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책임 의식을 공유해야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이 부족한 듯하다.
[CEO 에세이] 안전, 시스템 넘어 문화로
김기령 타워스 왓슨 코리아 사장

1962년생.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뉴욕버펄로주립대 교육심리학 석사 및 박사. 머서, 헤이그룹, 에이온컨설팅 대표. 2012년 타워스왓슨코리아 사장(현).


요즘 한국의 주요 화제는 단연 ‘안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와 반성의 물결이 지속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여전히 헬기 사고와 지하철 화재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지난 20년 동안 대형 참사가 터질 때마다 약속했던 안전 개선을 위한 사회의 노력은 어디로 갔는지 허망함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안전 경영에 투입되는 자금을 투자가 아닌 부가 지출로만 여기는 국내 기업 풍토야말로 우리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기업의 부실한 안전 관리는 기업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해마다 엄청난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다친 사람은 하루 평균 250명, 목숨을 잃은 사람은 5명에 이른다. 또한 2012년 기준으로 산업재해에 따른 근로 손실 일수는 5452만 일로, 노사분규에 따른 근로 손실 일수인 93만3000일의 약 58배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또한 엄청나다.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19조2546억 원(2012년 기준)으로 자동차 144만 대를 판매한 금액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내수 경기가 급격히 침체되며 국내 경제성장률에도 타격을 미쳤다는 사실만 봐도 안전이 단순히 기업 윤리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안전사고 예방은 크게 시스템, 즉 하드웨어적인 요소와 인식과 문화, 즉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로 나눠 접근할 수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미 대부분이 세계적 수준의 안전 매뉴얼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다. 안전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에서부터 최고경영자(CEO)까지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책임 의식을 공유해야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이 부족한 듯하다.

기업의 설립 당시부터 탄탄한 안전 문화를 구축한 해외 선진 사례들을 본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화학회사 듀폰은 안전이 ‘시스템’이 아닌 ‘문화’라는 확고한 신념 아래 직원들 간의 대화를 통해 안전의 중요성을 꾸준히 상기시킨다. 이를 위해 일반 기획 회의뿐만 아니라 전화 회의, 글로벌팀 화상회의 등 직원들이 업무를 위해 모이는 모든 자리에서 회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먼저 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한다. 이는 본인의 경험담이 될 수도 있고 책이나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이 될 수도 있다.

정해진 안전 수칙을 지키는 ‘의존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자발적으로 안전에 대해 고민하고 동료들의 불안전한 행동을 지적하고 수정해 주는 ‘상호 의존적인’ 조직 문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듀폰이 세계적인 화학 회사로 성장하게 한 핵심 원동력이기도 하다.

소홀한 안전 관리는 기업의 명성에 치명적인 오점이 될 뿐만 아니라 존립 위기까지도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최근 삼성·롯데·LG·포스코와 같은 대기업들도 안전 경영을 최우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를 시작으로 이익 창출에 앞서 근로자 그리고 국민 안전을 우선시 하는 선진적인 기업 문화가 한국 사회에도 뿌리 내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