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신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만난 사람 맛난 인생] “음식 윤리의 첫째는 나눔입니다”
‘톱밥고춧가루.’ 1970년대 김장철이면 자주 신문 지상에 등장하던 단어다. 톱밥에 물감을 들여 고춧가루에 섞어 파는 악덕 상인을 검거했다는 뉴스이거나 이런 불량 식품의 단속을 촉구하는 기사들이었다.

“먹는 음식은 생명(生命)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존엄한 것으로 나쁜 짓을 하다니…, 그런 짓을 못하도록 하는 일을 해야겠다!” 대학 진학을 앞둔 한 입시생에게 가짜 ‘톱밥고춧가루’가 응시 학과를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석신 교수의 얘기다.

“아버지는 제가 법관이 되길 희망하셨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한 상태여서 문과 계열인 법대 진학이 불가능했지요. 대안으로 찾은 게 식품공학과였어요. 식품을 제대로 공부해 불량 식품을 막자는 것이었지요.”

서울대 식품공학도 김석신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에 들어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원대로 법관의 길을 가기로 방향을 다시 잡은 것. 사법고시 준비를 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잔뜩 구입한다. 그런데 갑자기 방위(공익) 소집이 떨어진다. 복학해 집안 형편을 따져보니 ‘고시 준비=사치’란 생각이 든다. 조용히 꿈을 접고 전공 수업에 몰입해 식품 제조업체에 취직한다. 한 차례 근무처를 옮기면서 10년 동안 번 돈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되돌아와 교단에 섰다.


불량 식품 막을 각오로 전공 선택
김석신 교수의 전공 핵심은 ‘식품 건조학’이다. 그런 그가 몇 해 전부터 ‘식품 윤리’란 새로운 과목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연구하며 생각했던 내용들을 최근 ‘나의 밥 이야기’란 책으로 펴냈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겁니다. ‘왜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 걸까? 살기 위해 먹는 걸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밥, 즉 식품 윤리입니다.”

이공계 식품공학자가 먹을 것을 놓고 과학적 접근이 아닌 인문학적 화두를 들고 고민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어릴 적 아버지의 희망이었던 법관의 연장선에 서서 식품을 다시 보는 모습이다.

“학생들에게 이화학적으로 접근한 식품위생학도 가르치는데 불현듯 윤리적 마인드가 먼저란 생각이 들었어요. 전기 합선이 일어나면 전원부터 차단하고 물이 새면 계량기 수도꼭지부터 잠그지 않나요?”

집 안의 전원과 같은 개념이 식품 윤리란 설명이다. 나뭇잎이나 열매를 가르치기에 앞서 인문학적 뿌리부터 짚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람의 한평생을 80년이라고 가정한다면 하루 3끼, 한 해 365일 먹어야 하니 모두 8만7600끼니를 먹는 셈입니다. 1끼니에 1kg을 먹는다면 평생 87.6톤을 뱃속에 넣는 것이고 1끼니에 5000원이 든다면 4억4000만 원어치를 먹어 치우는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음식의 양과 지불해야 할 대가를 공학자답게 숫자로 제시했다.

“87.6톤이란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 엄청난 숫자 속엔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산다’는 대명제 아래 ‘생명이 먹는 생명이 바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란 점을 깨닫는 게 음식 윤리의 시작입니다.”

