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회복 뒷받침 트렌드…외식체인·백화점 등 전략 수정

[GLOBAL_일본] 고가 상품 예상 밖 인기…기업들 반색
일회용 종이·플라스틱 포장 용기가 낙양지가(洛陽紙價)다. 중국제의 범람처럼 기술적인 장벽이 없어 경쟁 격화인 업종에서 꽤 예외적이다. 핵심은 디자인이다. 가령 노포기업(이토케이팩산업)의 인기 상품인 종이 식기는 도자기처럼 질감을 살려내 지갑 공략에 성공했다. 업계 상식과 달리 일회용 치고는 부담스러운 고가(1개 100엔) 전략을 내세웠지만 주문 수요가 끝없다. 파티용 혹은 고급 식당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예상 외의 판매 증가가 확인됐다.

유사 사례는 또 있다. 값싼 중국제와의 경쟁에서 밀려 고전하던 안경 업계도 고가 제품 소비 수요가 뚜렷이 늘었다. 돋보기 업체인 니시무라금속이 대표적이다. 회사가 개발한 ‘페이퍼글라스’라는 돋보기는 이례적인 주문 쇄도로 히트 상품이 됐다. 인기 비결은 접는 기능과 2mm의 초박형 기능이다. 그동안 노인용 돋보기는 디자인과 기능성이 빈약해 100엔숍에서 팔릴 만큼 저가 상품의 대명사였다. 반면 페이퍼글라스는 1만5000엔의 초고가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트렌드일까. 1990년대 이후 일본 내수를 괴롭혔던 저가 지향성의 퇴색이 심상치 않다. 여전히 파격 할인이 대세지만 곳곳에서 고가 소비가 먹혀드는 모습이다. 난국 타개를 고민하던 기업으로선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일부 외식체인·백화점 등에서도 고가 상품이 의외로 많이 팔려나가자 고무적이다.


소비 증세 대책 중 유일하게 약발
TV도쿄는 최근 달라진 소비 심리 사례로 차별화된 고가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데 주목해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앞서 소개한 일회 용기와 돋보기는 꽤 특수 사례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소비재에 포커스를 맞춰 이목을 끌어냈다.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외식 업체의 고가 메뉴부터 웬만하면 팔리지 않던 고가 도시락, 슈퍼마켓의 값비싼 자체 상표(PB) 상품 등이 대표적이다.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하나같이 애초의 염려를 깨고 매출 성장의 주역으로 급부상했다.

먼저 외식 업체의 고가 메뉴 실험이다. 주인공은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인 ‘데니스’다. 외식 업체 대형 체인으로 알려진 데니스는 4월 소비 증세 이후 매출 감소가 우려되면서 대폭적인 쇄신 작업에 착수했다. 고민 끝에 나온 대책은 차별적인 가격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4월 1일부터 메뉴의 80%를 개혁해 증세 악재를 피하고 고객의 지갑을 공략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가격 전략의 3대 줄기는 실질 인하, 개량 인상, 고가 주력 등의 메뉴 개발이다. 증세 부담을 덜어주는 실질적인 가격 인하와 제품 용량 등을 개량해 가격을 다소 올리는 전략, 차별화된 가치 추구를 통한 고가 메뉴 개발 등이다. 애초 기대를 걸었던 건 실질적인 가격 인하 전략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역전됐다. 고가 메뉴 전략의 판정승이었다. 4월 매출 상위 10개 중 2000엔을 웃도는 고가 메뉴 등 전략 상품이 2개나 포함됐다. 가령 햄버거만 하더라도 지금까지 대표 상품이던 700엔 전후의 메뉴보다 1000엔에 가깝게 값을 올린 신규 메뉴가 예상외로 호평을 받았다. 390엔이던 팬케이크도 가격을 크게 올린 500엔짜리 신규 메뉴에 매출 주도권을 넘겨주며 굴욕(?)을 당했다. 그 덕분에 팬케이크 판매액은 무려 전년 동월보다 6배나 늘었다. 종래 제품보다 볼륨을 늘리는 대신 가격을 올리는 전략이 받아들여진 덕분이다. 케이크를 6개나 올린 690엔의 꽤 비싼 고가 제품도 덩달아 인기다. 역시 전년 대비 매출이 5% 늘었다. 여세를 몰아 추가로 4종류의 고가 신작 펜케이크도 내놓았다. 또 주문할까 싶던 2000엔 전후의 로스비프스테이크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매출 행진을 기록했다. 고가 전략의 파워를 확인함으로써 회사는 메뉴의 버전 향상을 통해 굳히기에 들어갈 요량이다. 일종의 도박이라고 여겼던 고가 전략이 대박을 낸 격이다.

