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배송·조사로 명품 끌어내…선반에 쌓아 둔 술 재활용도

[GLOBAL_일본] ‘잠자는 보물’ 중고품 시장의 진화
요즘 일본 거리에 생기가 되돌아 왔다. 예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풍경이다. 고가품을 비롯한 소비 확대가 대표적이다. 작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강력하게 추진된 이(異)차원적인 경기 부양책 덕분이다. 적어도 지표상 회복은 분명하다. 다만 회복의 온기는 차별적이다. 수출·기업 부문의 아랫목은 뜨겁지만 내수·가계는 냉랭하다. 엔저 유도로 되레 수입 물가가 뛰면서 특히 중산층 이하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다.

절약은 현재 진행형이다. 디플레이션을 탈피(물가 인상)해도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소득 증대가 없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86%인 내수 부문은 힘들 수밖에 없다. 소득 증대가 아니면 지출 축소뿐이다. 이 틈새에 등장한 사업 모델이 중고 매매다. 잠자는 보석의 재발견이다. 가구, 전기·전자기기, 일용품 등의 시장 규모가 1조 엔이고 중고차까지 합해 최대 4조 엔 규모의 시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반화된 시장은 아니다. 저항감 등 고정관념과 함께 거래 무대로 이끌어 내는 데 제약이 많다. 고질적인 고민 중 하나는 물건 확보를 위한 루트 발굴이다. 앉아서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거래 전략만으로는 시장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고메효’는 일본 최대의 재활용 점포(Recycle Shop)다. 1947년 나고야에서 중고 의류 판매회사로 창업했다. 중고 명품을 비롯해 귀금속 전시·매매로 전국 체인망을 갖춰 유명해졌다. 백화점처럼 품목별로 많은 제품을 깔끔하게 전시하는 것으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특히 일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다. 외국 손님 유치를 위한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최근엔 엔저 효과가 매출 증대로 연결돼 고무적이다. 2012년 343억 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호성적은 중고 업계의 고질적인 고민거리를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량 확보가 그렇다.


[GLOBAL_일본] ‘잠자는 보물’ 중고품 시장의 진화
통신판매 업체와 제휴해 전국서 물량 확보
중고 시장의 약점 중 하나는 팔리는 물량을 적절히 보유했느냐는 것이다. 고메효도 매입 점포에 별도 대기실을 갖춰 고객 편의를 높이는 등 매도 고객에게 러브콜을 날렸다. 확보 물량의 80%를 이렇게 사들인다. 일부 매장은 매입과 판매를 나눠 전문성을 더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상품 보유는 골칫거리다. 도쿄 10곳을 비롯해 매장 전부가 3대 도시권에 집중된 때문에 접근성이 낮은 데다 내점 고객이 판매 물건을 들고 오지 않는 한 물량 확보가 힘들었다.

자연스레 2013년 8월부터 회원 900만 명의 통신판매 사이트(베루메종넷)와 사업 제휴를 결정했다. 더욱이 의류·잡화·인테리어 전문 통판점인 제휴 상대는 명품 사정에 밝고 관심이 많은 30대 여성이 핵심 고객이어서 상생 효과도 충분했다. ‘잠자는 보물을 팔자’는 슬로건을 내건 양사 제휴 인터넷 매수 서비스(우루라쿠)의 출발이다. 노림수는 통했다. 집 안에 명품 한두 개는 있을 정도로 명품 선호도가 높은 타깃 여성 중 상당수가 동조했다. 배송료와 조사비용을 무료로 해 전국 각지에 묻혀 있는 중고 명품이 속속 집결했다. 매도 고객으로서도 점포 방문 없이 배송만으로 끝나기 때문에 발품을 팔 필요가 없다. 조사 결과와 매도 결정은 전화로 이뤄진다.

선물 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집 안 곳곳에 개봉조차 하지 않은 선물 꾸러미가 상당히 많다. 명절 등의 각종 축일이나 여행 선물로 자주 받는 술이 대표적이다. 그간 술은 음식처럼 중고 거래에는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중고 업계에서도 제외한 품목이었다. 그랬던 게 최근 중고 매장의 유력 품목 중 하나로 떠올랐다. 술을 즐기지 않거나 취향이 맞지 않는 술은 장기간 개봉하지 않은 채 선반에 방치되기 일쑤여서 잠재 물건도 충분했다. 2013년 1호 점포를 오픈한 ‘리커오프’는 순전히 술의 재활용을 모토로 내걸어 눈길을 끌고 있다.

