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적자에 오프라인 ‘대수술’ 돌입
-통합 컨트롤타워 만들고 ‘서비스 기업’으로 체질 개선
‘온라인 쇼크’ 우려가 현실로…‘유통 왕국’ 롯데, 200개 매장 닫는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창사 이후 처음으로 경영 초점을 ‘구조조정’에 맞췄습니다.”(롯데쇼핑 관계자)

롯데쇼핑이 2월 13일 ‘2020년 운영 전략’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았다. 오프라인 점포 수를 약 30% 정도 줄이는 것이 골자다.

현재 롯데쇼핑은 백화점과 마트·슈퍼 등 718여 개 오프라인 점포를 운영 중이다. 향후 5년간 수익성이 부진한 200여 개 점포의 문을 순차적으로 닫음과 동시에 적극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하며 추락한 실적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롯데쇼핑이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유통업계 전반에구조조정 바람이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보유 매장 10개 중 3개 폐점


롯데쇼핑이 대규모 구조조정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게 된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 부진 때문이다.

롯데쇼핑이 이날 발표한 지난해 연간 실적은 ‘어닝 쇼크’ 수준이었다.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279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28.3% 감소했다. 매출도 17조6328억원으로 1.1% 줄었고 8536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온라인 쇼크’ 우려가 현실로…‘유통 왕국’ 롯데, 200개 매장 닫는다
실적 부진의 주된 원인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 중인 소비 패턴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2017년 94조1877억원에서 지난해 134조5830억원으로 늘어났다.

자연히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롯데쇼핑은 이런 점포들을 이번에 과감하게 도려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악재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과감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게 된 이유로 꼽힌다.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일부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휴업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올해도 실적 개선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현재 추세로 볼 때 이대로 가다간 올해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롯데쇼핑 역시 더 이상 점포 구조조정을 미루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폐점이 어디에서 얼마나 이뤄질지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수익성이 부진한 점포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한 만큼 사업부문별 실적에 따라 명운이 갈릴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강희태 롯데그룹 유통BU장(부회장) 역시 “롯데가 그동안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점을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해소해 경영 개선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400개 매장을 운영 중인 롯데슈퍼는 가장 많은 점포의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영업손실 1038억원을 기록해 사업부문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온라인 쇼크’ 우려가 현실로…‘유통 왕국’ 롯데, 200개 매장 닫는다
특히 향후 성장 가능성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롯데슈퍼와 같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신규 출점 역시 사실상 막혀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 확대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롯데마트도 대거 폐점이 예상된다. 지난해 영업손실 248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됐다.

특히 롯데마트는 4분기에만 영업손실 227억원을 기록하는 등 적자 규모가 갑작스럽게 큰 폭으로 커지고 있어 규모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헬스 앤드 뷰티(H&B) 매장인 롭스도 당초 규모를 키우기로 했던 계획을 접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확한 실적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CJ올리브영이 계속 성장하며 규모를 늘려 가는 것과 달리 더딘 성장을 이어 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망 가운데 유일하게 실적이 좋았던 백화점은 기존 점포들을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매출이 소폭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2.3% 늘며 선전했다.

◆‘유통 회사’ 아닌 ‘서비스 회사’로 변신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돌입한다. ‘유통 회사’가 아닌 ‘서비스 회사’로 변신해 재도약을 이뤄내겠다는 새로운 목표도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운영 시스템에 변화를 주기로 결정했다. 사업부문 경계를 넘나드는 매장을 구성해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온라인 쇼크’ 우려가 현실로…‘유통 왕국’ 롯데, 200개 매장 닫는다
대략적인 구상은 이렇다. 경쟁력이 낮은 중소형 규모 백화점 식품 매장은 신선식품 경쟁력을 보유한 롯데슈퍼가 자리하게 된다. 또 롯데마트 내에서 운영 중인 ‘패션 존’은 다양한 브랜드에 대한 ‘바잉 파워’를 갖고 있는 롯데백화점 패션 바이어가 직접 기획하고 매장을 만든다.

앞서 단행한 조직 개편 역시 이 같은 구상을 미리 염두에 두고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말 새롭게 조직을 구성하며 강희태 부회장 중심의 1인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전환했다. 또한 ‘통합법인(HQ)’도 신설했다. 강 부회장이 이끄는 HQ는 조직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게 되며 각 사업부는 상품 개발과 영업에만 집중하게 했다.

이전까지 롯데쇼핑은 백화점·마트·슈퍼·롭스·이커머스 등 5개 부문에서 각각의 대표들이 조직을 이끌며 독립 체제로 운영해 왔었다. 내부적으로 각자의 사업에만 집중하는 이런 구조 때문에 롯데쇼핑이 급변하는 유통업계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온라인 강화로 매출 감소 채운다


오프라인 유통은 점포 수에 비례해 매출이 증가하는 구조다. 롯데쇼핑이 200여 개의 점포를 폐점하기로 한 만큼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이를 만회할 ‘대안’이 필요하다.

롯데쇼핑은 계속 규모가 커지고 있는 온라인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공략해 이를 채워 나가겠다는 계획을 짜고 있다.

3월 론칭하는 그룹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 온(ON)’을 통해서다. 롯데쇼핑은 국내 유통사 중 최대 규모로 확보한 고객 데이터(약 3900만 개)를 롯데 온의 운영에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롯데쇼핑은 고객의 소비 패턴 분석을 통해 개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23년까지 온라인몰 취급액을 현재의 약 3배 수준인 20조원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온라인 쇼크’ 우려가 현실로…‘유통 왕국’ 롯데, 200개 매장 닫는다
롯데쇼핑은 200여 개의 오프라인 점포를 정리할 계획이지만 인력 감축 계획은 현재로선 갖고 있지 않다. 롯데쇼핑은 관계자는 “직무 재배치를 통해 기존의 인력들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인원 감축과 같은 인력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롯데쇼핑의 이 같은 행보가 유통업계의 오프라인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 역시 지난해 수장 교체와 함께 야심차게 출점했던 ‘삐에로쑈핑’ 등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한 바 있지만 롯데쇼핑 만큼 사업 조정의 강도가 세진 않았다”며 “롯데쇼핑의 이번 결정이 경쟁사들의 내부 전략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의 상황이 예전만 못한 만큼 정부가 그간 가해 왔던 ‘규제의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롯데쇼핑과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이마트 역시 지난해 4분기 1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마트가 분기 적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2분기(-299억원)에 이어 둘째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 업체들의 실적이 전반적으로 추락하는 상황에서 과거 잘나가던 시절 마련된 휴일 영업시간 제한이나 출점 제한 등에 대한 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4호(2020.02.17 ~ 2020.02.2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