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 싱크탱크 : 한국국방연구원]
국방 현안에서 전쟁 시뮬레이션까지 ‘남다른 역할’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로 37. 정부 주요 산하기관이 모여 있는 이곳에 안보·국방의 밑그림을 그리는 종합 연구 기관이 있다.

국방부 산하 국책 연구 기관이자 국방 정책의 산실로 평가받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다.

이곳 연구원에서 매년 쏟아내는 연구 과제만 200여 개다. 연구의 범위는 국방 정책과 안보 전략, 무기 체계, 국방 경영 혁신 등 국방 전반에 관한 주제를 총망라한다.

미래 국방의 설계를 짊어지고 있는 이들은 누굴까. 11월 21일, 국방연구원에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여성 연구원 4인을 만났다.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왼쪽부터) 독고순 책임연구위원, 손효종 선임연구원, 박유라 연구원, 김정은 연구위원. /서범세 기자

"신기하다는 반응이죠. 도통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들도 많고요(웃음).”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올해로 11년을 맞은 손효종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직무를 외부에 설명하는 일이 아직도 어렵다.

“제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택시 운전사에게 ‘국방연구원’에 가자고 하면 내비게이션에도 주소가 나오지 않았어요. 요즘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업무 특성상 (일을) 설명하는 게 쉽지만은 않죠.”

한국국방연구원(원장 노훈)은 국방 자주화가 탄력을 받던 1979년 1월 국방관리연구소로 문을 처음 열었다.

당시에는 국방과학연구소의 부설 기관으로 국방 자원 관리 분야를 집중 연구했지만 그 후 국방 현안이 급변하면서 종합 정책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 독립적인 국방 정책 종합 연구 기관으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

출범 후 채 10년이 안 돼 국방의 이정표를 그리는 싱크탱크로 위상을 드높인 것이다.

어느덧 38년, 바뀐 것은 연구소의 지위뿐만이 아니다. 출범 초기 80명의 인력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연구진만 330여 명, 총인력은 500여 명으로 규모도 커졌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적 이슈가 급변한 만큼 연구원의 연구 주제 또한 다양해졌다. 국방 자원 관리 등 한정된 범위에서 현재 중·장기 국방 정책, 안보 전략, 군사력 건설, 무기 체계 획득 정책, 정보화, 국방 경영 혁신 등 국방 전반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매년 쏟아내는 수행 과제만 200개가 넘는다.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운영연구센터 인력정책연구실 실장(책임연구위원)은 국방연구원 역사의 산증인이다. 창립 멤버는 아니지만 38년사의 대부분을 함께하며 연구원의 기틀을 다졌다.

“1988년 입사 후 30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많은 연구를 진행했겠어요. 탈냉전 시대 병영 문화의 변화에서부터 오늘날 저출산에 따른 국방 문제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연구 과제를 수행했습니다.”

국방연구원은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2009년 기존 8개 연구센터를 4개 연구센터로 통합해 지금의 틀을 마련했다. △안보전략연구센터 △군사기획연구센터 △국방획득연구센터 △국방운영연구센터가 올 9월 취임한 노훈 신임 원장의 지휘 아래 움직이고 있다.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병영 문화 개선부터 워게임까지

①안보전략연구센터

먼저 한국형 안보 전략과 국방 비전을 구상하는 안보전략연구센터는 국방전략연구실·국제전략연구실·북한군사연구실로 이뤄져 있다.

안보 전략 환경을 분석해 국가 차원의 안보 전략과 국방 정책 기조, 정책 방향을 설계해 정책에 반영하는 중요한 임무를 안고 있다. 손효종 선임연구원은 “국방이란 커다란 우산을 받치는 중요한 축의 하나”라고 안보전략연구센터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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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선임연구원이 몸담은 북한군사연구실은 한반도의 특성상 가장 중요한 임무를 안고 있는 곳 중 하나다. 북한 군사 위협의 실체를 파악하고 대북 정책을 연구·개발(R&D)해 국방부와 각 군, 정부의 관련 부처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입사 후 줄곧 북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국제정치를 전공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이론으로는 북한의 실상을 알기가 쉽지 않았죠. 이곳에서는 북한의 사례 연구를 진행하며 정치·군사·사회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보안상 업무 공개에 제한이 있지만 북한의 핵개발 관련 이슈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북한과 관련된 발언)이 가지는 함의와 대응책을 연구하는 것 또한 우리 연구실의 업무입니다.”

