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둔화·셰일가스 등 악재 산적…75달러를 바닥으로 박스권 가능성

[이슈 인사이트] 추락하는 국제 유가, 바닥은 어디일까
지난 6월만 해도 배럴당 107달러(WTI 기준)까지 갔던 유가가 조금씩 떨어지더니 급기야 10월 들어선 81~82달러로 전월 대비 10.2%나 급락했다. 이는 90달러 전후 박스권을 유지할 것이란 이전의 시장 의견에서 상당히 벗어난 것이어서 그 배경과 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가가 이처럼 빠르게 하락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기본은 아무래도 경제 펀더멘털로 세계경제가 여의치 않은 점을 꼽는다. 특히 원유 소비의 큰손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경제가 성장률 목표(7.5%)를 맞추고는 있지만 설비투자 증가율이 이전만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컨대 중국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금융 위기 2008~2010년만 해도 연 28~29%로 높았지만 지금은 14~15%로 절반으로 떨어졌다. 유럽 경제도 문제다. 3분기 들어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던 독일 경제도 8월 산업 생산이 5년 만에 최저치로 나오면서 유럽 주가 폭락, 그리스 금리 급등 등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OPEC의 원유 증산이 급락 단초
둘째, 시장에서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일대 변신이다. 미국은 최근 소위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수급 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생산 증가로 원유 수입이 줄고 셰일 자원이 수출되고 있어 그만큼 세계시장에서 원유 수요가 줄고 있는 셈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1~2년 전부터 미국의 셰일 자원 생산이 급증하고 있고 이 추세라면 2025년께 미국의 천연가스(셰일가스 포함) 생산량은 2010년 대비 49%, 원유(셰일오일 포함) 생산량은 64%나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그쯤 되면 세계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었던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뛰어넘는 최대 에너지 수출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가 하락을 단순히 경기 사이클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셋째,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증산은 특히 10월 이후 유가 급락의 단초가 됐다는 평가다. 리비아·나이지리아 등이 반군과의 합의로 원유 수출을 재개할 수 있게 됐고 특히 미온적이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원유 증산에 적극 동참했기 때문이다. OPEC의 9월 원유 생산량은 13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최근 이들은 원유 공급가 인하까지 발표한 바 있다. 넷째, 달러 강세도 원유가의 하락 요인이다. 유가가 달러로 표시되기 때문이다. 최근 얼마나 강세인지 살펴보자. 예컨대 엔화 대비로 보면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기 전인 2012년엔 달러당 76엔이었다. 그러나 2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달러당 109엔이다. 무려 43%나 강세가 됐다는 얘기니까 그만큼 달러 표시 유가엔 하락 압력이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넷째, 미국의 양적 완화(QE) 축소도 유가 하락 요인이라고 얘기한다. 돈이 많이 풀려 있다가 줄어들게 되면 상품 매수도 줄기 마련이니까 유가에도 하락 압력 요인이라는 얘기다. 이 밖에 일종의 ‘음모론’이라고 해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러시아에 대해 경고라든지 이라크 내의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재정 압박을 주기 위해 일부러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면 앞으론 어떻게 될까. 가격의 속성상 ‘급락 후 박스권 유지’일까, 아니면 일부 시각처럼 ‘추가 급락 충격’일까. 물론 골드만삭스 등 일부 시각처럼 정치적 요인 등으로 OPEC와 비OPEC 모두 원유 증산이 이어져 ‘유가 추가 급락’의 시장 충격을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ICE에서의 원유 선물 옵션 투기 매수 포지션이 최근 몇 달간 지속적으로 줄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장의 대체적인 의견은 ‘급락 후 박스권 유지’인 것 같다. 당분간 배럴당 75~85달러의 유가를 유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첫째, 유가가 다시 뛰어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셰일오일, 캐나다의 샌드오일 등 비OPEC의 원유 생산이 많은데다 유가, 특히 유가 상승 결정권을 쥐고 있는 OPEC도 당분간 감산 정책을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유가의 상한선은 세계경제가 빠르게 회복된다든지 하기 전엔 80달러 초반 수준일 것이란 얘기다. 일각에선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로 고유가 시대는 끝났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유가 하락, 실물경제에 1~2분기 후 영향
유가 바닥은 어떨까. 세계경제가 더 침체되지 않는다고 보면 원유 수요 감소보다 공급 증가 요인에 의해 유가 하한선이 결정될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OPEC 국가들은 이미 생산 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어 마음만 먹으면 추가 증산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미 OPEC의 원유 생산은 생산능력의 87%나 되는 데다 증산을 위한 회원 공조도 테러와 상호 갈등으로 예전만 못해 증산 지속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공조가 잘된다고 하더라도 일평균 200만~400만 배럴 증산으로 최대 6개월이라고 한다. 비OPEC 국가들의 원유 증산 여부는 특히 원유 생산원가가 중요하다. 대체로 비OPEC 국가들의 유전과 광구는 생산원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인 비중이 20~25%, 75달러 이상은 35~4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하, 특히 75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상당수 유전과 광구에 대한 투자 감소로 중·장기적으로 원유 공급 감소와 유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튼 종합하면 이것이 시장에서 유가 하한선을 75달러 내외로 보는 이유인 셈이다. 그러나 2~3년 이후로 더 길게 보면 채굴 기술 향상에 따른 셰일 자원의 생산 증가, 또 그에 따른 원가 하락(현재 셰일오일의 손익분기점 배럴당 60달러)으로 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유가 하락이 세계경제에 대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도 관심의 대상이다. 첫째, 국가 또는 지역을 보면 일반적으로 유가 하락은 아시아·유럽·미국 등 원유 소비국엔 호재고 중동·러시아·아프리카·캐나다 등 원유 생산국엔 악재다. 특히 이미 경기 회복세가 시작되고 있고 금리도 여전히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유가 하락 효과가 클 전망이다. 이미 미국의 가솔린 가격은 갤런당 3달러 초반이고 조만간 2달러대 가능성이 높아 소비 심리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은 현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시간은 걸리겠지만 유럽 제조업 경기가 유가 흐름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어 내년 하반기 이후론 경기 회복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원유 생산국엔 부담이지만 세계경제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둘째,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는 언제일까. 과거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유가 하락이 소비·생산 등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는 시차는 대체로 1~2분기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긍정적 효과가 시작되는 시점은 올해 말에서 내년 초인 셈이다.

셋째, 한국은 어떨까. 대체로 긍정적이라고 본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원유 순수입 비중이 7%대로 높아 유가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그만큼 민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무역수지 또는 경상수지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업종별로 보면 부동산·소비재·정보기술(IT)·의료 및 헬스 케어 산업이 긍정적이다. 공급자의 원가 감소 요인에다 수요자의 실질적인 가처분소득 증대 효과가 겹치기 때문이다.

반면 원유 생산국에 특히 집중되고 있는 해외 건설이나 플랜트 수주 등에는 좋지 않은 영향이 예상된다. 정유화학 업체들에도 부담 요인이다. 제품 가격이 동반 하락하면서 이익이 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원유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재고 평가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3~4년 사이 이들 자원 부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높아진 점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예컨대 한국의 대중동·아프리카·남미 수출은 13.7%로 대미 또는 대유럽 비중보다 높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