고가 전략의 힘은 저가 음식의 대명사로 통하는 도시락 업계에서도 확인된다. 역시 고민의 출발은 증세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에서 시작된다. 선수를 친 건 백화점 도시락 매장이다. 원래 도시락은 백화점 지하 매장의 인기 코너다. 직장인 수요를 비롯해 퇴근길 저녁 수요가 꾸준해서다. 다만 증세는 도시락도 비켜가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워낙 가격 저항이 민감한 품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증세에 앞서 4월 이전에 몰렸던 막바지 수요가 끝나고 그 반동으로 이후 매출이 급감할 게 우려됐다. 예고된 악전고투였다. 그런데 다이마루백화점의 도시락 매장은 4월 이후에도 줄곧 호조세를 보였다. 의외의 결과를 가져온 건 고가 도시락으로의 변신 전략이다.


홋카이도에서 신선 재료 공수
열도 관문인 도쿄역에 인접한 다이마루백화점의 도시락 코너는 알짜 매장 중 하나다. 도심 번화가에 여행 인구도 많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역 지하에만 모두 66개의 도시락 점포가 들어섰다. 요즘 이곳 지하 매장에는 개당 1500~2000엔의 고급 도시락이 관심 품목으로 떠올랐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년 매출(4월)을 웃도는 기록을 세우며 증세 장벽을 넘어섰다. 고가 도시락이 팔리는 건 숫자로 확인된다. 고가일수록 잘 팔리는 기현상마저 목격된다. 4월 팔린 도시락의 평균 판매가는 1826엔에 달했다. 전년 대비 21.4%의 상승률이다. 3년 전 매출 순위 상위 5위 중 1000엔을 웃도는 고가 도시락은 2개뿐이었는데 지금은 4개가 톱 5에 들었다. 이 중 3개는 1500엔에 가깝다.

이에 따라 백화점은 집객이 가능한 품목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고급 식자재로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호화로운 고가 도시락 개발에 방점을 찍었다. 가령 일본인이 즐기는 스시 도시락은 홋카이도까지 날아가 각별히 신선 유지에 공을 들인다. 향후 가격 저항에 얽매이는 대신 눈길과 입맛을 돋울 호화 품목을 더 확대·판매할 계획이다. 시범 도시락으로 선정된 털게스시는 3240엔이나 한다. 도시락 하나에 게 2분의 1마리분이 들어간다. 한 마리가 다 들어간 것은 3800엔의 초고가다. 구입 고객은 가처분소득이 높은 직장인 및 고령 인구다.
[GLOBAL_일본] 고가 상품 예상 밖 인기…기업들 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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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도 이례적인 고가 소비에 놀라긴 마찬가지다. 183개 점포의 종합 슈퍼마켓 이토요카도는 최근 주력인 식품 사업의 매출 저하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출점 경쟁 속에 엔저로 심화된 원재료 가격 인상과 소비 증세가 역풍이 됐다. 고민 결과는 차별화된 상품 개발이다. 기술력을 보유한 납품 업체와 함께 특정 가치를 녹여낸 차별화된 상품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가 장인의 수고로 만들어진 새로운 개념의 PB 상품 제안이다. 통상 PB 상품은 대량생산·저가 공급이 주류였는데 이번에 그 상식을 허물었다. 장인 특유의 고집스러운 수고가 들어간 만큼 한정 숫자의 고가 가격이 핵심이다. 고객이 경험하지 못한 맛의 제공이 지향점이다. 비싸도 팔리는 물건을 팔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이를 위해 좋은 상품에는 스토리가 있다는 소구 전략을 채택했다.

시험적인 제품 출시는 예상 초월의 인기 수요로 되돌아왔다. 당초 예상보다 2배 이상 판매됐다. 일례로 콩 찹쌀떡은 오랜 역사의 과자 메이커와 제휴해 고급 재료와 수작업을 고수해 고객의 눈길을 잡았다. 개당 139엔으로 기존 제품보다 2배나 비싸지만 예상을 웃도는 판매액을 기록했다. 기계보다 3분의 1밖에 못 만들지만 절묘한 배합과 힘의 조화를 고집하는 수작업의 장인 정신이 녹아든 결과다. 포장에 37년 베테랑 장인의 미소와 실명을 넣어 신뢰도를 높였다. 가격과 가치의 균형을 중시하는 노인 고객 등에게 특히 인기다. 경기 회복에 힘입어 값이 좀 비싸더라도 고품질과 고가치를 선호하는 고객 집단이 늘면서 회사는 고가 전략을 주력 제품에까지 반영할 계획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