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강덕수…그룹 재건 가능할까
샐러리맨의 신화로 통했던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5부는 10월 14일 “1심에서 유죄로 본 회계분식 혐의가 무죄로 판단된다”며 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런 결론이 난 이유는 법원이 강 전 회장의 행위를 대주주의 직접적인 이익보다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강 전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이후 쌍용그룹이 해체되자 임원이었던 강 전 회장은 사재를 털어 쌍용중공업(STX중공업)을 인수했다. 이후 꾸준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덩치를 키워 나갔다. 강 전 회장은 대동조선(STX조선해양)을 인수하고 산단에너지(STX에너지)를 잇달아 사들였다.

(주)STX, 지주사서 전문 상사로
M&A의 백미는 범양상선(현 팬오션)이었다. 범양상선의 당시 매출은 STX그룹 전체 매출보다 많았다. 과감한 베팅으로 범양상선을 인수한 뒤 STX팬오션으로 편입해 본격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 위기에 따라 주력 사업이던 조선과 해운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룹은 주저앉고 말았다. 2013년 그룹이 해체될 때 STX의 재계 순위는 13위였다.
일각에서는 강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강 전 회장 역시 석방된 후 기자들과 만나 “STX그룹의 재건을 검토하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현실이 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과거 STX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대부분이 KDB산업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채권단의 공동 관리 아래 있다. 또 그중 일부는 이미 매각돼 사실상 STX그룹이 와해됐기 때문이다.
11월 현재 과거 STX그룹 주력 계열사들은 어떤 모습일까. 먼저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였던 (주)STX는 사업 구조조정을 통해 30여 개 기업을 지배하던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이 크게 축소된 상태다. 현재 (주)STX가 지배하는 회사는 단 두 곳에 불과하다. 선박 관리와 해양 서비스를 하는 STX마린서비스와 리조트 운영 및 단체 급식 사업을 하는 STX리조트가 그곳이다.
(주)STX는 현재 에너지 사업, 원자재 사업, 기계·엔진, 해운·물류 등 4대 사업을 중심으로 한 전문 상사가 됐다. 지분의 70% 이상(최대 주주 KDB산업은행 39.59%)을 채권단이 보유 중이다. 올 상반기 매출액은 7226억 원, 영업이익은 9억 원, 당기순이익은 20억 원이다. 간신히 적자를 모면한 수준이다.
STX가 무너진 이유는 조선·해운 업계의 불황 때문이었다. 이들 업계의 불황은 현재 진행형이다. 당연하게도 아직 STX의 이름을 쓰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들도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
해운 회사인 STX팬오션과 함께 그룹의 두 축이던 선박 제조 기업 STX조선해양은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됐다.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자율 협약 방식의 구조조정을 통해 STX조선에 4조 원 넘게 지원했지만 2년 전 실사 당시보다 경영 상태가 더 악화됐다. 지난해에도 3000억 원대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STX조선해양이 법정 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STX조선이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그나마 자율 협약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STX중공업·STX포스텍 등 아직까지 STX의 브랜드를 쓰고 있는 계열사들의 줄도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이미 (주)STX·STX중공업·STX포스텍·STX엔진 등 5곳은 채권단과 자율 협약을 진행 중으로 충격에 대한 완충력이 약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STX중공업의 경우 매출의 약 15%를 STX조선해양에 의존하고 있고 STX포스텍은 사실상 매출의100%를 다른 STX 계열사 등에 기대고 있다”며 “여기에 (주)STX의 경우 STX조선에서 받아야 할 매출 채권이 약 1000억 원인데 법정 관리에 따라 이를 대손 비용으로 처리하면 사실상 자본 잠식으로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11월 18일 STX조선해양이 생존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내년 말까지 인력 30%를 줄이고 임직원 급여를 10% 삭감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 회사 직원 2600여 명을 감안하면 감원 대상은 700~8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비운의 강덕수…그룹 재건 가능할까
법정 관리 중인 STX건설, 매각 초읽기
STX에서 가장 큰 매출을 내던 STX팬오션(현 팬오션)은 이미 주인이 바뀌었다. 국내 벌크선사 1위이자 전체 해운 업계 3위였던 STX팬오션은 해운 업황이 악화됨에 따라 이미 2012년 말 STX그룹이 매각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주채권은행이던 KDB산업은행이 실사 후 인수를 포기하자 팬오션은 2013년 6월 유동성 악화로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해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2013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수정 회생 계획안을 인가받은 팬오션은 1차 감자와 출자 전환, 2차 감자를 연이어 실시하며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했고 지난해 10월 팬오션이 재추진한 공개 매각에 하림그룹· KKR·대한해운·도이치은행·한국투자파트너스 등 5곳이 예비 입찰에 참여했다.
결국 STX팬오션은 1조80억 원을 써낸 하림그룹 컨소시엄이 손에 쥐게 됐다. 하림은 팬오션에 곡물사업부를 꾸려 그룹의 새 먹을거리인 곡물 사업에 힘을 더 실어줄 방침이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팬오션은 올해 매출 1조7600억 원, 영업이익 2194억 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이 예상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7%, 영업이익은 1.6% 증가한 것이다.
STX에너지는 일찌감치 새 주인을 찾은 회사다. 인수 대상자는 GS그룹의 GS E&R였다. 2014년 2월 GS E&R는 STX에너지의 지분 64.39%를 5649억 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GS E&R의 상황도 그리 괜찮은 것은 아니다. STX에너지의 주력 사업은 태양광 및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이었다. GS E&R는 최근 유가 급락 등 대내외 상황 악화로 태양광과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접기로 했다. 업계에선 사업 철수에 따른 손실 규모를 3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GS E&R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떨어져 많이 어렵다”며 “투자할 당시와 달리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캐나다와 아메리카의 자원 개발) 사업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STX에너지의 옛 사업 중 명맥이 남는 것은 GS포천열병합발전이 전부다.
STX팬오션 및 STX에너지와 함께 또 하나의 STX 계열사도 곧 새 주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STX건설이 그 곳이다. STX건설의 법정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11월 6일 예비 입찰을 진행한 결과 국내 건설사 등 3곳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STX건설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경영난에 빠지며 2013년 5월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수차례 감자와 출자전환을 거쳐 GS E&R(지분 19.78%)·STX중공업(8.71%)·우리은행(6.92%) 등이 주요 주주로 있다. 지난해 STX건설 매출액은 5882억 원, 영업 손실은 12억 원을 기록했다.
이홍표 기자 hawll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