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부족발 장기 부진 우려, 중국 과잉투자 해소·미국 주가 거품 난제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각 연구 기관에서 내년 경제 전망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여기서는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영향을 줄 몇 가지 글로벌 이슈에 대해 살펴봤는데, 이로 미뤄 보면 ‘2015년 한국 경제’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분기별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를 낸다. 지난주 발표한 4분기 경제 전망에서 IMF는 올해 세계경제가 3.3% 성장한 후 내년에는 3.8%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 4월 전망치보다 각각 0.1% 포인트와 0.2% 포인트씩 낮춘 것이다. IMF는 또한 금융과 지정학적 위험이 증가하면서 내년 경제성장률이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기업·가계·정부 모두 수요 창출 한계
IMF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은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일본과 유로존 등 다른 선진국 경제에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심화되고 이머징 마켓의 회복세도 더디기 때문이다. 특히 IMF를 포함한 많은 연구 기관은 소비와 투자 등 유효수요 부족으로 세계경제가 장기간 침체되는 ‘수요 부족발 장기 부진(secular stagnation)’을 우려하고 있다.

유효수요는 정부뿐만 아니라 가계와 기업이 창출할 수 있다. 우선 정부부터 살펴보자.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각국(특히 선진국 정부)이 지출을 늘리면서 경기를 부양했다. 이에 따라 경기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정부가 부실해졌다. 2013년 일본의 정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25%에 이르렀고 미국 정부 부채도 GDP의 100%(2013년 104%)를 넘어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이 110%일 정도로 다른 선진국 정부도 부실해졌다. 더 이상 정부가 수요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증거다.

가계도 유효수요를 창출하기에는 버거운 상태에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가계의 과소비였다. 예를 들면 미국의 가계 부채가 가처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에 80% 안팎이었지만 2007년에는 130%까지 올라갔다. 1990년 중반 이후 정보통신 혁명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미국 경제가 고성장과 저물가를 동시에 달성했다. 이를 한때 ‘신경제’라고 표현했는데, 가계가 신경제를 지나치게 낙관하고 과소비를 했던 것이다. 현재 소득뿐만 아니라 미래 소득(은행 대출)을 앞당겨 파티를 즐겼던 미국 가계가 이제 부채를 줄여 가고 있는 실정이다. 유로존과 일본의 소비는 더 침체돼 있다. 1995~2012년에 미국의 소비 증가율이 분기 평균 0.7% 증가했지만 2013~2014년 2분기에는 0.6%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동안 유로존의 소비 증가율도 0.3%에서 0.2%로 떨어졌고 일본은 0.2% 증가에서 0.4% 감소로 전환됐다.

정부와 가계 이외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경제 주체는 기업이다. 세계경제에 디플레이션 압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기업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릴 상황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디플레이션 갭은 실제 GDP와 잠재 GDP의 차이로 측정하는데, OECD는 2014년 선진국의 디플이션 갭을 마이너스 2.3%로 추정하고 있다. 2009년 마이너스 3.8%에 비해 축소됐지만 아직도 선진국 경제가 능력 이하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플레이션 갭이 해소되려면 수요가 증가하든가 공급 능력이 축소돼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부와 가계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공급 능력이 축소돼야 한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5~2012년에 세계 GDP에서 총저축과 총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3% 정도로 거의 같았다. 그러나 2013년 이후 총저축률이 투자율을 1% 포인트 정도 앞서가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서 공급과잉으로 기업이 투자를 상대적으로 줄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슈 인사이트] ‘빨간불’ 켜진 내년 전망…곳곳이 지뢰밭
선진국 경제가 수요 부족으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상황에서 신흥 시장 경제도 고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한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떨어지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매년 10% 가깝게 성장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 다음 해 세계경제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마이너스 성장했지만 중국 경제는 투자 중심으로 10%라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문제는 과잉투자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고정 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이후 48%를 넘어서면서 경제성장을 주도했지만 수요 부족으로 투자를 많이 했던 기업이 부실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는데, 중국도 앞으로 3년 이내에 그런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


엔저, 1~2년 시차로 한국 수출에 타격
한국 경제는 1997년, 2008년 국내외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높은 환율과 함께 수출 중심으로 성장했다. 예를 들면 한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에 35%였지만 2012년에는 56%(2013년에는 54%로 하락했지만)까지 올라갔다. 이 기간에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1%에서 26%까지 급등했다. 한국 경제가 중국의 높은 성장 과정에서 수출로 혜택을 봤던 것이다. 그러나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2015년 한국 경제의 주요 특징과 경제 전망’, 2014년 10월)에 따르면 중국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하락할 때 한국의 전체 수출 증가율은 1.7% 포인트, 경제성장률은 0.4% 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4분기 이후 엔화 가치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2012년에 78엔까지 떨어졌던 엔·달러 환율이 최근 110엔을 넘보고 있다. 앞으로 미일 경제 상황을 보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분석해 보니 엔·달러 환율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가 일본과 미국의 본원통화 상대 비율이었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올해 10월에 양적 완화를 종료하고 내년 하반기에는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본 경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지속된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기 위해 돈을 더 찍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07년 이후 통계로 분석해 보면 일미 본원통화와 엔·달러 환율 사이에는 상관계수가 0.83으로 매우 높았는데, 앞으로 일본이 미국보다 돈을 더 풀면서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엔화 가치 하락은 1~2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한국 수출을 감소시켜 왔다. 일본 기업은 엔 약세로 수출 단가 인하와 함께 물량 확대로 대응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원당 100엔 환율이 2014년 평균 990.7원에서 2015년 950원으로 하락할 때 내년 한국 총수출은 4.2%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금융시장 여건 하나를 보자. 선진국 경제 중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한 나라는 미국이다. 2014년 2분기 현재 미국 GDP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이었던 2008년 2분기보다 7% 증가했다. 한때 10%를 웃돌았던 실업률이 지난 9월에는 5.9%까지 떨어졌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부터 미국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주가가 경기에 비해 너무 빠르게 올랐다. 그래서 미국 주식시장에서 거품 논쟁이 일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미국 주가와 산업 생산은 같은 방향으로 변동해 왔다. 그러나 산책 나온 개(주가)가 주인(경기)을 너무 앞질러 가고 있다.

필자가 추정해 봤더니 2014년 8월 현재 미국 주가는 산업 생산에 비해 24% 정도 과대평가됐다. 미국 주가가 이 정도로 과대평가된 것은 정보통신 혁명으로 거품이 발생했던 2000년 초반 이후 처음이다. 연방기금 금리를 거의 영(0) 퍼센트로 내리고 세 차례에 걸친 양적 완화로 풀렸던 대규모의 돈이 주식시장에 거품을 만들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속 빈 물방울은 터질 것이다. 2015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시장은 미국 주가 거품이 붕괴되면서 또 한 번의 심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