운영 주체(하드오프코퍼레이션)는 중고 매매를 오랫동안 해 온 업체다. 1993년 가전을 주요 품목으로 하는 중고 점포(하드오프)를 오픈한 이후 의류·명품·차량제품·장난감 등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현재는 전국에 약 700개 점포를 보유한 거대 업체로 성장했다. 그런데도 주류 판매는 사실상 실험으로 인식됐다. 특유의 저항감 때문이다. 애초 월 매출을 400만 엔으로 잡았지만 개점 1개월 만에 550만 엔을 웃도는 성과를 냈다. 젊은층을 비롯해 소득수준은 낮지만 술을 즐기는 고객의 니즈를 꿰뚫은 덕분이다.
[GLOBAL_일본] ‘잠자는 보물’ 중고품 시장의 진화
중고차 시장도 고급화·세분화
술도 중고품이기에 물량 확보가 관건이다. 방식은 명품 브랜드 수집 전략과 비슷하다. 중고로 되팔려는 고객이 문의하면 소믈리에나 와인 어드바이저 자격을 보유한 직원이 직접 방문한다. 자택 출장의 품별 조사가 기본이다. 이후 개봉·증류 상태 등 품질을 체크해 가격을 제시한다. 처음부터 물량 확보가 쉬웠던 것은 아니다.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여서 입소문을 내는 게 시급했다. 전단지를 나눠 주거나 대면 영업을 강화하는 등 물량 확보를 위한 광고 홍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방문하기가 힘들면 택배 매수도 받는다. 이때 배송료·조사비용 등은 일절 받지 않는다. 성장성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류 종류가 다양한 데다 와인 애호가 등 취미 인구가 많아 잠재 고객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략 매수 가격의 2~3배에 판매해 마진율도 짭짤한 편이다.

중고 시장 단골 상품인 자동차도 전략 수정에 나섰다. 일본의 중고차 시장은 여느 선진국처럼 사실상 성숙 단계다. 정보 비대칭 때문에 싸고 좋은 중고차는 없다는 ‘레몬 시장(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불완전 판매가 이뤄지는 중고차를 겉은 예쁘지만 속이 아주 신 레몬에 빗댄 말)’의 비유처럼 이대로라면 중고차의 시장성도 의심스러워졌다. 다만 여기서도 블루오션의 틈새는 존재했다. 일본 전역에 421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대형 업체 ‘걸리버’의 차별적인 고객 접근이 빛을 발해서다. 원래 걸리버는 확보한 중고차를 자동차 옥션 무대에 올려 전매하는 사업 모델을 추구했다. 거의 대부분을 옥션 시장에서 판매했다. 일종의 중고차 도매 거래인 셈이다.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영위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런데 최근 전략을 수정했다. 확보 물량을 점포에서 직접 팔기로 결정했다. 매수 전문이던 회사가 판매 위주로 방향을 선회한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는 3대 고객 루트를 제안·확보했다. 중고차별 차량 특징과 고객 성향을 결합해 각각 초고가, 아울렛, 선별 테마 등으로 나눠 고객 세분화를 시도한 것이다. 먼저 초고가는 작년 1호점을 오픈한 고급차 전문점 ‘리베라라’가 중심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춘 점포에는 페라리·포르쉐 등 유명 차량을 충분히 진열한다. 그러자 부유층이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물량을 다수 확보해 비교 승차 후 선택할 수 있도록 시승 서비스도 해준다. 원하는 물건을 찾아 전국 점포에 수배·배송하는 건 기본이다.

‘아울렛’ 점포도 오픈했다. 아울렛은 명칭처럼 인기가 떨어지는 중고차만 전문적으로 저가에 판매하는 매장이다. ‘와우타운’도 재미난 발상이다. 남성 중심의 고객 일변도를 가족·여성 타깃으로 확대하기 위해 중고차 매장을 쇼핑몰처럼 안락하게 치장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