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 강화 시동…대주주 우호 지분 많아 효과 제한적

주식시장의 ‘큰손’ 국민연금공단이 주식 투자를 크게 늘리며 투자 기업의 지분을 확대하고 있지만 순환 출자 등 대주주 우호 지분의 벽에 막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30대 그룹 183개 상장사의 국민연금 투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87개사로, 평균 지분율은 7.98%, 투자 지분 가치는 51조2400억 원에 달했다.

30대 그룹 87개사의 국민연금 평균 지분율은 7.98%인 반면 이들 기업의 대주주 및 특수관계 우호 지분은 37.01%로 4.6배에 달해 국민연금이 의사를 관철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막혀 있다는 것이다.


주총 전 의결권 행사 방향 공개
LG상사를 비롯해 삼성물산·CJ제일제당·SKC·제일모직·LS·LG하우시스·롯데푸드·LG이노텍·현대건설 등에서 최대 주주 혹은 2대 주주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오랫동안 ‘연금 사회주의’로 갈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고 끊임없이 견제돼 왔다. 연금 사회주의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생전에 자주 쓴 용어로, 미국의 기업연금이 주식에 상당 부분 투자하면서 미국 기업들의 지분은 기업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의 것이란 개념이다.

하지만 실상 국민연금이 대주주 일가 및 우호 지분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투자 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10%를 초과하면 단 1주를 매매하더라도 5일 이내에 공시하도록 규정한 ‘10% 룰’이 해제된 지난해 8월 이후 투자 기업에 대한 지분율을 늘렸다. 10% 룰 해제 전인 지난해 상반기에 견줘 투자 기업에 대한 평균 지분율은 0.53% 포인트 높아졌다.
[뭐든지 랭킹] 국민연금 30대 그룹 평균 지분율 7.8%
지난 2월 28일 발표된 ‘2014년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 개정안’의 핵심은 주주권 강화다. 의결권 주체는 기금운용본부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로 새롭게 구성됐다. 기본적으로 기금운용위원회는 의결권행사 지침에 따르고 의결권행사 지침에 따른 판단이 어려운 안건에 대해서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내부에서 결정하게 된다.

국민연금이 목소리를 높이려면 먼저 의결권 내용을 공표하고 소액 주주들도 표를 보탤 경우 파급력이 훨씬 커질 수 있다. 기관투자가 간의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안건을 분석하는 전문 기관을 활용해 주주권 행사를 활발히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결권 행사 후 사후에 이를 공지해 왔던 국민연금은 의결권 행사 방향을 주주총회 전이라도 공개하기로 했고 최근 만도 대표이사 선임 반대안은 주총 이전에 미리 공개됐다. 국민연금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사법적 이유 외에 대표 선임을 반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대표이사 선임을 막지 못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