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중은 진출 본격화…한국은 제도·법규 개선 등 걸음마 수준

[이슈 인사이트] 핀테크, 금융 혁명의 방아쇠 당기다
요즘 금융가에선 핀테크(Fin Tech:금융 기술), 모바일 금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합성어로, 모바일 결제와 송금, 크라우드 펀딩, 자산 관리 등 금융 서비스와 연결된 새로운 정보기술(IT)을 뜻한다.

이제까지 국내에선 생소하던 핀테크가 이처럼 핫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간단히 ‘미·영 등 선진국에서 글로벌 IT 기업들이 금융업에 본격 진출하고 있고 국내도 간편 결제 시장이 확대되면서 금융 서비스에 대한 개혁 니즈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핀테크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금융의 틀을 바꾸는 것이라면 보다 근본적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개인적으론 소비 환경이 뿌리째 바뀌고 있다는 점을 첫째 이유로 꼽고 싶다. 이전엔 온라인이라고 하더라도 시장에 가지 않고 물건 정보를 빨리 사려면 집이든 직장이든 PC 앞에 앉아야 했다. 그러나 이젠 손안의 모바일만 이용하면 하루 24시간 언제 어디서든 물건을 살 수 있다. 이건 근본적 환경 변화다. 심지어 걸어가면서도 물건을 살 수 있다. 따라서 모바일 소비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게 되니 모바일 결제, 송금 등 소위 핀테크의 잠재력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둘째, 핀테크의 빠른 기술 혁신 속도다. 시장 잠재력이 크다고 하더라도 기술 혁신이 빠르지 않다면 이용하는 소비자가 빨리 늘어날 리 없다.


실리콘밸리와 뉴욕이 핀테크 성장 주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난 10여 년간 특히 핀테크의 기술 혁신이 두드러졌다고 말한다. 분야도 융합 기술의 발달로 모바일 결제와 송금에서 신용 분석, 대출, 자산 운용에 이르기까지 대폭 확대됐다. 그 결과 핀테크 소비자들은 거래비용을 줄이고 원스톱 서비스까지 할 정도로 편리해진데다 유용한 정보도 훨씬 많이 얻을 수 있게 됐다. 셋째, 현 금융시장의 성장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도 중요 요인으로 판단된다. 은행 산업을 봐도 미국·유럽 모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대출과 재정 위기로 혼쭐이 났고 한국도 이런 저금리에 대출 수익 모델만 갖고는 적정 생산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증권업도 알다시피 구조적인 거래 대금 감소로 투자은행(IB)을 대안으로 많이 얘기했지만 이 또한 근본적인 증권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뭔가 새로운 혁신적인 금융 기법을 활용한 수익 모델 창출이 필요한데, 그 대안 중 하나가 핀테크라는 것이다. 넷째, 글로벌 IT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이들 금융과 IT가 결합된 모바일 금융시장이 계속 확장되고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글로벌 모바일 시장은 지난 10년간 연 15% 이상의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은 2009~2014년간 불과 5년 만에 모바일 전자 상거래가 2600억 위안에서 2조7900억 위안으로 10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의 핀테크가 전 세계 핀테크와 시장 확대를 선도하고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특히 애플·구글을 탄생시킨 실리콘밸리가 중심이다. 전 세계에서 핀테크 분야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지역으로 금년 1분기만 3억7000만 달러(3700억 원)가 투자됐고 지난 5년간 투자 금액이 연평균 23%의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애플이 애플페이를 통해 모바일 전자 상거래에 본격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때문에 향후 글로벌 IT 기업, 예컨대 애플·구글·페이팔·알리바바 간의 치열한 경쟁과 합종연횡, 또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핀테크에 대한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

