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사·사법당국 협의 통해 고객에게는 추가 정보 제공 않기로 정해"
'테러방지법' 시행 전에도 연간 제공건수 100만건 넘어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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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가 사법당국과 가입자의 통신자료를 직접 줄 수 있는 ‘핫라인(직통 서버)’을 구축해 수년 동안 운영해 온 것으로 23일 확인됐다. 이는 법률상 의무가 없음에도 가입자 정보를 제공했다는 비판과 함께,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에 협조해 온 것이라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이통3사와 사법당국은 고객 통신자료 요청과 관련해 일체의 추가 정보를 해당 개인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협의한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더구나 지난 3일 ‘테러방지법’이 시행됨에 따라 사법당국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날 검찰·경찰·이통3사 등에 따르면, 이통사들은 ‘핫 라인’을 통해 사법기관의 요청이 있을 경우 ▷가입자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 ▷주소 ▷가입일자 ▷해지일자 등 6개 항목을 수년간 제공해 왔다.

또 이통사로부터 확인한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사법당국이 이를 조합하거나 유추해 추가 정보를 확인 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통3사는 사법당국에 가입자 정보를 제공했음에도 고객에게 이를 별도로 알리지 않고 있고, 고객이 해당 사실 확인을 요청할 경우만 이를 공개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통3사가 가입자에게 확인해 주는 ▷제공요청기관, ▷문서번호, ▷제공요청사유, ▷제공일자, ▷제공한 통신자료 내역만으로는 기관명만 알 수 있을 뿐, 통신자료 열람 부서나 담당자, 구체적 사유 등은 확인 할 수 없다.
(사진)이통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
(사진)이통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
특히 제공요청 사유는 천편일률적으로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에 따른 법원·수사기관 등의 재판, 수사,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으로 기재돼 있을 뿐 구체적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전기통신사업법은 개인정보인 통신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지 않으며,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한다.

자신의 통신자료 제공사실을 확인한 SK텔레콤 가입자 황모(35) 씨는 “이통사로부터 받은 확인서로는 담당 수사기관만 알 수 있을 뿐”이라며 “이통사는 이 정보 이외에 더 이상 추가 문의를 받지 않아 내 정보가 왜 제공됐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사기관에 연락해 추가 정보를 얻고 싶다고 했더니 이통사를 통해 사건번호와 담당자 이름, 조회 부서 등을 알아오라고 했는데, 이통사는 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번호를 알면 조회한 검사실을 찾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대검찰청과) 통신사가 서로 사건번호 등 추가정보는 민원인에게 고지하지 말자는 취지로 협약을 맺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통사 관계자도 “사업자가 고객에게 제공 가능한 항목이 법적으로 제한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측의 권고에 따라 이통3사 모두 고객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통사 관계자 역시 “(사법당국으로부터) 사건번호나 담당자 이름이 누락돼 오는 경우도 있고, 정보가 있다 해도 이는 수사기밀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공개할 수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사법기관과의 ‘핫 라인’ 개설 여부에 대해 “수사기관과 통신사간 구축돼 있는 전산 프로세스를 통해 수사기관에서 통신자료를 요청하게 되고, 요청된 자료는 통신사에서 확인 후 절차에 어긋나지 않으면 해당 자료를 추출해 전산으로 수사기관에 제공한다”고 확인했다.

특히 검찰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제공받는 통신자료는 통화의 구체적 내역이 아닌 다수의 전화번호에 대한 가입자 확인에 불과하다”며 “현행 법률상 당사자에게 통신자료 취득 사유 등을 통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법령상 근거 없이 수사와 관련된 내용, 방법, 사유 등을 알려 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접수 장부를 보면 (사법기관은) 담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며 “이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 뒤 “(사법기관의 개인정보 열람과 관련해) 여러 시민단체가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공된 통신자료는 65만1185건(2011년), 82만800건(2012년), 94만4927건(2013년), 100만1013건(2014년)으로 매해 증가하고 있고, 2015년 상반기에만 56만27건이 수사기관에 제공됐다. 이는 포털사가 2012년 이후 고객 정보를 사법당국에 제공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 이통사가 제공한 건이다.

또 이통3사의 가입자 수가 지난해 4832만명에 달하는 실정이어서 이통사가 사법기관의 편의만을 위해 고객 정보를 지속 제공할 경우 사실상 영장 없이 전 국민의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노출될 우려도 있다.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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