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이 지난 5월 7일 서울 신사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인 구 명예회장은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동생으로 1950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락희화학(현 LG화학) 전무로 사회생활 첫 발을 내딛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사촌경영&형제애’ 남기고 잠들다
(사진) 고 구태회 명예회장 빈소. /연합뉴스

당시 락희화학의 혁신 제품인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은 그의 작품이다. 구 명예회장은 1950년대 소비자 불만이 컸던 화장품 뚜껑을 플라스틱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락희화학은 플라스틱 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후 빗, 훌라후프 등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고, 락희화학은 승승장구해 훗날 LG그룹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1958년 구인회 창업주가 금성사(현 LG전자)를 창립해 전자사업에 진출할 때도 구 명예회장은 부사장직을 맡아 맏형을 지근거리에서 도왔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사업 능력만큼이나 정치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 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 당선돼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60년 5대 국회에선 낙선했으나 이후 1962년부터 내리 5선을 했다.

또한 국회 예결위원장을 3번이나 맡아 '공화당의 예산통'이란 별명도 얻었다. 1976년에는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그는 1962년 한국케이블공업(현 LS전선)을 세워 부사장으로 일했으며, 정계를 은퇴한 1982년에는 LG그룹 고문으로 다시 복귀해 기업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사촌경영&형제애’ 남기고 잠들다
(사진)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오른쪽), 구자엽 LS전선회장(왼쪽)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발인을 지켜보며 침통해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촌간 아름다운 경영승계

구 명예회장이 영면함에 따라 범 LG그룹을 일궈낸 창업 1세대 '회(會)'자 돌림의 세대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구 명예회장은 육형제 중 넷째다. 위로는 맏형인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둘째형 고 구철회 LG그룹 창업고문, 셋째 형 고 구정회 LG그룹 창업멤버를 뒀다. 아래로는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과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들 1세대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하지만 LG·LS·LIG그룹 등 범 LG가(家) 계열 그룹들을 일궈낸 주역이자 가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범 LG가 구성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LS그룹은 구 명예회장을 비롯해 두 동생인 구평회, 구두회 명예회장 등 3형제가 2003년 LG에서 계열 분리한 그룹으로 LG전선·LG니꼬동제련·LG칼텍스가스·극동도시가스 등을 LG그룹으로부터 떼어왔다.

LS그룹 관계자는 "구 명예회장은 LS그룹 내 형제경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동경영의 아름다운 경영정신이 빛을 발하는 데도 많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들 3형제의 유지이자 공동경영 정신은 2013년 고인의 장남이자 LS그룹의 초대 회장인 구자홍 회장(현 LS닛꼬동제련 회장)에 이어 구평회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사촌동생인 구자열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며 "사촌간 아름다운 경영 승계"로 이어지기도 했다.

고인의 장남 구자홍 회장과 2남 구자엽 LS전선 회장, 4남 구자철 예스코 회장이 조문객을 맞았다. 3남 구자명 전 LS니꼬동제련 회장은 지난 2014년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 11일 발인에 이어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매산리 광주공원묘원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