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장세욱 부회장, ‘럭스틸’로 브랜드 시대 열어…고부가 가치 제품으로 신시장 개척
철강 불황 파고 넘는 동국제강의 히든카드 ‘컬러 강판’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철강업계가 글로벌 시황 부진에 철광석 원자재 가격 급등, 중국산 저가 공세, 수요 산업의 부진 등이 겹치면서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겹치면서 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철강업계 3위인 동국제강의 ‘나 홀로 성장세’가 돋보인다.

업계 1·2위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2019년 어닝 쇼크를 기록하며 부진한 실적을 보였지만 동국제강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3.5% 증가한 1646억원을 거뒀다. 고로 제철소를 운영하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주원료인 철광석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은 것과 달리 동국제강은 철 스크랩(고철)을 이용한 전기로를 사용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원가 부담이 줄면서 실적 선방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히든카드가 있었다. 바로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이 주도한 ‘컬러 강판 초격차’ 전략이다.

◆ 2019년 영업익 전년 대비 13.5% 늘어

동국제강은 국내 컬러 강판 시장에서 30%의 점유율을 가진 1위 기업이다. 경쟁사인 KG동부제철은 23%, 포스코강판은 20%를 점유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국내 컬러 강판의 총생산 규모인 227만 톤 중 동국제강이 전체의 3분에 1에 해당하는 연 75만 톤을 생산하고 있다.

동국제강이 컬러 강판을 생산하게 된 배경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철판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한 철판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동국제강은 컬러 강판 시장의 성장성을 간파하고 업계 최초로 부산 공장에서 냉연 강판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1975년 말부터 당시 ‘컬러 철판’이라고 불리던 컬러 강판의 시장 생산 체제에 돌입했다. 컬러 강판 수요가 급증하자 색상 다양화와 양산 체제를 강화해 내수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당시 군부대의 공장, 창고용 건물의 내장재, 셔터류와 아이스박스 등 생활 도구를 제작할 때 컬러 강판이 핵심 원자재로 쓰이면서 수요가 크게 늘자 컬러 강판 시장 확대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철강 불황 파고 넘는 동국제강의 히든카드 ‘컬러 강판’
동국제강의 컬러 강판 사업은 장 부회장이 2010년 당시 동국제강의 자회사였던 유니온스틸 사장에 취임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유니온스틸을 이끌던 장 부회장은 지속적인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그 덕분에 동국제강은 2011년 10월 철강업계 최초로 프리미엄 컬러 강판 브랜드인 ‘럭스틸’을 론칭할 수 있었다.

럭스틸은 럭셔리(luxury)와 스틸(steel)의 합성어로, 화려한 디자인과 완벽한 철강 마감재를 꿈꾸는 건축 디자이너를 위한 고품격 건축 내·외장재용 컬러 강판 제품이다. 럭스틸은 매력적인 패턴과 다양한 색상을 구현할 수 있고 재활용할 수도 있어 비용 대비 효율적인 친환경 소재로도 인정받고 있다. 럭스틸은 국내 유수의 건축 디자이너들이 엄선한 색상과 패턴으로 구성돼 있다. 건축 자재 역할을 넘어 건축 문화의 미학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동국제강의 포부가 담겼다.

당시 동국제강은 내수 시장에서 컬러 강판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국내에 14개의 컬러 강판 생산 회사가 있었고 후발 업체도 속속 등장하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시장 상황에서 장 부회장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다양한 시장 조사를 시작했다.

이때 장 부회장이 고안해 낸 B2D (Business to Designer) 전략은 럭스틸 판매 확대에 한몫했다. 동국제강은 럭스틸을 B2B 마케팅으로 기존 철강 대리점에 홍보하는 대신 B2D라는 새로운 영업 방식으로 건축 설계사와 건축 디자이너들에게 홍보했다.

컬러 강판은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건축 건설용 자재로 시공이 편리하고 다양한 디자인과 질감 표현이 가능하다.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 건축사들이 설계 과정에서부터 럭스틸을 적용하도록 했다.

장 부회장은 컬러 강판의 이런 특성이 기존 석재와 목재·대리석 등을 대체할 수 있는 자재로 건축 문화를 바꿀 제품이라고 확신했다. 기능을 넘어 미학을 추구하는 독보적 제품인 럭스틸 덕분에 동국제강은 고급 건재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다.

최근 건자재와 가전제품의 외관 디자인을 중시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컬러 강판 수요가 늘고 있다. 컬러 강판 시장은 지난해 24조원 규모에서 2024년 3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동국제강은 철강업계에서 유일하게 디자인팀을 운영하는 만큼 디자인에 강점이 있다. 5명의 디자이너가 세계 시장의 철강업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며 가전 기업들과 협업, 디자인하고 있다. 또 타사 대비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어 국가별로 로컬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가전용 컬러 강판(앱스틸)의 고객사인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가전 기업과 글로벌 가전 기업들에 납품 기한을 최소화하기 위해 삼성과 LG의 주요 시장인 멕시코·인도·태국에 코일센터를 설립해 현지에서 필요한 제품을 적기에 공급하는 JIT(Just In Time) 시스템을 구축했다.

건재용 컬러 강판(럭스틸)은 건축 내·외장재와 엘리베이터·방화문 등에 사용된다. 이 같은 컬러 강판의 경쟁력 강화에 힘입어 해외 법인의 실적도 성장세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대양주(오세아니아)는 건재용 컬러 강판 시장, 인도는 가전 시장, 미국은 현지 로컬 메이커에 타사 대비 경쟁력 있는 가격과 서비스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며 “컬러 강판뿐만 아니라 도금 강판, 알루미늄 강판, 마그네슘 강판 등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한 번에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동국제강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철강 불황 파고 넘는 동국제강의 히든카드 ‘컬러 강판’

◆ B2D 전략으로 ‘승부수’ 던져

장 부회장은 형인 장세주 회장을 대신해 2015년부터 경영 지휘봉을 잡고 동국제강의 내실 경영과 체질 개선을 이끌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 회장이 총사령탑 역할을 하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동생인 장 부회장에게 맡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장 부회장은 3월 20일 정기 주주 총회에서 사내이사에 재선임되면서 동국제강을 2년 더 이끌게 됐다. 장 부회장이 내실을 다지고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든 경영 리더십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장 부회장은 이날 주총에서 “글로벌 넘버원 컬러 코팅 기업으로서 컬러 강판 초격차 전략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장 부회장 취임 이후 체질 개선에 굳건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동국제강은 실적이 뚜렷하게 개선됐다. 취임 전인 2014년 20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동국제강은 2015년 영업이익 1936억원을 내 흑자 전환한 뒤 5년간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장 부회장은 그동안 사업 구조 조정을 통해 적자가 지속됐던 후판 사업 비율을 낮추고 컬러 강판 등 수익성이 좋은 고부가 가치 제품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동국제강은 올해 항균 컬러 강판인 ‘럭스틸 바이오’와 가공·시공 솔루션이 더해진 ‘럭스틸 플러스’를 필두로 신규 수요를 창출하고 독자적인 사업 영역을 구축,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71호(2020.04.06 ~ 2020.04.1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