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사람이 함재봉(53) 아산정책연구원장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는 1990년대를 풍미한 동아시아 담론과 아시아적 가치 논쟁을 이끈 핵심 논객이었다. 전통사상, 특히 유교에 대한 그의 재해석과 한국 보수주의에 대한 깊은 천착은 당시 학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런 그가 유네스코 사회과학국장과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이라는 먼 길을 돌아 지난해 국내 싱크탱크의 수장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독립적이고 비당파적인 공공 정책 연구소’라는 워싱턴 모델에 충실한 국내 첫 싱크탱크다.

함 원장은 “한국도 이제 세계적인 민간 싱크탱크가 나올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08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함 원장은 “정 전 대표의 주문은 아버지의 아호(‘아산’)를 붙인데 걸맞은 세계적인 싱크탱크로 키워 달라”는 한마디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지난 7월 13일 경희궁 뒤뜰이 한눈에 들어오는 서대문 신문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함 원장을 만났다.
[스페셜 인터뷰]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한국서도 세계적 싱크탱크 나와야죠”
2003년 연세대 교수를 그만두고 유네스코로 자리를 옮긴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아버지(함병춘 전 주미대사)를 따라 외국 생활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한국적 전통과 가치, 한국적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대학에서 한국적인 것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한국적인 것을 해외에 나가 알리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늘 생각했어요. 외국 문화에 익숙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요. 유네스코의 사회과학국장직 공모에 합격하면서 파리로 가게 됐죠.

그 이후는 어떻게 됐습니까.

유네스코에서 한 일은 사회과학 연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연결 고리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었어요. 정책으로 만들어져야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정책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낄수 있었지요.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한 곳인 랜드연구소에선 미국 싱크탱크의 힘을 제대로 체험했고요.

아산정책연구소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정몽준 전 대표가 사재를 털었어요. 이홍구 전 총리와 한승수 전 총리가 멘토 역할을 했고요. 한국도 이제 세계적인 싱크탱크를 만들 때가 됐다고 본 겁니다. 미국은 ‘싱크탱크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수없이 많은 싱크탱크를 갖고 있지요.

그런데 한국에는 미국적 의미의 싱크탱크가 존재하지 않아요. 과거 정부에서 한국개발연구원부터 산업연구원, 심지어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까지 직접 만들어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게 사실이지만 이제는 한계에 왔어요.

삼성·LG·SK 등 대기업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미래나 전략에 초점을 맞춘 것이 많고요. 브루킹스연구소나 카네기평화재단은 개인이 낸 돈으로 만들었지만 돈을 낸 사람이 원하는 연구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돈으로 공공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연구합니다. 이게 바로 워싱턴 싱크탱크의 모델이죠.

싱크탱크가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국 사회의 거버넌스 체계 자체가 과거와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강력한 정부와 효율적이고 규율이 강한 관료, 그리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착한 국민이 잘 맞물려 돌아갔어요. 정부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세우면 곧바로 읍면동까지 전파돼 출산율이 한 세대 만에 확 떨어지는 일도 벌어졌죠.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끝났어요. 이제는 정부가 독점하던 정보를 누구나 인터넷으로 다 봅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져 국민 개개인이 저마다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갖고 있어요.

한국 사회는 위로부터 다스릴 수 있는 사회가 이미 아니에요. 촛불 시위가 좋은 사례죠. 시민들이 스스로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직접행동도 주저하지 않아요.

[스페셜 인터뷰]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한국서도 세계적 싱크탱크 나와야죠”
싱크탱크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필수적인 것은 재원이에요.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사실 사회과학은 돈 들일 일이 별로 없어요. 연구원을 운영해 보니 가장 많은 돈이 드는 게 큰 국제회의를 열 때 참석자들에게 들어가는 항공료예요. 그걸 다 합해도 몇 천만 원이 끝이에요. 억대면 정말 풍족하게 쓸 수 있지요. 그런데 다른 민간 연구소는 이것도 벅찬 게 현실이죠.

정몽준 전 대표가 명예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요.

정 전 대표가 사재를 출연했지만 운영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아요. 한국에 도착한 첫날 아침을 함께 먹으며 그러더군요. “아버지(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아호인 ‘아산’은 아무데나 붙이지 않는다. 아산복지재단이나 아산병원이나 모두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이름에 걸맞게 세계적인 싱크탱크로 키워 달라.” 그 한마디가 전부였어요.

정 전 대표가 대선 출마를 위해 만든 싱크탱크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누구나 연구원에 와 보면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든 곳에 누가 자기 아버지의 아호를 붙이겠습니까. 정 전 대표는 ‘해밀을 찾는 소망’이라는 자신의 정책 연구소를 따로 갖고 있어요. 처음부터 연구원과 자신의 싱크탱크를 분명하게 구분한 겁니다.

연구원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본격적으로 외형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입니다. 작년 초만 해도 전체 직원이 3명밖에 안됐어요. 지금은 박사급 연구원 7명, 석사급 연구원 7명, 행정 직원 3명으로 늘어났지요. 앞으로 매년 박사급 연구원을 4~5명씩 뽑아 4~5년 안에 20~25명 규모까지 늘릴 계획이에요. 연구원의 올해 예산은 50억 원 정도 됩니다. 그중 절반이 인건비로 나가죠.

싱크탱크가 활성화되려면 기부 문화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개인 기부는 미국 싱크탱크들의 든든한 재정 기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싱크탱크나 비정부기구(NGO)에 돈을 기부하면 세금공제 혜택을 볼 수 있지만 미국인들은 그걸 떠나서 기본적으로 돈을 벌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 쓸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고, 또 그걸 굉장한 보람으로 느끼거든요.

카네기는 미국 전역에 5000개의 도서관을 지어줬다고 해요. 포드나 록펠러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그 단계까지 가줘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는데, 아직 잘 안 되고 있어요. 정 전 대표가 변화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돈을 저렇게 쓸 수도 있구나. 고아원을 돕거나 장학금을 주는 것도 좋지만 싱크탱크를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거죠.

약력 : 1958년생. 80년 미 칼턴대 경제학과 졸업. 92년 존스홉킨스대 정치학 박사. 92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97년 계간 ‘전통과 현대’ 편집주간. 2003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사회과학국장. 2005년 서던캘리포니아대 한국학연구소장. 2007년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2010년 아산정책연구원장(현).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com┃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