연구원 생활 11년째. 그는 지난해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딴 데 이어 올해 세계 최고 권위의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 후 인더월드(Marquis Who’s Who)’에 등재되는 영예를 안았다.

“국제정치학 석사를 졸업한 후 갈림길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국제정치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이를 나라와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특히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돼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연구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②군사기획연구센터

다소 정적인 곳으로 여겨지는 학술 연구 기관에도 전투태세가 충만한 곳이 있다. 바로 군사태세의 과학적 진단을 통해 군사력을 기획하는 군사기획연구센터다.

전략기획연구실·전력소요분석단·국방모의연구실 등 3개의 연구실로 구성된 군사기획연구센터는 군사 전략, 군 구조, 미래 작전 수행, 전력 소요, 국방 모의 모델에 관련된 연구를 통해 국방 정책 결정에 대한 과학적 분석 지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투력의 계량적 평가 분야에 정량적 기법을 도입해 현안에 대한 합리적 의사결정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군사 전략부터 어떤 무기 체계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등을 알아야 해요. 하지만 실제 전쟁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에 전쟁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인 ‘워게임’ 등을 통해 저비용·고효율의 결과 값을 도출해 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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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기획연구센터 전력소요분석단 소속 김정은 연구위원은 통계학 박사다. 지금은 전쟁과 관련된 용어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어울리는 옷은 아니었다.

“첫 직장은 병원이었어요. 이후 보험사에서 근무하다가 이곳에 오게 됐죠. 당시에는 ‘전력(電力)과 관련된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용어들이 낯설었는데 데이터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일의 범주가 크게 다르지 않았죠. 통계학 업무를 기본으로 국방 정책에 기여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이기도 했고요.”

그가 속한 전력소요분석단은 우리 군의 전투력 증강을 위해 군이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무기 체계에 대한 심층 연구를 수행한다.

예컨대 국방 시뮬레이션 모형, 의사결정 지원 도구 및 방법론을 사용해 무기 체계의 성능 및 수량의 적절성, 무기 체계 간의 도입 우선순위 등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다.

“해당 전력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기술적으로 더 좋은 것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무기 체계를 산다면 언제 획득하는 게 좋을까, 또 얼마만큼 사야 할까 등 국방부의 관점에 기술적인 측면, 또 민간의 시각까지 고려해 합리적인 결정인지 검증하는 업무라고 볼 수 있죠.”

③국방획득연구센터

그런가 하면 국방획득연구센터는 군사획득연구센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실제 해당 무기·장비 등 군수품의 획득을 성능과 비용 측면에서 고민해 최적의 무기 체계 획득을 돕는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향상시켜 한정된 자원인 국방 예산의 효율적 사용에 기여하는 것이다.

“국방획득연구센터는 획득사업분석단·비용방산연구실·정보화연구실 등 총 3개 부문으로 나눠지는데 무기를 획득할 때 비용과 성능의 타당성을 따져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박유라 연구원은 국방획득연구센터 획득사업분석단 소속이다. 공학도(전자과) 출신의 그는 일찌감치 무기 체계에 대한 관심으로 획득사업분석단에 이끌렸다.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사실은 여군에 지원하고 싶었어요. 첨단 무기의 성능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여군으로 복무하면서 제 전공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제 전공이 무기 체계와 연결돼 혹시라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어요.”

여군에는 가지 못했지만 그의 못다 이룬 꿈은 국방연구원에서 피어나고 있다. 입사 후 4년 차. 현재 획득사업분석단에서 무기 체계 획득과 관련한 사업 타당성 조사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같은 연구를 하더라도 공학도냐, 경영학도냐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더라고요. 공학도인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이지만 경영학을 전공한 분들은 비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정반대 분야의 전공자들이 만나 다방면의 측면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출할 수 있는 거죠.”

④국방운영연구센터

마지막으로 인력·물자·예산 등 국방의 3대 핵심 자원의 효율적인 확보와 운영을 위해 조사 분석 업무를 진행하는 국방운영연구센터가 있다. 이곳은 국방재정분석단·인력정책연구실·군수시설연구실·행동과학연구실 등 총 4개의 연구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독고순 책임연구위원은 인력정책연구실의 실장이다. 정예 국방 인력의 확보와 유지를 위해 필요한 정책과 제도 개발이 주 업무다.

