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와의 로맨스 역시 배우고 훈련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물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로부터 분리하는 객관성이 필요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움직여지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닌 능동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CEO 에세이] 다시 한 번 ‘펀드 로맨스’
차문현 펀드온라인코리아 사장

1954년생. 1990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 2008년 한성대 경영대학원 박사. 2005년 유리자산운용 대표. 2010년 우리자산운용 CEO.
2013년 펀드온라인코리아 사장(현).



영화 ‘연애의 온도’는 3년째 비밀 연애를 해 온 직장 동료 동희와 영의 결별 스토리다. 야단법석을 떨던 결별 스토리는 결국 성공적인 커플 탄생기로 마무리된다. ‘연애의 온도’가 통통 튀는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라면 영화 ‘위크엔드 인 파리’는 새로운 로맨스를 찾아가는 중년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30년 차 중년 부부 닉과 멕은 식어버린 애정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신혼여행지인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난다. 낭만을 꿈꿨을 여행이지만 30년 전 상황과는 너무 다른데, 부부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함께한 서로의 관계를 성찰하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한눈에서 시작될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지켜 나가는 것은 몇 백 곱절의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펀드 투자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실의 쓴맛을 봤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는 형편이다. 저금리 때문에 몇 푼 안 되는 은행 예·적금 이자로는 기나긴 노후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도 예전만 못하다. 이 때문에 갈 곳을 잃은 단기 부동자금이 736조 원으로 역대 최대에 이른다는 뉴스는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해 준다.

올해 초 한 결혼 정보 회사에서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헤어진 옛 애인과 다시 만난 경험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다. 무려 응답자의 72%가 다시 만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남성의 50%, 여성의 64%는 다시 만나길 잘했다며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미워도 다시 한 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한국에서 펀드 투자가 본격화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다. 대우채 환매 사태, 정보기술(IT) 버블, 카드채 사태, 적립식 펀드와 해외 펀드 열풍 등 실로 적지 않은 사건을 겪었다. 마치 ‘연애의 온도’마냥 ‘뜨거웠다 차가웠다’를 수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15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선진국 펀드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은 ‘연애 초기’라고 할 수 있다. 중년의 부부와 같은 선진국 펀드 투자자들이 여전히 펀드를 노후 준비나 가계 자산 관리의 동반자로 함께하는 것은 어쩌면 ‘그만한 이성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도 그동안 삶의 고비를 함께한 펀드와 다시 한 번 로맨스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이를 위해 먼저 우리가 로맨스에 실패한 이유를 따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철학자이자 정신분석자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고전적 저서인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배우고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펀드와의 로맨스 역시 배우고 훈련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하기 위해 버려야 할 것으로 자아도취·격정·추상화를 꼽았다. 이를 반대로 유추해 보면 가져야 할 것은 객관성·행동·현실이다. 사람과 사물을 자신의 욕망과 공포로부터 분리하는 객관성이 필요하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움직여지는 수동적인 감정이 아닌 능동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현실에 충실한 자세가 필요하다. 투자의 세계도 삶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저금리 저성장 시대, 펀드와의 로맨스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사랑할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