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데이비드 갈리포 UN소셜임팩트펀드 대표]
“자본,인력 풍부한 한국은 ‘아시아 리더’ 될 것”
“골드만삭스가 ‘착한 투자’ 하는 이유? 돈이 되니까!”
(사진) 데이비드 갈리포 UN소셜임팩트펀드 대표. /2016 소셜 임팩트 컨퍼런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소셜 임팩트 펀드’라는 용어부터 거창하고 어렵게 들린다. 하지만 그 개념은 매우 간단하다. 사회문제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렇다. 예전에는 대기업들이 저소득층 주택 지원과 같은 공공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부’를 했다. 이름하여 기업의 사회적책임경영(CSR)이다.

그런데 기업들이 똑같은 문제에 ‘기부’가 아닌 ‘투자’를 하면 어떨까. 저소득층 주택 지원을 운영하는 소셜 벤처에 투자를 한 뒤 그 기업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성장을 하면 투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00% 기부금으로 사업이 이뤄질 때 보다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성과와 함께 수익까지 얻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 투자’가 되는 셈이다.

데이비드 갈리포 유엔소셜임팩트펀드(UNSIF) 대표는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소셜 임팩트 투자’ 분야의 대표적인 글로벌 리더로 손꼽힌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비즈니스와 금융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후 2004년 UN에 합류했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 디지털 및 지식경영 총괄대표,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 태평양 지역실무 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갈리포 대표가 맡고 있는 UNSIF 또한 UNDP의 산하 기관이다.

지난 11월29일 롯데그룹이 주최하는 ‘2016 소셜 임팩트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위해 방한한 갈리포 대표를 만났다. 그는 “한국은 이미 풍부한 자본과 훌륭한 투자 전문가를 갖고 있다”며 “아시아 소셜 임팩트 투자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임팩트 투자 수익률 ‘연평균 6%’

2012년 영국에서는 새로운 투자에 대한 실험이 진행됐다. 비행 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100% 기부금을 제공하는 대신 펀드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펀드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3년 만에 초기 투자금인 150억 파운드(약 22조원)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임팩트 인베스팅 네트워크에 따르면 1998~2010년 설립된 51개 임팩트 투자 펀드(총자산 64억 달러)의 내부수익률(IRR)은 연평균 6.9%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사모펀드·벤처캐피털의 연평균 수익률은 8.1%로 큰 차이가 없었다. 공익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투자는 수익률이 낮을 것이라는 통념을 뒤집은 결과다.

갈리포 대표는 “간단히 말해 임팩트 투자도 ‘투자’다”라며 “좋은 사업 모델만 갖춰진다면 오히려 ‘더 많은’ 수익률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판매되는 신발 수만큼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미국의 ‘탐스슈즈’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다만, 임팩트 투자를 일반 투자와 구별 짓는 핵심은 하나다. 투자자들이 투자를 결정할 때 돈만 되는 사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사회적 문제도 같이 해결할 수 있는’ 사업 모델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는 “현재 임팩트 투자의 문제점은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들의 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이라며 “대부분 엔젤 투자 수준에 있는데 이 단계의 벤처들은 어떤 벤처라도 다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굳이 사회적 기업을 일반 비즈니스 모델과 구분하고 투자의 성격을 나눌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현재 UNSIF의 수장으로서 갈리포 대표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될성부른 사회적 기업들의 ‘사업 규모’를 키워서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 병원, 환경, 공공인프라 사업 등 개척할 수 있는 시장은 너무나 다양하고 풍부하다.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의 발전 또한 이 시장의 발전에 큰 원동력이다.

오래된 사업모델에 새로운 기술을 더하면 사회적 공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마이크로크레딧(저소득 무담보 대출) 사업에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을 접목해 규모를 키우고 수익성을 높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는 “골드만삭스, JP모건 등의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이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바로 그곳에 ‘돈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 공공사업에 기부 대신 ‘투자’

성공 사례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미 세계적으로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뉴욕 등이 이미 임팩트 투자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성과를 입증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 JP모건과 같은 글로벌 금융의 대표주자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JP모건에 따르면, 세계 전체 임팩트 투자 규모는 2010년 50조원에서 2020년 4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갈리포 대표는 UNSIF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역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크레디트스위스와 같은 대기업들이 이 시장에 더 많은 투자를 진행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이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UNSIF는 미얀마와 같은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크레디트스위스, 싱가포르 ING뱅크 등이 참여한 소셜 임팩트 펀드를 위한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갈리포 대표는 “이런 글로벌 금융기관들을 설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소셜 벤처와 금융 비즈니스에 모두 경력이 있기 때문에 양쪽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서서히 소셜 벤처에 투자하는 임팩트 투자에 대한 붐이 일기 시작하는 단계다. 갈리포 대표는 “SK그룹이나 롯데, 현대차, 삼성 등의 대기업들도 이제 막 임팩트 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더 넓은 시야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임팩트 투자는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서구가 중심이 되고 있지만, 서서히 그 흐름이 ‘아시아 중심’으로 옮겨오고 있는 단계다. 미얀마,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에 임팩트 비즈니스가 필요한 지역이 많을 뿐 아니라 실제로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소셜 벤처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에 투자를 진행하는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는 임팩트 투자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꽤 적극적이다. 갈리포 대표는 “최근에도 20여명의 중국 억만장자들이 임팩트 투자를 위한 협회를 구성했다”며 “앞으로 1~2년 뒤면 이들이 임팩트 투자 분야의 리더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비해 한국과 일본 등은 임팩트 투자 분야에 있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비교적 최근에 거대한 부를 구축한 중국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들은 지난 20~30년간 큰 자산을 구축했고 이미 투자에 성공한 경험 또한 공고하다. 그만큼 기존의 관행이나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갈리포 대표는 “삼성과 같은 한국 대기업들의 투자 규모는 어마어마하다”며 “그 중의 단 1%만 임팩트 투자에 쏟는다면, 수익을 얻는 것과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보지 않았던 새로운 투자 분야를 적극적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필리핀, 미얀마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의 임팩트 비즈니스가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특히 한국은 이미 자본이 풍부하고 훌륭한 투자 전문가들도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술력도 높아 임팩트 투자를 위한 기반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는 설명이다. 아직 이 시장은 초창기 단계이기 때문에, 그 판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점도 기회 요인이다.

갈리포 대표는 “한국이 임팩트 투자의 리더가 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잠재력이 높고 기회가 많은 해외 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눈 돌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