“문민정부에서의 군의 역할, 군인의 인권 신장이나 여군의 확대 등은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위험한 주제였기 때문에 연구할 때 고생을 많이 했죠.”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30년 연구 인생 만큼 독고 책임연구위원의 연구 성과도 배불리 쌓였다. 2009년 수립된 국방부의 제1차 군인 복지 기본 계획과 군 인권 진단 및 발전 기반 조성 방안 연구, 사회 환경 변화에 대비한 국방 인력 획득 전략 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통해 2011년 장관 및 총리표창을 수상했고 최근에는 국방부 자문위원, 국방부 예산집행 심의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사회학을 전공한 제가 할 수 있는 연구는 군과 사회(민)가 보다 잘 소통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주제들이라고 생각했어요. 30년간 그러한 분야에서 줄곧 연구를 계속해 왔죠.”

◆‘금녀의 벽’은 편견, 여성 노동환경 ‘최고’

독고 책임연구위원은 다양한 전공의 전문 연구 인력들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4명의 여성 연구원들만 놓고 봐도 사회학·통계학·전자학·국제정치 등 전공이 모두 제각각이다.

국방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이공계와 인문사회계열의 비율은 각각 55%, 45%다. 경제학·국제정치·행정학·심리학·교육학·사회학·경영공학·산업공학·핵공학까지 다양한 전공의 연구진이 포진해 있다.

“국방연구원에는 국제정치부터 핵공학까지 웬만한 전공 분야가 다 모여 있어요. 이런 연구소는 사실 거의 없거든요. 처음 설립 당시에는 우리 연구원 역시 경영공학·산업공학 등 이공계의 비율이 높았는데 최근 들어 인문사회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요. 다양한 관점을 통해 보다 더 합리적인 결론에 다다를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은 국방부 산하 정책 연구 기관으로 ‘금녀(禁女)의 벽’이 두터울 것이란 편견도 깼다. 2016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으로 국방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여성 연구원 비율은 18.8%(60명)다.

과학기술 정부 출연 연구 기관 28곳의 평균인 20.1%(2903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국방부 산하 연구 기관 중에서는 단연 1위의 기록이다. 타 연구 기관들은 7~8%대 한 자릿수를 기록해 격차가 꽤 큰 편이다.

독고 책임연구위원은 국방 연구에 ‘금녀의 벽’이란 선입견이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성이 국방 정책을 어떻게 연구할지 우려를 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기 앉은 우리를 보면 아시다시피 선입견에 부합하지 않는 인물들이 많아요. 국방 연구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군인의 특성과 체력이나 터프함 등을 요구하지 않죠. 실제 현역 연구원보다 민간 출신이 더 많고요. 다양한 종류의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능력을 국방 분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만 있다면 (성별과 상관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기회의 문은 열려 있다고 봐요.”
'미래 국방' 설계하는 한국국방연구원, 여성 연구원을 만나다
(사진) 서울시 동대문구에 자리한 한국국방연구원 직장 어린이집.

여성 직원 비율이 높아지면서 여성에 우호적인 노동환경도 조성됐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기본적인 복지제도 외에 여성휴게실·수유실·요가프로그램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다.

특히 2016년 3월에는 국방연구원 직장어린이집이 개원되면서 워킹맘을 비롯한 직장인 부부가 안심하고 회사를 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두 아이를 둔 손효종 선임연구원도 어린이집의 혜택을 톡톡히 봤다. “둘째가 네 살일 때 어린이집이 문을 열었어요. (국방연구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가까운 것은 물론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죠. 학부모들이 전부 같은 연구원 사람이니 관심사도 유사하고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도 긍정적 효과를 준 것 같아요.”

4명의 연구진은 앞으로도 각자의 위치에서 국방 연구에 매진할 계획이다. 독고 책임연구위원은 저출산에 따른 인력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다.

“우리의 인력 획득 제도는 1960년대 만들어진 법령에서 거의 멈춰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청년들의 마인드도 많이 바뀌었죠. 이들의 저항성을 줄일 수 있는 쪽에서 개선안을 마련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김 연구위원은 민과 군을 잇는 가교 역할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민에는 군의 역할을 설명하고 반대로 군에는 민의 시각을 전달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계속 다져 나가겠습니다.”

주니어급인 손 선임연구원과 박 연구원은 시니어(선배)들을 좇아 학습 의지를 불태웠다. “이론과 실제를 연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 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연구원에서 대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보다 연구에 충실해 국방 정책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