글로벌 시장에서 실리콘밸리 다음으로 투자가 많은 지역은 뉴욕이다. 뉴욕의 세계 최대 금융가를 배경으로 금융 혁신을 주도할 핀테크 혁신과 그에 대한 투자 확대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기존 금융 구조의 한계를 절감한 금융권에서도 비용 절감과 금융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핀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투자 규모는 지난 1분기 1억5000만 달러(1500억 원)로 실리콘밸리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투자 확대 속도는 지난 5년간 연평균 45%로 훨씬 빠르다. 뉴욕 핀테크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으로 핀테크 이노베이션 랩을 꼽는다. 이는 4년 전 뉴욕 파트너십 펀드와 컨설팅사 액센츄어가 공동 설립한 기구로, 특히 초기 핀테크 기업을 위한 ‘12주 비즈니스 개발 프로그램’이 유명하다. 글로벌 은행과 벤처캐피털의 직접적인 자문 하에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때문에 그만큼 현실적인 혁신 기술 모델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영국, 런던 동쪽의 테크시티가 핀테크 메카
최근 뉴욕 시장엔 핀테크를 모바일 결제, 송금에서 신용 분석과 대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어 화제다. 모바일을 통해 소상공인과 개인에게 대출해 주는 온덱(Ondeck.com)과 렌딩클럽(Lendingclub.com)이 그들이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대출 심사를 해주는데, 15~20분이면 신용 등급과 대출 여부가 결정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신속한데도 부실 비율이 5% 미만으로 낮다는 점이다. 핀테크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재무 데이터뿐만 아니라 카드 정보를 이용한 소비 행태 등 비재무 데이터까지 분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핀테크 산업은 이미 빅 데이터 분석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은 민간도 민간이지만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런던의 동쪽에 자리한 ‘테크시티’가 영국 정부가 집중 지원하는 스타트업 단지로, 영국 핀테크의 메카라고 한다. 금융 중심지인 런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선 금융과 IT를 결합한 핀테크 스타트업 활성화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도 빨라 테크시티가 만들어진 2011년 이후 핀테크 거래 규모가 3배 이상 늘고 있다.

영국은 미국의 글로벌 IT 기업들이 핀테크를 주도하는 것과 달리 대형 은행들이 주도적이다. 예컨대 바클레이즈은행은 핀테크 스타트업을 집중 단기 육성하기 위해 보육센터까지 만들어 운영한다. 또 최근 홍콩상하이은행(HSBC)이나 퍼스트디렉트(First Direct) 등 대형 은행들은 모바일에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결제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잽(Zapp)이란 핀테크 업체와 앞다퉈 제휴하고 있다.

중국도 작년부터 대형 IT 업체들의 금융시장 진출 움직임이 거세다. 알리바바·텅쉰·바이두 등 경쟁이 치열하지만 선두는 단연 최근 나스닥 상장으로 유명세를 탄 알리바바다. 알리바바가 모바일 금융, 소위 핀테크에 뛰어든 것은 2004년 알리페이 설립 때부터이지만 본격화한 것은 작년 6월 자산 운용 상품인 위어바오를 만들면서부터다. 위어바오는 알리페이 결제 잔액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 상품인데, 지난 1년여 동안 시장 고금리를 적극 활용한 덕에 1년 만에 잔액이 100조 원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알리페이를 많이 썼다는 얘기니까 위어바오가 알리페이 고객 확대에 일등 공신인 셈이다. 현재 알리페이 회원은 중국에서만 3억 명, 해외에서도 240여 국에 5400만 명이다. 또 알리페이 결제 금액이 하루 평균 106억 위안(1조2000억 원)으로 중국인 하루 소비액의 17%나 된다고 하니 이미 중국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졌는지 알 만하다.

국내 핀테크 상황은 어떨까. 최근 카카오페이가 출시 1개월 만에 회원 100만 명을 달성하는 등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고 아직 크지 않지만 기술면에서 경쟁력 있는 핀테크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보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풍토와 독립적인 핀테크 업체를 인정하지 않는 금융 환경 등이 핀테크 산업의 성장을 제약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금융 당국이 핀테크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모든 규제 완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핀테크 업계가 환영하고 있다.

미국의 구글·애플·페이팔은 물론 금융 후진국이라는 중국도 모바일 금융, 핀테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미 글로벌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다. 그렇게 보면 한국도 더 이상 국내 금융회사와 핀테크 업체, 금융 당국 등이 기존 틀 내에 머물러선 곤란할 것 같다. 보다 과감히, 필요하다면 법규·규정도 바꿔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