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X파일’ 진행자 이영돈 PD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조리 과정 최소화한 음식을 주로 먹죠”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 /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제트! /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 / 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왕년에 동네 꼬마 아이들을 모두 브라운관 앞에 불러 앉히던 인기 TV 만화 ‘마징가 Z’의 주제가 일부다. 그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입 밖으로 이 노래가 흘러나온 건 “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란 가사 때문일 게다.

그는 방송에 나와 ‘인류의 적’이라고 하는 바퀴벌레를 튀겨 천연덕스럽게 입에 넣고 씹는다. 약간 불편한 기색은 있지만 모두 삼키고 나선 “속은 고소하다. 날개가 잘 씹히지 않지만 영양은 좋을 것 같다”라고 시식평까지 곁들인다. 나타나면 정말이지 모두모두 덜덜덜 떨 것 같은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추리물 읽기 좋아해
“저도 참 좋아하는 데요”, “제가 한 번 먹어 보겠습니다”란 유행어를 쏟아내며 톱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덤에 오른 사람. 종합 편성 TV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의 진행자 이영돈 PD다. 진짜로 그가 나타나면 덜덜덜 떠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떠는 건 아니다. 먹을거리와 관련된 사람들, 특히 ‘착하지 않은’ 음식을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걸리면 방송에서 죽도록 두드려 맞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떠는 사람들은 또 있다. 그와 함께 ‘착한’ 음식을 찾아 헤매는 ‘먹거리 X파일’의 실무 제작진이다. 이 PD는 제작진이 준비해 주는 대로 따라하는 일반 진행자와 다르다. 원래 직함은 채널A의 프로그램 제작을 총괄하는 상무다. 자신의 이름이 걸린 만큼 기획 회의부터 취재 현장, 편집까지 모든 제작 과정을 일선 PD처럼 꼼꼼하게 챙긴다. 그러니 실무 제작자로선 떨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했다간 밥줄이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한다.

“현장 고발이나 다큐멘터리처럼 실증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무척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잠시라도 긴장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 PD는 먹거리 X파일을 하기 전에도 방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알려진 인물이다. 채널A로 옮기기 전까지 타 지상파 방송국에서 제작한 프로그램 중엔 ‘그것이 알고 싶다’, ‘생로병사의 비밀’, ‘추적 60분’, ‘소비자 고발’ 등 굵직굵직한 게 많다.

“어릴 적부터 추리물을 읽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흐트러져 있는 상황을 하나하나 맞춰 나가거나 감춰져 있는 것을 찾아내 밝히는 게 재미나거든요. 형체가 있든 없든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고 ‘왜(why)’나 ‘무엇(what)’이란 화두로 본질을 찾아나가는 게 흥미롭잖아요. 어떤 점술가에게 ‘PD 일을 하지 않았다면 검사를 했을 것’이란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모태 고발 전문 연출자로 태어난 모양이다.

먹거리 X파일의 ‘착한 식당’ 코너가 대히트를 하면서 이 PD의 ‘고발’ 이미지에 ‘착한’ 아이콘이 더해진다. ‘착한 식당’에도 물론 이 PD 특유의 고발 내용이 들어간다. ‘착한 식당’의 선정에 앞서 ‘착하지 않은’ 다른 현장의 문제점이나 관행을 지적한다. 그런 뒤 전문가 집단의 평가단이 암행에 나서 올바른 재료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드는 착한 식당을 발굴해 소개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방송이나 언론 매체에서 소개하는 맛집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시청자 반응이 뜨겁다. 마치 로또복권에 맞은 것처럼 다음날부터 문 앞에 손님 줄이 장사진을 이룬다. 한마디로 ‘대박’이 난다.

