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스 뷰] 조직 몰입은 회식 자리에서 생기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의 문제점으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권위주의적인 위계적 조직 관리로는 더 이상 성과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 부문에서도 ‘위계적 통제’보다 ‘거버넌스’로 옮아가야 한다는 논의가 우리 사회에서도 있어 온 지 오래다.

공공 이슈가 복잡해지고 이해 당사자가 다양해지고 의사 결정 체계가 분권화되는 대세에 따라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인 변화는 크지 않다. 베버의 위계적 통제 원리를 근간으로 한 것이 현대 관료제인 만큼 정부의 변화는 느리기만 하다.

미련 없이 떠나는 젊은이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 못지않게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이다. 주위에서 보면 젊은이들이 취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대기업 입사에 성공한 다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 것 같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인데도 2~3년 버티다 이직을 희망하는 이를 종종 본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어느 지방 업체 채용 공고에 일류대 출신들이 줄줄이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젊은 세대의 인생관은 산업화 시대의 장년층과 다르다. 이들은 봉급이 줄더라도 작은 업체로 옮겨 좀 더 자유롭게 살기를 원한다. 더러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또는 아예 정착하기 위해 해외로 발걸음을 옮기는 젊은이들도 있다. 어떻게 해야 젊은이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 수 있을까.

메이어(Mayer)와 알렌(Allen)은 1991년 감정적 몰입, 규범적 몰입, 지속적 몰입 등 세 가지로 구성된 ‘조직 몰입(organizational commitment)’의 개념을 제시해 이직, 조직 성원의 행위, 직무 성과 등을 연구하는 데 인기 있는 분석 틀을 제공했다.

조직 몰입은 직원과 조직과의 관계를 특징짓는 심리적 상태로 조직 성원, 즉 직원이 회사에 남을지 아니면 떠날지를 결정하게 된다. 감정적 몰입은 조직 구성원과의 정서적 유대나 조직 목표와 동일시에 의해 형성돼 조직을 위해 일하고 싶은 욕구다.

규범적 몰입은 조직에 남아 일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여기는 것이고 지속적 몰입은 조직을 떠남으로써 생길 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커서, 즉 대안이 없어 남아 있는 경우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 가지 몰입 요소들을 생각해 봤을 것이다. 당장 때려 치우고 싶은 직장이더라도 이직 가능성이 별로 없으면 우리는 주저앉는다. 박봉이더라도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너무 좋아 회사에 계속 다닌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근무 환경이 나빠도 일을 견뎌낸다.

더욱이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을 자주 바꾸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는가. 이 세 가지 몰입 요소들은 세대별·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를 보이면서 구성될 텐데 타고난 성격이라든지 가정 형편이라든지 개인 차이는 제쳐 두고 세대 차이에 대한 필자의 직관적 생각은 이렇다.

아마도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도덕적 이유로 회사에 남아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을 것 같다. 괜찮은 일자리가 귀한 시대에 이직 비용이 커 직장에 남겠다는 동기도 크겠지만 동시에 한 번뿐인 자기 인생을 원하는 대로 살자는 심정으로 당장의 대안이 없어도 직장을 그만두려는 젊은이들은 늘어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조직 몰입을 높일 수 있는 후보감으로는 감정적 몰입이 중요하게 남는다. 실제로 메이어와 그 동료들은 2002년 감정적 몰입이 가장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감정적으로 조직에 유대감을 느끼려면 어떤 조건들이 충족돼야 할까. 조직 구조에 영향을 받는 근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연구들이 많다. 참여와 협력의 틀로 잘 디자인된 조직에서 감정적 몰입은 자연스럽게 자라고 조직 효과성도 따라서 커진다.

한국의 대기업들도 조직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1980년대 초부터 팀제를 도입해 1990년대를 통해 확산된 것으로 조사된다. 수평식 팀제는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을 작은 단위로 묶어 팀에 자율성을 주고 공동으로 목표를 세우고 책임도 공유하는 방식이다. 결재 라인을 줄이고 팀원들 간 상호작용도 증대시켜 협력을 통해 문제 해결력을 높이는 이점이 있다.

여전히 지시적·위계적인 팀 문화

2007년 박원우 씨의 연구는 우리 기업의 팀제 도입이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지만 팀장와 팀원의 관계가 여전히 지시적·위계적이며 업무 계획 및 실행 등에서 팀 자율성이 제한적이고 팀 내 업무의 자기 완결성이 부족하다고 보고한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점들이 얼마나 극복됐는지 모르겠지만 젊은이들의 감정적 몰입을 증진할 수 있는 곳이 팀 내부인 것은 확실하다. 그들이 회장님·사장님 등 간부 상사들을 마주하는 일은 1년 동안 한 번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하루를 살아가는 회사는 바로 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조직 목표와 팀원의 목표를 일체화하면서도 젊은 팀원들을 개성을 존중하고 격려해야 할 팀장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작은 연구원을 경영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으로는 젊은이들은 봉급보다 자신이 조직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지에 민감하며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지 수년밖에 안 되는 이들이 배우면서 커가고 싶은 욕구를 지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은 팀장이 자주 소집하는 회식자리, 술자리 단합이 아니라 과제 목표를 명확히 하고 업무 흐름을 체계화해 팀원들이 제 몫을 찾아 조화롭게 일하면서 자신의 유용성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리더스 뷰] 조직 몰입은 회식 자리에서 생기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조직 몰입도를 높여 일터에서 보람과 긍지를 느끼게 하려면 우리 기업들이 좀 더 과감하게 조직 구조를 유연하고 수평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직장 상사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인내심이 없다고 탓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인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근무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지 야근으로 밀어붙이는 장시간 근로와 수동적인 근무 환경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숙종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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