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플레 우려 커져…선진국 통화정책과 엇나가다 화 부를 수도

[이슈 인사이트] 마지못해 금리 내린 한은, 다음 선택은
최근 선진국의 시장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국채(10년) 수익률은 사상 처음으로 1% 이하로 떨어졌다. 이 같은 금리 하락은 단기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안전 자산 선호에 기인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기 둔화를 시사한다.

올 들어 선진국의 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미국의 국채(10년) 수익률은 지난해 말 3.03%에서 8월 15일 2.34%로 하락했고 독일 국채 수익률은 같은 기간에 1.93%에서 0.95%로 추락했다. 독일 국채 수익률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 국채 수익률 역시 사상 최저 수준인 0.5%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금리가 왜 이처럼 하락하고 있을까. 그 답은 우선 지정학적 불안에 따른 안전 자산 선호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와 서구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도 금융시장에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선진국 금리 하락은 성장 둔화 예고
그러나 최근의 금리 하락은 글로벌 경제성장의 둔화 혹은 디플레이션을 미리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태여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피셔 방정식(명목금리=실질금리+예상 물가 상승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장 금리는 미래의 경제성장률(실질금리 대용 변수로 실질경제성장률이 사용된다)과 물가 상승률을 미리 반영한다.

금융시장이 선반영한 것처럼 선진국 경제가 둔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는 올해 1분기 마이너스 2.1%에서 2분기에는 4.0% 성장으로 회복됐다. 기저효과가 작용했지만 미국 경제가 글로벌 경기를 그나마 지탱해 주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 경제는 2분기 경제성장률이 0.7%(전기 대비 0.0%)로 거의 정체됐고 소비자물가는 0.6% 상승에 그쳐 유로존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유로존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독일 경제가 지난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0.2%)한 것은 향후 유로존 경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일본 경제는 소비세 인상의 영향으로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6.8%(연율)로 급락했다. 중·장기적으로 봐도 선진국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가고 있다. 예를 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잠재성장률이 1989~1998년에 연평균 2.8%, 1999~2008년에 2.6%였지만 2009~2013년에는 1.6%로 급락했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3% 안팎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2% 정도로 떨어졌고 유로존의 잠재성장률은 2%대에서 1% 이하로 추락했다.

보다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가 아직도 잠재 성장 능력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다는 것이다. OECD에서 추정한 아웃풋 갭(Output Gap:잠재와 실제 GDP의 차이)이에 따르면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선진국 경제가 3.8%나 능력 이하로 성장했다. 실제 국내총생산(GDP)이 잠재 GDP보다 그만큼 낮았다는 것이다. OECD는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까지도 선진국 경제가 능력 이하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의 중앙은행이 천문학적인 돈을 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이슈 인사이트] 마지못해 금리 내린 한은, 다음 선택은
중·장기적으로 세계경제 성장 축이 선진국에서 신흥 시장으로 이전되는 과정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2년에는 33%(미 달러로 표시 GDP 기준)에서 2013년에는 23%로 떨어졌지만 중국 비중은 같은 기간 4%에서 12%로 상승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신흥 시장도 성장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OECD에서 작성하는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2013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선진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였지만 중국 등 신흥국 경제는 둔화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화 가치 급등·수출 경쟁력 악화 가능성
신흥국 중에서도 중국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 OECD가 발표하는 중국 경기선행지수가 하락세를 멈추고 5월부터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추세적 상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중국 경제가 구조조정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는 1979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한 이후 2009년까지 연평균 10%에 가까운 매우 높은 성장을 달성했지만 2010년 이후로는 성장률이 7%대로 떨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잉투자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대부분의 산업이 초과 공급 상태로 기업이 부실해지고 이들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의 부실도 쌓이고 있다. 게다가 그림자 금융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고 부동산 가격의 거품도 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이런 구조조정 과정에서 무작정 경기를 부양할 수 없다. 지난 7월 총통화(M₂) 증가율이 13.4%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고 신규 위안 대출 및 사회 융자 총액(은행 대출과 장부 외 대출, 채권 및 주식 발행을 포함)은 더 급격하게 감소했다. 특히 7월 사회 융자 총액이 2731억 위안으로 금융 위기 발생 직후인 2008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직까지 중국 경제가 통화정책에 민감한 것을 고려하면 단기 경기 사이클상으로도 중국 경제 회복세가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근 선진국의 시장 금리 하락은 경기 둔화, 나아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미리 반영하고 있다. 또한 시장은 선진국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통화정책을 계속 팽창적으로 운용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내년 중반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은 또 다른 양적 완화를 단행하면서 돈을 더 풀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경기가 둔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품 논쟁이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는 선진국 주가가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은행은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통화정책 방향’ 보도 자료를 보면 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마지못해 금리를 내린 느낌을 준다. 수출이 호조를 지속하고 마이너스 GDP 갭이 축소되고 있어 금리를 인하할 상황은 아니지만 ‘세월호’ 사고의 영향 등으로 경제 주체들의 소비 및 투자 심리가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여 금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선진국을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잠재 능력 이하로 성장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큰 상태다.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한국 경제도 2009년부터 최근까지 여전히 잠재성장률 이하로 성장하고 있다. 선진국이 통화정책을 팽창적으로 운용하면서 저금리를 유도하고 있는데 한국만 상대적으로 긴축하면 선진국과의 금리 차이가 더 확대되고 원화 가치는 상승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GDP 대비 6.1%로 매우 높았기 때문에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환율 보고서에서 원화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올해도 경상수지 흑자는 작년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통화정책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으면 원화 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하고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