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좋은 딸’ 환상을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야 -언제까지 서로에게 ‘환상’만 가져야 하나
[서평]딸과 엄마는 왜 서로 상처를 주며 살까
◆나는 나, 엄마는 엄마
가토 이쓰코 지음 | 송은애 역 | 한국경제신문 | 1만4800원

[한경비즈니스=최경민 한경BP 출판편집자]이상적인 모녀 관계란 무엇일까. 엄마와 딸의 적정 거리는 어디에서부터 어디 즈음일까. 엄마와의 감정 문제로 힘들어하는 딸이라면 한번쯤 고민해 봤을 법한 문제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친구 같은 모녀’,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하다’는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모녀 관계로 고민하는 딸은 그런 현실에 더욱 힘들어 한다. 이제 막 가정을 꾸리거나 독립한 딸, 사회생활을 하는 딸에게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무심하다’, ‘자기만 안다’라는 비난을 받기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딸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왜 유독 딸만 이런 상황에 자주 노출되는 것일까. 이 책 ‘나는 나, 엄마는 엄마’는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모녀 관계 갈등 속에 젠더 규범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엄마와 딸들이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수수께끼와 같았던 엄마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엄마를 한 여성으로, 딸을 엄마의 부속물이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엄마와 딸의 역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엄마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존재, 딸은 엄마의 좋은 친구라는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특히 모성과 엄마와 딸 간의 관계는 여러 미디어에서 더없이 가깝고 친밀한 사이로 자주 묘사된다. 이런 사회적 환상들은 어린 시절 그런 보살핌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딸 그리고 여건상 아이를 세심하게 살필 수 없었던 엄마에게 결핍감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딸이 엄마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는 것만큼 반대로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다. 그에 대해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서로의 진짜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은 채 서로에게 덧씌워진 환상을 좇으며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말라버린 우물에 연거푸 두레박을 내리지 말고 새로운 우물을 찾으러 떠나기를 권한다. 새로운 우물을 발견해도 엄마와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담백한 엄마에게 어울리는 담백한 관계를 다시 맺을 수도 있다. 나름대로 따뜻한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나, 엄마는 엄마’ 본문 중에서)
이렇듯 오랫동안 모녀 관계 전문가로 수많은 엄마와 딸을 만나온 저자, 단순히 딸의 관점만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 개인의 관점과 교묘하게 숨어 있는 엄마의 사회적 시각 속에서 진짜 자신의 욕망을 찾아내고 이상적인 모녀 관계에 대해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와 관련해 ‘기대를 버려라’, ‘역할을 내려놓아라’와 같은 심리적인 문제부터 ‘엄마와 함께하는 날 정하기’, ‘일관적인 거절하기’ 등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조언까지 이어 간다.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딸에게는 엄마의 불행에 대한 책임이 없다.’
물론 자신의 상황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유형과 딱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심리학적 분석 과정을 통해 딸은 그동안 얽매여 있던 근거 없는 죄책감과 의무에서 벗어나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엄마를 마주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엄마에게서 조금 떨어져 바라볼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