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폭왕’ 포항 다미촌의 함순복 대표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소폭 제조는 왕이지만 주량은 딱 한잔”
포항을 대표하는 인물을 꼽으면 단연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이다. 가히 ‘포항의 전설’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요즘 그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고 있다. ‘철강왕’ 박 회장에 빗대 ‘소폭왕’으로 불리는 함순복 이모다. ‘소폭왕’이라는 별칭과 ‘이모’라는 직함 때문에 ‘술집 여종업원’이라고 상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살짝 빗나갔다. 함 이모는 고깃집 여주인이다. 그런데 ‘소폭왕’ 그리고 ‘이모’라고 불리는 까닭은 뭘까. 고기 판매는 아랑곳없이 손님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소폭(소주 폭탄주)만 말고 있기 때문이다.

함 이모는 올여름 온라인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군, 아니 지금도 그 여진을 이어 가고 있는 포항의 명물 아줌마다. 40대임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외모에 환한 웃음까지 던지며 기묘한 폭탄주를 말아 낸다. ‘포항 이모’, ‘소맥 이모’, ‘소폭 이모’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면 그녀의 다양한 폭탄주 동영상이 올라온다. 그중에는 조회 수가 72만 건을 기록한 것도 있다.


손님이 인터넷에 동영상 올리면서 전국구 스타로
‘폭탄주 이모의 젓가락 회오리쇼’ 동영상에선 실연불가(實演不可)의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함 이모는 “흔들리니까 단디(단단히) 잡아라”고 주문한 뒤 손님 손에 쥐여 준 젓가락 끝에 소주잔을 올리고 잔을 힘차게 돌린 뒤 소주를 따른다. 회전 때문에 소주잔 안에서는 회오리가 몰아친다. 상상을 초월한 ‘술상 위의 서커스’다. 손님들은 놀란 눈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그녀가 운영하는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있는 2층짜리 생고기 전문점 ‘다미촌’. 입구에 ‘처음처럼 명예 홍보대사 1호의 집’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안에 들어가면 인증서도 붙어 있는데 내용이 이렇다.

‘성명:함순복, 자격번호:LLG000001(제1호), 특기:회오리주, 폭탄주 제조. 위 사람은 탁월한 손목 스냅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회오리 폭탄주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중략)…앉으나 서나,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난 10년간 불철주야 연구하여 주류산업 발전에 공헌하였기에 명예홍보대사로 임명합니다. 롯데주류 대표이사 이재혁.’

찬찬히 읽어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이거 진짜예요?”라는 질문이 거리낌 없이 뛰어나온다. “그거 장난이에요.” 함 대표의 거침없는 답이다. ‘처음처럼’ 영업 직원이 만들어 걸어 놓은 것이란다.

답은 “장난”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장난이 아니다. 얼마 전 경북도지사로부터 진짜 표창을 받았다. ‘경상북도 관광의 날’ 기념식장에서다. 이유는 관광 진흥에 이바지했다는 것인데, 소주 명예홍보대사와 마찬가지로 소폭을 ‘자~알’ 말아서다. 제대로 ‘소폭왕’에 등극한 게다.

“무척 고마운 일이죠. ‘음주 문화를 조장하는 악덕상인’이란 비난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지 모르는 일인데 도리어 칭찬을 받았습니다.”

소폭 이모의 술맛을 보러 서울에서 일부러 포항에 내려왔다는 테이블로 가 함 대표가 소폭을 제조한다.

“가장 기본적인 ‘황금주’ 갑니다. 소주와 맥주만 섞는 전통 폭탄주입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능숙한 솜씨로 맥주잔 4개를 자신의 앞에 나란히 놓고 양손으로 소주병과 맥주병을 들어 살짝 스친다. 요란한 “펑”소리와 함께 맥주병 뚜껑이 저 멀리 날아간다. “우와~.” 손님의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소주병 뚜껑을 잽싸게 돌려 따고 병 주둥이를 손목과 손끝으로 서너 차례 신나게 친다. 소주가 사방으로 튀어 옷과 얼굴을 적셔도 손님들은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이후 소주병 주둥이가 맥주잔 위를 한 차례 오가더니 잔에 정확하게 똑같은 양의 소주가 담긴다. 다음은 맥주병 차례. 맥주병을 들어 엄지손가락으로 입구를 막고 몇 차례 흔들어 병 입구를 잔 쪽을 겨냥한다. 엄지손가락을 살짝 떼자 소방 호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맥주가 뿜어져 나왔다. 맥주잔 위로 몇 차례 왕복하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짜며 나눈다. 다음은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켜고 그 위에 잔을 올린다. 황금색 잔 안에선 별이 반짝인다. 하얀 맥주 거품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다 사라진다. “와~” 손님들의 탄성이 흘러나온다. 더 놀라운 것은 맛이다. 카푸치노처럼 부드러운 크림 맥주의 맛. 맹맹하지 않으면서도 목 넘김이 좋다. 원샷에 “캬아~” 소리도 절로 난다.

