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자·사용자·정부’ 소통 나선 김은현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장

한경비즈니스·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 공동 기획 - 소프트웨어를 말하다②
[스페셜 인터뷰] “불법 복제에 꿈 꺾인 인재들 많아요”
‘저작권 보호로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해 설립된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는 창조 경제 시대에 더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의 협력 강화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방향을 설정하고 업계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27년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활약해 온 김은현(51) 회장은 2011년 이후 4년째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고민과 불법 복제율을 낮추기 위해 힘쓰고 있다. 특히 올해는 미국 불공정경쟁법과 관련해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정보를 공유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김 회장은 “소프트웨어는 모든 산업과 경제의 두뇌이고 저작권은 곧 소프트웨어 산업 생태계”라며 “불법 복제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취임 4년째를 맞으셨는데,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협회가 설립된 2000년 당시만 해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은 50%를 웃돌고 있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뜻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협회를 만들어 다양한 저작권 보호 활동을 펼쳤고 제가 취임한 2011년 즈음에는 40% 초반대로 낮아졌습니다. 비유하자면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정도는 된 셈이죠. 협회 운영을 맡으면서 ‘이제 앞으로 10년 내에 저작권 선진국을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듬해인 2012년 ‘2020년까지 불법 복제율을 선진국(OECD) 수준인 20%대로 낮추자’는 ‘소프트웨어코리아 2020’ 비전을 선포했어요. 특히 지난해부터 소프트웨어 사용자와 소프트웨어의 가치와 특성을 공유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스마트 컨슈머’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습니다.


창조 경제 시대 소프트웨어 산업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소프트웨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특히 전 세계 경제와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들은 대부분이 정보기술(IT) 기업, 특히 소프트웨어 기업들입니다. 혁신과 부가가치 창출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맨손으로 시작해 당대에 세계적인 기업을 일궈 낸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모두 소프트웨어를 핵심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가장 큰 경쟁력은 소프트웨어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는 현재 그리고 미래 모든 산업과 경제의 ‘두뇌’입니다. 핵심을 간과하고 발전이 있을 수 없는 이치인 거죠.


국내 산업의 현실은 규모도 작고 IT 강국답지 않게 해외에서의 위상도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드웨어 복제품은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원본과 비교할 때 품질의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이에 비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복제가 쉬운 데다 복제품과 정품 사이에 품질의 차이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저작권’을 생명처럼 여기는 것이죠. 복제를 용인하는 문화 속에서는 소프트웨어 산업이 클 수 없어요. 한국도 소프트웨어를 육성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산업구조가 하드웨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는 쪽에 집중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육성에는 소홀했던 거죠. 하드웨어만으로도 먹고살만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어 소프트웨어는 ‘나중에, 나중에’라면서 미룬 거죠. 그러는 동안 소프트웨어에 인생을 걸었던 많은 분들이 나쁜 환경에서 분투하다가 사업 방향을 바꾸거나 이 나라를 떠난 겁니다. 그러는 사이 외국 회사들은 지속적인 재투자를 통해 좋은 품질의 소프트웨어를 계속 만들어 내니 결국 한국을 대표할 만한 국산 소프트웨어 회사는 몇 남지 않게 된 거예요.


기업 관계자들은 평소 어떤 말씀을 많이 하십니까.
우리의 임무가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보호하고 가치를 알리는 일이다 보니 소프트웨어 회사 분들은 불법 복제로 발생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제일 많이 말씀하십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하기 힘드니까 협회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목소리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많이 하죠. 소프트웨어에 대해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업하는 분들이 보기엔 아직 많이 미흡합니다. 사용자 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저작권 정책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당장 해결 가능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지난 정부부터 공공 시장을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를 위한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고 현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정착된다면 상당수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운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봅니다. 또 업체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발주처가 공동 소유하는 관행이 개발사에 귀속되도록 하는 제도가 논의 중인데, 이 정도만 해결돼도 숨통은 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계속 개발할 여력이 생기면 사람도 더 채용하고 대우도 더 잘해 주겠죠.


미 불공정경쟁법과 관련해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불공정경쟁법(UCA:Unfair Competition Act)’은 2010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처음 도입한 이후 불과 4년 만에 38개 주가 채택할 정도로 확산 속도와 범위가 빠른 법규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불법 IT를 사용해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는 공정 경쟁을 저해한 것으로 보고 처벌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미국 정부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양적 완화뿐만 아니라 자국 내 산업을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어요. UCA는 미국이 경쟁력 있는 IT 분야를 앞세워 미국 내에 수입되는 다른 나라 기업들의 통상에 문제 제기를 하는 데 매우 유용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죠. 중국이나 동남아보다는 낫지만 아직 정품 사용 환경이 성숙되지 않은 한국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협회가 앞장서 회원사와 해외 유관 기관을 통해 입수되는 사례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통상 기관에서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 공유를 요청하는 등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에 대책을 마련해 국내 경제 타격이 없었으면 합니다.


최근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 중에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창의성을 갖춘 우수한 두뇌를 갖춘 인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죠. 소프트웨어라는 게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것이거든요. 다른 설비나 장비가 필요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 인정받으면 고용 창출 효과도 높고 부가가치도 큰 산업이죠. 무엇보다 개발자의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가 필수입니다. 그런 문화를 갖춘 일부 회사들이 ‘꿈의 직장’으로 비치는 거죠. 하지만 아직 상당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3D 업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어요.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낮게 보는 문화와 시스템이 문제인 거죠.


올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지난해 말부터 우리 협회는 소프트웨어 권리자와 사용자 간 소통과 이해를 촉진하자는 측면에서 ‘함께해요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지속적·상습적으로 불법 복제를 하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앞서 UCA의 영향도 말했지만 이런 현상을 방치하면 불법 복제를 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불법 복제를 추방하기 위해 법 집행을 하는 사법 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불법 복제율이 30%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그게 올해 우리 협회의 목표입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