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다시 살아난 ‘아산 정신’
“나는 성실과 신용을 좌우명으로 삼고 오로지 일하는 보람 하나로 평생을 살았다. 좋은 옷이나 음식, 물건에 한눈을 팔 겨를 없이 그저 일이 좋아 일과 함께 살았다. 타고난 일꾼으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가 오늘의 나일 뿐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 적힌 마지막 글이다. 정 회장이 11월 25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그의 정신은 지금도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다. 정 회장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리는 각종 기념행사는 11월 18일 기념 음악회를 시작으로 줄지어 개최되고 있다. 기념 학술 심포지엄(23일)과 기념 사진전(23~24일), 기념식(24일) 등도 잇따를 예정이다.

특유의 뚝심이 만든 기적
정 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세의 나이로 소를 팔아 마련한 70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왔다. 수차례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7년 5월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에 ‘현대토건’ 간판을 올렸다. 현대그룹의 모체가 된 현대건설의 시작이다. 당시만 해도 주변에서 “무모한 도전”이라며 말렸지만 정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다.

정 회장은 1968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주도해 2년 5개월 세계 최단시간 완공 기록을 세웠다. 또한 1976년에는 20세기 최대 건설 사업으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도 수주했다.

정 회장은 이에 앞서 1966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하고 1975년 최초 국산차 모델인 ‘포니’를 만들어 수출을 시작했다. 또한 그는 1972년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을 들고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권을 내밀며 유럽에서 26만 톤급 대형 유조선 2척을 수주하며 현대중공업의 출발을 알렸다.

정 회장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다. 그는 1992년 재계 인사 최초로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선거에서는 낙마했지만 이후 재계에 복귀해 남북교류, 대북 관광 사업 등에 힘을 쏟는 등 그의 도전은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1998년에는 ‘통일소’ 500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에 따라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성사돼 남북 민간 교류의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