함 대표가 다미촌의 문을 연 것은 2001년. 두 딸아이(당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가 엄마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자 큰언니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고깃집을 차렸다. ‘내 일’도 갖고 생활비도 보태자는 의도였는데 순탄하게 자리를 잡았다.

“항상 정장을 차려입고 손님을 맞이했어요. 손님이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도도한 분위기였지요. 그 대신 큰언니가 싹싹한 편이라 손님이 끊이지 않았어요. 대박은 아니더라도 수입은 쏠쏠했어요.”

그런데 광우병 파동이 나면서 비상이 걸린다. 손님이 뚝 떨어져 하루에 한 테이블도 없는 날까지 생긴 것. 남편의 봉급까지 끌어다 종업원의 월급을 줘야 할 처지가 된다.

“그때 언니한테 많이 혼났어요. 손님 대하는 태도를 바꾸라고…. 마음을 고쳐 먹고 손님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즐겁게 해줄까’하는 고민도 했고요. 그러다가 도입한 게 폭탄주 제조랍니다.”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소폭 제조는 왕이지만 주량은 딱 한잔”
낮술 금지, 1인 1잔 원칙 지켜
4년 전 쯤에 손님에게 배웠단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초면 접대의 어색한 자리에 소폭 한 잔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줬고 다툼이 있는 테이블에선 소폭 한잔 말아 분위기를 확 바꿔 줬다.

‘전국구 소폭 이모’로 발돋움한 것은 지난 연말. 손님 중에 한 사람이 찍어 올린 동영상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타고 급격히 퍼져 나갔다. TV 방송 프로그램에서 출연 요청도 들어오고 각종 파티와 프로모션에서도 시연해 달라는 러브콜이 쇄도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가며 웃음을 흘리며 소폭을 제조하는 모습과 달리 그녀는 자신이 무척 보수적이라고 말했다. 고향은 강원도 강릉. 2남 4녀의 막내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엄한 큰오빠 밑에서 ‘바른 생활’만 들으며 자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소폭 마는 재주는 ‘왕’인데, 정작 본인의 주량이 궁금했다. “한 잔도 못 한다”는 썰렁한 답이 돌아왔다. “에이~, 설마?”라며 계속 따지고 물었더니 “한 잔 정도”로 수위를 올려 답한다.

“술을 못 마시는데 한번은 중국에서 온 손님들이 약을 올리며 억지로 먹여서 몇 잔 받아 마시다가 그 자리에서 나와 기절한 적이 있어요.”

손님들에게 폭탄주를 열심히 말아 돌려도 소폭왕 나름의 원칙은 철저하다. ‘낮술 노(No), 1인 1잔’이다. 낮에는 말아주지 않고 밤에는 한 사람에게 한 잔이란 룰이다.

“과음만 하지 않으면 술이란 게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고요. 스트레스를 풀어주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해주는 마법을 부려요. 팍팍한 삶의 ‘피로해소제’라고나 할까요?”

인터뷰하는 동안 휴대전화 벨이 끊임없이 울린다. 대부분이 예약 전화다. 먼 길까지 찾아왔다가 ‘소폭 이모’가 없어 헛걸음질하지 않으려면 다미촌은 예약이 필수다. 일요일은 공식 휴무지만 가끔 ‘파티 시연’으로 평일 밤에 자리를 비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저녁 영업을 오후 4시 반에 열어 밤 10시면 닫는다. 이 때문에 술을 마시다가 쫓겨 나갈 때도 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