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 낡은 생태계 깨고 ‘열린 협업’에 나서라
(일러스트 김호식)

[김도훈 산업연구원 명예 연구위원] 지난 7월 초 열린 자동차산업학회가 주최하는 한중일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관한 세미나에서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앞으로 자동차 산업이 매우 큰 변화를 겪을 것이고 한국 자동차 산업도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는 사실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은 국가적 중요성에 비춰국민들이나 정부 정책의 관심에서 제대로 주목 받고 있는 것일까. 수출이나 생산액 등만으로는 계산되지 않는 소재 산업, 부품 중소기업 등 많은 전후방 연관 산업에 대한 영향이나 이들 산업군이 고용하는 규모를 생각하면 모두가 그 진로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산업이다.

자동차 산업에 영향을 미칠 미래의 도전은 두 방향에서 오고 있다. 기술적 도전과 사회경제적 도전이 그것이다. 기술적 변화는 워낙 많이 언급돼 이미 익숙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정리해 보면 화석연료의 전환 분야(하이브리드·전기·수소자동차 등의 기술)와 정보기술(IT)과의 융합 분야(자율 주행 자동차, 무선통신 기술과의 융합 등)로 집약된다.

어쩌면 한국 산업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 요인들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덜 받아 왔다. 첫째, 중국에 이어 인도·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아프리카 등이 언제 신흥 시장으로 부상할 것인가.

둘째, 점점 심화되는 글로벌 밸류 체인에 누가 잘 대처할 것인가. 셋째,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환경보호의 요구에 어느 기술이 주된 해결책으로 부상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미래 생활 패턴의 변화에 따른 자동차를 대체할 이동 수단의 등장 가능성, 혹은 재택근무의 확대 등 도시에서의 이동 수요 감소 등의 영향은 어느 정도일 것인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적어도 세미나에서 발표되고 토론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러한 도전들에 한중일 자동차 산업들이 조금씩 다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먼저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 강자인 일본은 기존 자동차 산업에서의 기술적·생산조직적 우위를 심화해 나가면서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려고 하는 다소 보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 대척점에 있는 중국은 반대로 위와 같은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기술적 변화 부분에서 상당한 수준의 선제적인 투자를 추진하려는 공격적 자세를 보이는 것 같다.

중국이 현재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는 사실이 중국 자동차 산업 전체에 일종의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했다. 신기술 분야가 빠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중국 정부의 열린 자세, 적극적인 투자 등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주요 요인으로 느껴졌다.

이웃에 두 강자를 둔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필자의 지나친 기우일까.

참여한 전문가들과 필자가 공유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갈 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융합을 위한 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말한 기술적·사회경제적 도전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일본과 중국의 산업 전략에 맞서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 협업은 지금까지 잘 구축해 놓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어야 한다. IT 산업, 기계 산업, 소재 산업 등 많은 연관 산업들과 함께 기술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아가 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선진 기업들과의 전략적 제휴, 나아가 향후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할 국가들과의 글로벌 밸류 체인에서의 협력 등 국경을 넘어선 수준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더 나아가 새롭게 떠오르는 서비스산업, 문화·예술 분야와의 협업도 상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미래 자동차 산업의 결정적 경쟁력 요인이 어떤 곳에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기존 자동차 산업계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방향에서 전략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우선 완성차 업계는 세계적인 시장의 변화, 산업 경쟁력의 변화를 읽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글로벌 밸류 체인의 설계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미 선진 기업들이 전개하고 있듯이 전 세계적인 경쟁력 요인들을 결합해 경쟁력을 더 높이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는 주요 시장에서의 플레이어들과의 협업도 모색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모두 해결하려고 했던 자세를 벗어나 어느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는 ‘열린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한편 한국의 부품 업계에서도 국내 완성차 업체와의 전속적 협력 관계를 넘어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과의 협력 관계를 스스로 모색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력을 높이고 전략적 시야를 넓혀야 한다. 향후 밀려올 자동차 산업의 기술적·사회경제적 변화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자동차 산업, 낡은 생태계 깨고 ‘열린 협업’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