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우직하게 27년 ‘正道 기업인’의 길 걸어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누구
(사진)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우보천리(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는 뜻이다. 이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의 경영 철학이다.

이 때문에 서초동에 있는 한국콜마 본사엔 유난히 소 조각상이 많다. 틈이 날 때마다 윤 회장이 직접 모았고 지금은 100여 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 회장은 매일 이 조각상을 보며 자신의 경영 철학을 되새긴다고 한다.

윤 회장은 국내 기업가 중 자수성가형 인물로 꼽힌다. 대구 출생으로 어릴 적부터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 고등학교(계성고) 3학년 때 대학 입학시험을 50일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더 기울었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힘들게 대학교(영남대)를 졸업했고 곧바로 돈을 벌기 위해 취업에 나섰다. 돈 벌이가 목적이었던 터라 자신의 적성은 고려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입사한 곳이 농협중앙회였다.

이후 윤 회장은 자신의 적성을 찾아 대웅제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기업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당시 중소기업이던 대웅제약을 택했다. 대웅제약에서 6번이나 승진해 최연소 부사장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퇴사한 그는 외국계 제약회사로부터 최고경영자(CEO)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결국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장품 제조 사업을 생각했던 그는 미국콜마를 찾아가 기술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때마침 일본콜마가 한국 투자자를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윤 회장은 곧바로 일본을 찾아가 합작을 제의했다.

당시 한국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콜마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수차례 일본에 건너가 일본콜마를 설득했고 1990년 결국 합작에 이르렀다.

한국콜마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화장품 제조업을 시작했지만 사업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화장품 회사들의 세금계산서 없는 무자료 거래 요구에 윤 회장이 이를 거절해 주문을 따내기 힘들었다. 주문을 받아내지 못하다 보니 전기요금을 제때 못 내 단전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윤 회장은 원칙을 지키면서 사업을 하기 위해 고민했고 자체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분부터 제조 기술까지 개발해 화장품 회사에 제시하는 ODM 시스템을 갖춰야겠다고 마음먹고 1993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한국 최초의 ODM 비즈니스 모델의 시작이었다. 이후 윤 회장은 ‘제품의 품질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인 ‘우수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을 화장품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때부터 한국콜마는 매년 매출의 5~6%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윤 회장의 품질 우선 경영은 지금의 한국콜마를 세우는 밑바탕이 됐다.

창립 이후 27년 동안 매년 평균 20% 이상의 매출 성장을 이뤘다. 한국콜마는 화장품 ODM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2002년 제약 사업에 진출했다.

2004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합작으로 연구소 1호 기업인 콜마비앤에이치를 설립하며 기술과 생산 영역을 건강기능식품까지 확장했다.

윤 회장은 2017년 경영 방침을 ‘무본(務本)’으로 정했다. ‘무본’은 원칙과 기본을 바로 세워야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 구축에 공을 들여 성장 기조를 지속하고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처하겠다는 각오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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