뒤이어 사자 이야기를 꺼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다. 배부른 사자 앞에는 사슴도 유유히 걸어갈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 앞에선 그럴 수 없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문제입니다. 갖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바라고 가질 수 없는 것마저 갈구하는 것, 그런 욕망(want·desire)을 욕구(need)와 혼동하는 게 문제입니다. 욕구는 결핍된 상태에서 필요로 하는 것으로, 사자처럼 대부분의 동물들은 배고픔의 욕구가 해결되면 만족한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욕망의 충족을 향해 끝없이 추구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과식과 폭식 불러
먹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결국 과식과 폭식으로 이어진다고 김 교수는 진단했다. 자연 상태의 동물에선 볼 수 없는 비만 등의 건강 문제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심각한 걱정거리가 된 점, ‘술에 취하면 개가 된다’는 말처럼 공격적인 본능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이 빚어낸 단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게 윤리이고 그중에 식욕을 다스리는 게 식품 윤리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음식 윤리’라고 하는 거창한 단어와 달리 그의 식생활은 무척 단순하고 평범하다. 아침 식사는 빵 한 조각, 두유 한 잔, 달걀 프라이 한 개, 그리고 제철 과일과 채소다. 점심엔 특별한 외부 일이 없는 한 학교 구내식당에서 영양사가 제시한 단체 급식 메뉴다. 저녁도 가능하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먹는데 된장찌개가 올라간 평범한 집밥이라고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맛본 담배 맛은 벌써 끊은 지 오래고 술도 썩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얼마 전 ‘욕망을 부채질하는 음료’라고 규정하고 금주(禁酒) 중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함흥냉면. 함경남도가 고향인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그런 모양이란다. 단골집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온수동의 6000원짜리 칼제비(칼국수+수제비)집을 소개할 정도로 소박하다.

집에서 가끔 요리도 한단다. 대표 메뉴는 김치볶음밥이다. “아내는 물론 결혼한 자녀까지 아빠표 김치볶음밥에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는 메뉴”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만드는 방법이 조금 별나다. 먼저 쇠고기를 가늘게 썰어 볶는다. 겉이 익으면 잘게 썬 김치를 넣고 함께 볶는다. 그래야 김치의 맛이 쇠고기에 배지 않는다고 한다. 볶은 재료를 바닥에 얇게 펴고 그 위에 밥을 펼쳐 놓는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뚜껑을 덮고 살짝 탄내가 날 때까지 익힌다. 뚜껑을 열고 참기름을 넉넉하게 넣고 잘 섞어 주면 끝. 뚜껑을 열 때 수분이 날아가면서 볶은 것도 아니고 찐 것도 아닌 묘한 상태의 별미 밥이 된다.

그는 남들이 쓰지 않는 ‘음식인(飮食人’)이란 단어를 쓴다.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개체를 위해 먹는 것이지만 먹는 음식에는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의 노력이 함께 들어가 있습니다. 개체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요. 이 때문에 윤리가 필요한 것이고 그 윤리를 지켜야 하는 주체를 ‘음식인’으로 규정했습니다. ‘먹고 만들고 파는 사람’ 모두를 대표하는 말입니다.”

음식인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이나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부터 시작해 이것들을 유통하는 중간도매상은 물론 주방에서 요리하는 조리사, 신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자, 음식 관련 언론인과 방송인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먹고사는 세상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 즉 인간·소비자·국민과 동격인 단어다.

음식인이 실천해야 할 음식 윤리의 첫째 덕목으로 그는 ‘나눔’을 꼽는다.

“음식 윤리는 인류의 아주 오랜 과거,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선사시대 이전에 존재했습니다. 사냥물이나 수확물과 관련된 규칙 중 핵심 가치는 다툼 없게 공평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는 음식을 먹기 전에 자연과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고수레’하고 먹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나눔의 대표적인 실천 행위라고 설명했다. 미식이나 옥식(玉食)도 주변에 굶는 이웃이 없는지 살피고 돌봐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음식 자체는 맛·영양·안전성·건강·기능성을 지닌 물질이다. 여기에 김 교수는 5가지 구체적인 음식 윤리를 제시한다. 생명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는 ‘생명 존중의 원리’, 가짜나 위조가 아닌 진짜를 향한 ‘정의의 원리’, 지속 가능한 생명을 위한 ‘환경보전의 원리’, 그리고 ‘안전성 최우선의 원리’, ‘절제(동적 평형)의 원리’다.

“나이가 들수록 산해진미보다 소소한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니 ‘중년의 음식은 인생의 거울’인 모양”이라고 말하는 식품공학자 김 교수. 그가 쓴 ‘나의 밥 이야기’ 속에는 몸으로 먹는 영양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 양분이 가득한 삶의 방향 지시등이 담겨 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