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이라는 이름은 듣는 이들에게 저마다 다른 울림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구혜선’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기존의 모든 이미지와 조금씩 달랐다. 마냥 화사하게 웃고만 있는 인형도 아니었고 패기만만하게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천재도 아니었다.

담담하게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자신이 해 온 작업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청춘, 그 자체였다.
[뷰티풀 라이프] 배우 겸 감독 구혜선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 전 두 번째 그림 전시회를 마쳤어요. 2년 전 만들었던 노래 ‘매리 미’ 음원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다섯 번째 영화 연출 작품이자 제 첫 장편 상업 영화인 ‘복숭아나무’ 개봉을 앞두고 있기도 해요.”

한 달여 동안 그녀는 화가로, 가수로, 또 영화감독으로 대중 앞에 섰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은 그저 재능만 있어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무엇보다 꾸준히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건 부지런하고 성실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또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일들을 너무 좋아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꾸준히 끝까지 해 낸다는 점이에요. 막상 무언가 한 가지를 끝내다 보면 그 성취감에 다시 다른 것을 시도할 수 있게 되죠.”
[뷰티풀 라이프] 배우 겸 감독 구혜선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승우·류덕환 등 배우들이 먼저 반한 영화 ‘복숭아나무’

그녀의 다섯 번째 연출 작품이자 첫 장편 상업 영화인 ‘복숭아나무’는 요즘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실력파 배우 조승우·류덕환·남상미 등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특히 조승우와 류덕환이 몸이 붙은 샴쌍둥이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번에는 ‘유쾌한 도우미’나 ‘기억의 조각들’, ‘요술’ 등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드라마적인 부분에 많이 중점을 뒀어요. 사실 전작들은 제 나름대로 영화적인 실험을 많이 했었거든요. 편집이나 촬영에 있어서도 다양한 효과들을 실험해 보고 연구하곤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영화적인 기법들에 대한 부담 없이 드라마에 많이 중점을 뒀어요. 기술적인 요소들보다 감정을 충실히 그리려고 노력했고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조금 더 쉽게 관객들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영화계에서 섭외하기 힘들다는 배우들이 선뜻 그녀의 작품에 출연을 결정한 것은 소재의 독특함과 시나리오가 가진 매력 덕분이었다.

“저도 배우지만 배우들에게는 저마다 갈망이 있거든요. 매번 했던 사랑 이야기나 매번 했던 범죄 이야기 외에 색다른 이야기를 그려내 보고 싶다는 갈망이요. 그런 점에서 팀 버튼과 조니 뎁이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팀 버튼 감독은 매번 색다른 소재로 조니 뎁을 변신시키잖아요. 저도 누군가를 조니 뎁처럼 계속 변신시킬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장차 팀 버튼처럼 다양한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고 이를 펼쳐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아직은 한국형 판타지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제대로만 만들어 낸다면 관객들도 한국형 판타지 작품에 박수를 보내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이번 작품도 소재가 남다른 만큼 다른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배우들이 많이 공감해 준 것 같아요. 사실은 캐스팅이 이렇게 한 번에 잘된 것도 처음이라 저도 놀랐다니까요?(웃음)”

어머니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던 샴쌍둥이에게 어느 날 아름다운 여자가 찾아오고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사랑 등을 그린 ‘복숭아나무’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남상미는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평소에도 그녀의 ‘선함’에 신선한 감동을 받아 왔던 만큼 애초에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녀를 관찰하고 그녀의 천사 같은 이미지를 기본으로 삼아 시나리오를 썼다. 얼굴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 형제 역할을 맡은 배우 조승우와 류덕환은 기존에 없는 캐릭터인 만큼 연기자들 스스로의 각별한 노력들이 캐릭터의 생명력을 빛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2009년에 구상하고 2010년에 시나리오를 쓰고 2011년에 촬영한 후 드디어 올해 개봉하게 됐어요. 이처럼 촬영이 진작 끝난 작품이라 따로 시사회를 열지 않아도 스태프들이나 연기자들, 제 지인들은 모두 이미 영화를 본 상태죠. 다들 평이 좋아 이번에는 저도 살짝 기대가 돼요.”

기대를 담고 목표로 하는 영화 관객 수는 100만 명쯤이다. 보통 상업 영화의 3분의 1 정도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인 만큼 100만 명만 들어도 ‘성공’이라고 자축할 수 있단다. “다른 영화들은 몇백만 명씩 들다보니까 관객 100만 명 동원은 기록 축에도 안 든다고 하지만 사실 관객 100만 명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 이상은 감히 바라지도 않아요.(웃음)”
[뷰티풀 라이프] 배우 겸 감독 구혜선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더 많은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는 것들

10월 말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그녀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지난 9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개인 전시회가 대구에서 다시 한 번 열릴 예정이기도 하고 남자의 시점에서 그려낸 영화와 달리 여자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소설 ‘복숭아나무’의 출간은 물론 영화 속 음악들을 한데 모아 OST 앨범으로 내놓을 예정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총 10곡의 음악 중 8곡을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좀 더 음악을 잘하는 분들이 많지만 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와 느낌을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역시 저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평소 그림을 그리던 실력으로 영화 콘티를 그리고 영화에 가장 잘 맞는 음악들을 만들고 영화에 관한 소설을 쓰고 결국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모든 창작 활동은 모두 영화 작업에 필요한 작업들인 셈이다.

“한 가지라도 잘해 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한 가지를 잘하려면 여러 가지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훗날 하나로 융합될 그 여러 가지를 잘 버무려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지금 당장 섣불리 무언가를 이루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자신은 아직도 인생이라는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결과물들에 보내는 일부의 날선 반응들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결과에 일희일비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거든요. 비판이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꾸준히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싶어요.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더 많은 실수를 하며 살 것이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더 많이 실수하고 실패하고 그 실패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 그것이 제 인생의 목표라고 할 수 있 어요.”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