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인터뷰 "GE 등의 사업 구조 재편 배워야"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국가 차원에서 유망 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 주요 경쟁국의 정책사례도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미국은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의 IT 기기 분야를 유망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레저용 드론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요.”
“과잉 규제 풀고 융·복합 촉진 환경 만들라”
권태신(67) 한국경제연구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과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장을 지냈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그가 진단하는 한국 경제의 문제점은 뭘까. 권 원장은 우리 기업을 다시 뛰게 하기 위해선 규제를 말끔히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진단해 주십시오.

“한국은 경제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2~3%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어요.

지난해 한국의 무역 규모는 전년 대비 12.3% 감소했습니다. 올해 2월에도 12.2% 줄어 역대 가장 긴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과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등 이른바 ‘G2 리스크’가 원인인데요. 신흥국의 경기 불안과 유가 하락 등 세계 경기 침체도 영향을 줬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한국 수출의 80%를 차지하던 자동차·휴대전화·철강·조선 등 주력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데 있습니다.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주력 산업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지 못한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등 신흥국의 기술 수준이 한국 기업의 턱밑까지 추격해 왔어요.

한국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친기업적인 정책 환경 조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노동 및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등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주력 산업 고도화와 신성장 동력 창출을 통한 한국 경제 재도약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외부 환경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나요.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와 환율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선 한국 수출의 38%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의존도를 점차 줄여야 합니다. 차별화된 제품으로 신흥국 시장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국의 내수화 전략에 맞춘 한국 기업의 중국 현지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합니다. 중국 기업과의 차별화를 위해 범용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되 주력 산업의 고도화와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융·복합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합니다.”

기업의 돌파구는 어디에 있나요.

“과거 한국 산업은 선진 기업을 벤치마킹해 빠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런 산업 전략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통해 시장을 선도하지 못하면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최근 잠재성장률이 3%대로 하락했습니다.

미래의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산업·기술 간 융·복합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들은 제조업 중심에서 벗어나 첨단 제조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합니다.

제너럴일렉트릭(GE)·지멘스·히타치 등 세계 유명 제조업체들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특성에 맞는 유망 신성장 산업은 무엇입니까.

“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 등 이른바 ‘ICBM’이 가장 유망한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 등 선진국부터 중국 같은 신흥국도 ICBM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ICBM 분야에 인적자원이 상대적으로 많이 축적돼 있기 때문에 잠재적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망 산업에 대해선 기업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은 가만히 둬도 돈 되는 산업으로 치고 나가게 돼 있습니다.

한국에는 규제가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기업이 배송용 드론이나 자율 주행차를 개발하려고 해도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상황입니다. 정부의 과잉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실정입니다.”

결국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한데요.

“그렇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정책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겁니다. 정부 고위 관료의 임기가 짧고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의 불안정성이 높습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바뀔 때는 물론이고 담당 고위 관료가 바뀌면 정책 방향이 수시로 달라져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곤 합니다. 이전 정권 또는 타 정당 정책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려다 보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도 축소 또는 폐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결국 기업의 신규 사업 투자에 혼선을 초래하거나 저해하는 부작용의 원인이 되죠.”

신성장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이 기존 제품에 융·복합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존의 법·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존의 법과 제도에 따른 중복 규제를 해소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축소하고 정책의 일관성과 투명성을 높여 기업 투자를 촉진해야 합니다.

또한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의료·관광·교육·금융·소프트웨어 등 5대 서비스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해야 합니다.

이는 일자리 문제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기존 제조업은 자동화, 기술 발전 등으로 고용 창출 효과가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서비스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입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바탕으로 정부가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기업도 투자를 하게 됩니다. 이 법안을 4년 가까이 묶어 놓은 상태에서 말로만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9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 2009년 국무총리실 실장. 2011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2014년 한국경제연구원장(현).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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