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133호 (2017년 08월 16일)

‘높으신 분들’의 갑질에 숨겨진 심리학

[위클리 이슈]   
‘인정 중독’ 버려야 ‘꼰대 CEO’ 안돼…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뀐 ‘패러다임’ 적응 필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대한민국이 뿔났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높으신 분들의 갑질’ 때문이다.

2014년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 회귀’ 사건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했다. 해외 이슈에도 올랐던 김무성 의원의 ‘노룩패스’ 정도는 애교다. ‘아들 같은 마음(?)’으로 공관병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고 노예처럼 부려먹었다는 박찬주 육군 대장 부부의 행태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왜 유독 지금 이 시기에 이토록 수많은 갑질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높으신 분들의 갑질, 그 밑에 깔려 있는 ‘심리적 기저’를 들여다봤다.

◆음식·섹스만큼 강력한 ‘갑질의 쾌감’ 

2013년 포스코의 한 상무는 비행기 내에서 라면 서비스가 좋지 않다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로 승무원의 얼굴을 후려쳐 ‘라면 상무’라는 씁쓸한 별명을 얻었다. 논란이 거세지며 ‘라면 상무’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고 법원에 해고 무효 소송을 냈지만 올해 3월 패소 판정을 받았다. 최근에는 종근당 이장한 회장이 구설에 올랐다. 운전사에게 막말과 폭언을 쏟아부은 것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업계의 갑질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미스터피자를 운영하는 MP그룹의 오너인 정우현 전 회장은 온갖 갑질 행태로 ‘갑질의 종합판’으로 떠올랐다. 전 가맹점주들의 연합 모임에 온갖 보복을 지시하고 자신의 가족과 친족들은 회사 자금으로 호화 생활을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순수한 청년의 성공담이 뮤지컬과 책 등으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던 ‘전설의 주인공’ 총각네 야채가게 이영석 대표도 갑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대표는 가맹점주들에게 욕설·폭력·금품 상납 요구 등의 갑질 행태로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신선설농탕·하림 등 수많은 프랜차이즈 업체가 갑질 행태를 지적받으며 공정위 조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도를 넘어선 갑질’을 두고 국내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과 해석이 오가고 있다.

김학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나친 인정 욕구’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인간이 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높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는 적응 능력, 즉 생존 적합도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이 이를 지각하는 경로는 남들로부터 받는 좋은 평가와 존중, 즉 ‘타인의 인정’이다. 이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일은 음식이나 섹스만큼 인간에게는 매우 강력한 쾌감이다. 모든 쾌감이 그렇듯이 ‘인정 욕구’에 따른 쾌감 역시 보상이 커질수록 점차 강력해질 수 있는 것이다. 

뇌 안의 보상 메커니즘은 항상 기대보다 더 큰 보상에만 반응하는 것이 특징이다. 타인으로부터 늘 자신의 성취와 높은 지위에 대해 인정받는 데 익숙해진 기업 CEO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과도하고 무분별한 인정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고 반복될수록 ‘인정 중독’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정 욕구가 증가함에 따라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존중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게 되면 이전보다 점차 높은 수준의 존중과 칭찬·존경심·경외심을 받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때 ‘일상적인 수준의 사과나 감사’ 표시에 오히려 실망감을 느끼거나 혹은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급기야 이러한 실망감을 보상받으려는 동기는 ‘분노’로 표출되기에 이르다. 상대에 대한 막말과 폭언, 혹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등의 갑질 행태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정 중독은 중독보다 더 강력하고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이를 대체할 만한 더 강력한 가치를 가진 다른 보상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오랫동안 해묵은 습관을 바꾸는 일은 매우 강한 저항감을 필요로 하고 기존의 관습과 큰 충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갑질의 결과가 행동 습관의 수정이 필요할 정도로 ‘강력한 처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최근 갑질 논란에 휘말린 정우현(위) 전 MP그룹 회장과 이장한 종근당 회장/사진제공=연합뉴스

◆더 거세지는 ‘을의 저항’

물론 모든 기업의 CEO가 다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올라갈수록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는 ‘존경받는 CEO’도 적지 않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 유독 갑질에 대한 고발이 넘치는 데는 사회적 분위기의 영향이 크다는 얘기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CEO와 직원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과도기”라며 “상명하달식 군대 문화에 익숙한 낡은 사고방식의 CEO들이 이와 같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심리적으로 보면 기성세대인 CEO들은 “내가 직원들을 고용해 먹고살게 해주는 데 뭔 불평이 그리 많아”라는 낡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쉽다. 특히 CEO들의 주변에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반대를 표하는 부하 직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아부하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의 평소 행동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조차 어렵다.

사실 갑질은 ‘요즘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이익’ 등이 강조되며 수면 밑에서만 쉬쉬하며 전해져 왔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같은 분위기가 빠르게 반전되고 있다. ‘개별 인권’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급속히 확산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제 한국 어디에도 비밀이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며 “갑질을 일삼은 CEO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무고나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엄중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화심리학을 연구하는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인류는 진화 역사의 대부분에 걸쳐 각 개인들 간에 재산이나 특권의 차이가 거의 없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왔다”고 꼬집는다.

인간의 마음은 ‘강자가 약자를 거리낌 없이 지배하고 약자가 강자를 군말 없이 따르게끔’ 진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아랫사람들이 ‘지나친 갑질에 분노해 행동에 나서게끔’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갑질 CEO들은 앞으로 점점 더 거센 ‘을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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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8-1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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