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우 우리은행 행장…“맡은 바 소임 다했다” 돌연 연임 포기 선언

[이 주의 인물 업 앤드 다운] 관치 외풍에 밀려난 38년 금융맨
이 행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민영화를 위해 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고 밝혔을 뿐 책임 이야기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민영화 숙제와 함께 신규 먹을거리 창출을 위해 열심히 달렸던 이순우 우리은행장이 느닷없는 ‘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곧 마무리될 차기 은행장 선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연임 포기는 임직원을 포함한 업계를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행장은 지난 12월 1일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발송, 은행장 연임을 포기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12월 2일 열린 행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뽑은 면접 대상자에도 이 행장의 이름이 빠졌다. 업계에서는 이 행장이 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퇴진한 배경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결정’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면서 금융권의 ‘신관치’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다.

당초 이 행장의 연임 가능성은 높게 점쳐졌었다. 특히 그의 청렴한 태도, 호실적 등은 은행 내부에서 높은 지지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 행장은 2013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부터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주춧돌을 자임했다. 실제로도 그는 임기 초부터 정부 당국이 추진하는 ‘분할 매각’에 적극 협조, 지방은행과 증권 계열사 등의 매각에 성공했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하면서도 보수는 오히려 타 지주 회장들보다 훨씬 적었다. 올해 3분기까지 지급받은 보수가 채 5억 원이 안 돼 공시 대상에 오르지도 않았다. 다른 금융지주 회장은 보통 10억 원이 넘는다. 그는 영업에 힘써 실적도 크게 개선시켰다. 올해 3분기 우리금융그룹의 누적 당기순이익은 1조3770억 원으로, 전년 동기(4078억 원) 대비 237.6% 폭증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의 당기순익도 4166억 원에서 7463억 원으로 79.1% 늘었다.


30일 임시 주총서 차기 행장 선임
이 행장이 연임을 포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영화 실패의 책임을 진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지난 11월 28일 마감된 우리은행 경영권 지분 30% 예비 입찰이 유찰되면서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는 분석이다. 이 행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민영화를 위해 내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고만 밝혔다.

최근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내정됐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 행장이 퇴임을 결심하게 만든 배경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부행장은 ‘서금회(서강금융인회)’의 지원을 받는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12월 5일 이 부행장은 차기 우리은행장에 내정됐다.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는 이 행장의 임기가 끝나는 12월 3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우리은행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한편 이 행장의 용퇴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역대 행장들이 자리에 미련을 두다가 결국 불미스럽게 퇴진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