“이렇게 폭발적일 줄은 몰랐어요. ‘착한’이란 것을 요약하면 정직과 정성인데 그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전국에 맛집이라고 하는 식당은 많지만 ‘정직’하게 장사하는 곳이 흔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여기엔 ‘이엉돈 PD’도 한몫 거들었다. 이엉돈 PD는 tvN 코미디 프로그램 ‘SNL코리아’에 등장하는 코믹 캐릭터. 신동엽이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을 패러디해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연기한 것. “저도 참 좋아하는 데요”란 유행어가 생긴 것도 이엉돈 PD 덕이다. SNL코리아에서 재미를 더하기 위해 이영돈 PD에게 직접 출연해 달라고 제의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섹스 코드가 너무 강해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이 PD의 먹거리 X파일이 긍정적인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먹거리 X파일을 보다 보면 세상에 먹을 게 없다”고 짜증을 내는 시청자가 있는가 하면 “현실도 제대로 모르고 5000원짜리 밥상에 1만 원짜리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불편을 토로하는 식당 주인들도 많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조리 과정 최소화한 음식을 주로 먹죠”
MSG, 유해성보다 맛·정성이 문제
“먹을 게 없는 건 그만큼 고쳐야 할 것이 많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반찬을 재활용하는 식당이 있으면 시정하라고 요구하며 작은 실천이라도 우리와 함께 노력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먹을 게 많은 세상을 만들어야지요. 잣대에 대한 건 L-글루탐산나트륨(MSG)과 연계해 생각할 문제인데요, 식당에서 MSG를 쓰지 않으려면 공이 상당히 들어가야 하는데 MSG를 사용한다는 것은 파는 음식에 공 들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먹거리 X파일에선 MSG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개념을 깔고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방송에 출연하는 감정단이 식당 음식을 맛보고 MSG ‘맛이 난다, 안 난다’고 평가하는 화면이 자주 나온다.

“일단 MSG의 유해 여부에 관해선 ‘유해하지 않다’고 인정합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사용량을 제한하는 유해 물질이 아니라고 하니 받아들여야죠. 그런데 유·무해를 떠나 MSG가 우리의 식문화나 미각을 왜곡하는 부분을 간과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아직도 유해론을 펴는 학자들이 있는 만큼 계속 조사하고 연구해 볼 겁니다.”
다른 문제에 대해선 단호하고 명쾌한 답을 주는데 MSG에 한해서는 여전히 미련이 남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MSG의 밍밍한 맛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얼버무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착한 식당’ 찾는다고 온갖 까탈을 부리는 이 PD, 집에서는 과연 어떻게 밥을 먹는지 궁금해졌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우리 집 냉장고와 제 식사 내용을 셀프 카메라에 담아 공개한 적이 있죠. 제가 멸치를 반찬이나 간식으로 즐겨 먹는다는 것 외에는 일반 가정과 특별히 다를 게 없어요. 다행히 MSG가 나오지 않아 ‘착한 주방’급으로 인정은 받았습니다.”

외식하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일을 하다 보니 바깥에서 식사하는 일이 많은데 매번 ‘착한 식당’에 갈 수는 없잖아요. 가급적 생선이나 초밥처럼 조리 과정을 최소화한 음식을 주로 찾아 먹습니다. 요령을 피우지 않은 재료 자체의 맛을 즐기는 거죠. 물론 단골집은 있지만요.”

그런데 얼굴이 알려진 뒤로 불편한 점이 무척 많아졌다고 했다. 얼마 전 지방 촬영을 갔다가 밤늦게 치킨집에 들어갔는데 주문한 치킨이 2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더라는 것. 나중에 주인이 닭튀김을 들고 나와 “기름을 새로 싹 갈고 튀긴 것”이라고 말하는데 무척 미안했단다.

요즘 이 PD는 이엉돈 PD(신동엽)와 ‘젠틀맨’이란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먹거리 X파일이 착한 식당을 찾는 것이라면 젠틀맨은 착한 사람을 찾는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착하다’라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졌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는 것이죠. 앞으로 착한 것을 더 많이 찾아내 칭찬하고 격려하면서 ‘착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떨 것’ 같던 이 PD와의 만남은 헤어질 때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란 여운으로 남았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