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싱크탱크를 가다 | 이석범 한전경제경영연구원 원장

전력 분야 글로벌 톱 5 싱크탱크 목표…빅 데이터 접목 전력소비지수 개발도
[포커스] “전기차, 분산형 전원으로 활용해야죠”
한국전력이 자체 싱크탱크 육성에 나섰다. 자산 176조 원으로 삼성그룹에 이은 ‘넘버 2(공기업 포함)’라는 위상을 고려하면 늦은 감이 있다. 2012년 부임한 조환익 사장이 가장 먼저 사내 경영연구소를 한전경제경영연구원으로 격상하고 적극적인 인력 충원에 나섰다. 작년에만 석·박사급 5명을 뽑았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연구원을 늘릴 예정이다. 연구 분야도 전력 중심에서 벗어나 경제·경영 분야로 확대했다. 이석범(55)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은 “2020년까지 에너지 분야의 글로벌 톱 5 정책 연구소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1986년 한전에 입사해 연구원의 모태 격인 전력경제연구실에서 직장 생활의 첫발을 디뎠다. 그 후 감사기획팀장·본사이전추진처장 등을 거쳐 3월 초 연구원을 맡았다.


연구원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습니까.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전력 기술을 연구하는 전력연구원이 있어요. 1983년 거기서 전력경제연구실 간판을 걸고 출발했지요. 2007년 본사 사장 직속 기구로 조직이 커졌고 2012년 조환익 사장이 오면서 전환점을 맞았죠. ‘한전경제경영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연구 영역도 경제·경영 분야로 확대했어요.


새로운 인력 충원도 있었나요.
작년에 연구원 장기 발전 방안을 만들었죠. 현재 50명인 연구원을 장기적으로 120명 선까지 늘릴 예정이에요. 작년 박사급 3명, 석사급 2명을 뽑았고 올해도 비슷한 규모로 채용할 겁니다. 연구원의 경쟁력은 결국 맨 파워에서 나오거든요. 단독 연구 기관으로 대외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연구원이 100명 정도는 돼야죠.


연구원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전력 쪽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는 국책 연구원인 에너지경제연구원 한 곳뿐이에요.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전력뿐만 아니라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전반을 연구하죠. 전력도 국가적인 에너지 정책 차원에서 봅니다. 한전 같은 전력회사와는 차이가 있죠. 연구원은 한전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싱크탱크를 지향합니다. 연구의 질을 더 끌어올려 전력 정책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죠.


세계적인 전력 분야 싱크탱크는 어떤 곳이 있습니까.
글로벌 전력 회사들은 대부분이 자체 싱크탱크를 두고 있죠. 독일 RWE 컨설팅과 E.ON 테크놀로지앤드이노베이션, 프랑스 EDF 리서치앤드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죠. 수백 명의 연구원을 두고 에너지 생산, 신·재생에너지, 원가절감, 인수·합병(M&A), 미래 사업 개발, 재무 컨설팅 등을 수행합니다. 국책 연구소로는 미국 전력연구소(EPRI)와 일본 전력중앙연구소(CRIEP)가 유명하죠.


다른 싱크탱크와 비교해 연구원이 가진 강점은 무엇입니까.
전력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점이죠. 고객 정보도 있고 설비 운영에 관한 기초 데이터도 있어요. 빅 데이터 분석을 활용하면 좋은 정책적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선 올해 전력소비지수를 만들려고 해요.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전력 소비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새로운 지표를 만드는 거죠. 산업별·용도별 소비 패턴과 경기 사이클에 따른 변화 등을 모두 반영해 국가 간, 산업 간 비교도 가능하게 할 거예요. 전력소비지수는 전력 수급 안정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겁니다. 앞으로 연구원 고유의 지수와 지표를 더 많이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에서 공기업 재무 건전성 제고를 강조하고 있는데요.
재무 건전성 문제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에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나타난 세계적인 문제죠. 다른 나라 큰 기업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우리가 받아들여 접목할 부분은 없는지 벤치마킹 하려고 해요.


한중일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가능합니까.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죠. 앞으로는 그쪽으로 가야 하고요. 슈퍼그리드는 이 지역만의 화두가 아닙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슈퍼그리드를 형성하고 있어요. 국가 간 경계 자체가 허물어졌거든요. 최근에는 유럽과 아프리카가 하나의 슈퍼그리드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북미는 미국·캐나다·멕시코가 하나로 되고 있죠. 슈퍼그리드는 전력 가격을 낮추고 전력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에요. 한국은 사실상 에너지의 섬이죠. 단일 계통으로 고립돼 있어요. 안정성 측면에서 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셈이에요.


고립돼 있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이웃 나라와 전력 계통이 전혀 연결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위로는 북한과 단절돼 있어요. 개성공단만 일부 연결된 정도죠. 중국과도 계통 연결이 안 돼 있고요. 유럽은 아프리카까지 연결하려고 하는데 말이죠. 한국은 특수한 상황이에요. 슈퍼그리드는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정책 과제로 추진돼야 해요.


계통 단절로 한국이 안고 있는 리스크는 무엇입니까.
2011년 정전 사태 때 만약 중국·일본과 슈퍼그리드로 연결돼 있었다면 전력을 수입하면 됐을 겁니다. 러시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로 값싸게 전력을 생산하고 중국의 풍부한 풍력 자원도 이용할 수 있고요. 지금은 불가능한 꿈이죠.


전력난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력 수급 위기의 원인을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어요. 수요 측면에서는 장기 수요 예측의 오차가 생겼습니다. 실제 수요보다 최대 15% 정도 과소 예측이 발생한 거죠. 이에 따라 발전소 건설 등 전력 설비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또한 전기요금이 너무 싸 소비 왜곡이 일어났죠. 주물 공장이 전기로를 쓰고 비닐하우스에서 연탄 대신 전기로 난방 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에너지원별 가격 왜곡이 이러한 전환 수요 폭증을 가져왔다는 걸 많은 연구 결과가 보여주고 있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유일?構?전기요금이 등유 가격보다 쌉니다.


전기차 보급이 전력난을 악화시킬 가능성은 없습니까.
전력 공급이 문제되는 건 여름철이나 겨울철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피크 타임 때문이에요. 전기차는 전력 부하가 큰 피크타임에 꼭 충전할 필요가 없어요. 심야에 싼 전기로 충전하죠. 주행하고 남는 전기는 피크 시간에 되팔 수도 있고요. 전기차는 전원 균형을 가능하게 하는 분산형 전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어요. 부하 관리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수단인 셈이죠. 스마트그리드와 연계해 예비력 확보나 부하 조절 차원에서 전기차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어요.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