상법 제403조에 따르면 소수주주는 대표소송을 제기하기 전 회사에 서면으로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할 것을 청구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이 청구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소를 제기하지 않으면 소수주주는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회사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주주들이 직접 나서 2015년 담합 행위로 태양에 부과된 공정위 과징금 159억 6000만원과 사업기회 유용 금지 등의 명목 263억원 등 총 423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며 2018년 5월 주주 대표 소송을 냈다. 주주 대표 소송은 일정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회사를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사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주주들은 현 대표의 가격 담합 행위로 회사에 거액의 공정위 과징금이 부과됐고, 현 대표가 태양과 동종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 세안을 동시에 경영하면서 휴대용 부탄가스 시장을 분할해 경업금지 의무·사업기회 유용금지 의무 및 충실의무 등 위반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과징금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회사에 대한 현 대표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민사부(재판장 최보원 부장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현 대표의 법령 위반 행위가 매우 중대하고 과징금 역시 회사의 1년 영업이익에 이를 정도로 막대하다”며 “회사뿐 아니라 주주들에게 간접적인 경제적 손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가격 담합 행위로 인해 현 대표가 얻은 개인적 이익이 명확하지 않고 담합 직전에 급감한 영업이익 등이 담합행위 이후 회복됐다는 점 등을 들어 현 대표의 손해배상 책임을 60%로 제한했다. 또 현 대표가 썬그룹의 3개 계열사인 태양·승일·세안의 대표이사를 겸직하며 자의적으로 시장을 분할해 경업금지 의무, 사업기회 유용금지 의무 및 충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주들의 주장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도입 이후 주주 행동주의가 활발해진 가운데 나온 이번 판결을 계기로 주주들이 권리 행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주 행동주의 활성화와 함께 관련 소송이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소수주주 측 소송대리인은 법무법인 창천(채승훈·장선연 변호사)과 한누리가 맡았다. 법무법인 창천 관계자는 “회사 대표이사가 담합 등 심각한 법령 위반행위를 한 경우 주주 대표 소송을 통해 회사가 과징금 상당액을 보전받게 된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향후 주주 대표 소송 등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재계에 확산하고 있는 준법경영 강화 기조와 관련해 “준법경영·준법감시(컴플라이언스)가 전보다 더 강조되고 있는데 이번 판결이 회사 경영자의 준법경영에 대한 인식 제고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9호(2020.01.13 ~ 2020.01.1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