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 인터뷰
“기업·정부 지원 없인 ‘정현 신드롬’도 곧 물거품…한경과 협업해 ATP 월드 투어 250 유치할 것”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4강 신화를 쓴 정현(22) 선수 덕에 전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중심으로 라켓 등 테니스 용품의 매출이 껑충 뛰었고 이른바 ‘테니스 룩’도 유행할 조짐이다. 테니스장엔 강습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곽용운(58) 대한테니스협회장은 “한국 테니스가 정현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한 데에는 삼성 등 기업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며 “‘정현 신드롬’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정부·지방자치단체·기업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DP 세계 11위 수준에 걸맞은 테니스 인프라 갖춰야”
약력 : 1960년생. 1977년 장호홍종문배 전국주니어초청 테니스대회 단식 준우승·복식 우승. 1982년 건국대 체육교육과 졸업. 1982년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국군체육부대(상무) 선수. 2014년 재미대한테니스협회장. 2016년 제27대 대한테니스협회장(현). 2017년 아시아테니스연맹 부회장(현). /사진=이승재 기자

▶한국 테니스의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맞습니다. 정현 선수가 4대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호주 오픈에서 4강에 오르면서 세계인을 놀라게 했죠. 특히 16강전에서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31) 선수에게 승리를 거뒀을 때 국내 테니스인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한국 선수가 조코비치 선수와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3 대 0 완승을 거뒀으니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죠.”

▶4대 메이저 대회의 차이가 뭡니까.

“매년 1월 열리는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5월), 7월 열리는 윔블던(영국 오픈), US 오픈(9월)을 4대 메이저 대회로 칭합니다. 국가별로 날씨가 가장 온화한 시즌에 대회를 개최하는 게 특징입니다.

각 대회마다 코트의 재질도 다른데요, 호주 오픈과 US 오픈은 하드(아크릴) 코트에서 경기를 치르는 반면 프랑스 오픈은 클레이(흙) 코트에서, 윔블던은 잔디 코트에서 대회를 진행합니다.

테니스 대회는 골프와 달리 남녀 대회 상금에 차이가 없는 것도 특징입니다. 상금 규모는 US 오픈이 가장 큽니다. 테니스 US 오픈의 우승 상금은 39억4000만원으로 골프 US 오픈(24억3000만원)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들 메이저 대회를 한번 개최하는 데 드는 상금 규모만 총 550억원정도인데요, TV 중계권료와 광고료 등 수익금은 총 상금 규모의 약 4배인 2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현 선수에 대한 대우는 어떻게 바뀌나요.

“테니스 선수에 대한 대우는 세계 랭킹과 인기도를 종합해 결정됩니다. 랭킹 1위인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32) 선수보다 2위인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37) 선수의 국제 대회 초청비가 더 높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페더러 선수를 국제 대회 시범 경기에 초청하려면 하루에 약 10억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정현 선수는 호주 오픈을 통해 세계 랭킹 28위의 국제적 스타로 발돋움한 만큼 앞으로 웬만한 대회에는 초청비를 받고 출전하게 될 것입니다. 선수 본인은 물론 가족을 위한 숙소도 별도로 제공될 겁니다.”

▶제2의 정현 선수가 나와야 할 텐데요.

“국내 테니스 인구가 약 100만 명 수준으로 감소 추세인 게 안타깝죠. 선수층도 매우 얇고요. 협회에 등록된 선수는 약 1400명 정도입니다. 정현 선수 덕분에 테니스 인구가 다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국내 테니스가 과거 학교 체육 위주에서 선진국처럼 클럽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선수 출신 지도자가 테니스 꿈나무를 방과 후 집중 지도하는 아카데미가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테니스 유망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습니다. 건국대 소속 권순우(21·건국대) 선수가 대표적입니다. 이번 호주 오픈 본선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선수고요.

홍성찬(21) 선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15년 호주 오픈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의 쾌거를 이뤘죠.

특히 청각장애 3급인 이덕희(20·서울특별시청) 선수는 세계 언론이 주목하고 있죠. 양쪽 귀가 모두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2016년 국내 남자 테니스 사상 최연소 세계 랭킹 200위권 진입 기록을 세운 선수죠.”
“GDP 세계 11위 수준에 걸맞은 테니스 인프라 갖춰야”
곽용운 대한테니스협회장. /사진=이승재 기자

▶꿈나무 육성을 위한 협회 차원의 방안이 있나요.

“매직테니스(어린이 테니스)를 육성 중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한 상태인데요,

매직테니스는 일반 테니스공보다 크고 푹신한 공과 가벼운 라켓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코트 규모도 일반 코트의 4분의 1 수준인 만큼 학교 실내 체육관에서도 충분히 교육이 가능합니다.

협회가 운영하는 장충 장호테니스장에서 매직테니스 강습과 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어요. 지난해 교육대 졸업생 등을 대상으로 매직테니스 지도자를 중점 육성했습니다. 전국의 초등학교 방과 후 학습에 매직테니스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테니스장을 과거보다 찾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야외 코트 위주였던 과거와 달리 실내 코트가 속속 생기고 있습니다. 인천·의정부·양구·김천·순창·순천 등 지방을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다만, 서울은 지방에 비해 실내 코트는 물론 실외 코트도 찾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서울에도 국제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는 대규모 실내 코트가 꼭 필요합니다.

우선 올림픽 테니스장 센터코트의 리모델링이 절실합니다. 제10회 아시안 게임(1986년)을 앞두고 지어진 코트입니다. 지붕을 덮어 실내 코트로 바꿀 필요성이 있습니다.

숫자도 더욱 늘려야 합니다. 3면 코트 기준 실내 테니스장 한 곳을 조성하는 데 15억원 정도 들어갑니다. 골프장 건설비용보다 훨씬 저렴합니다.

테니스 선진국이자 국내총생산(GDP) 세계 3위인 일본은 약 600개의 실내 테니스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GDP 11위인 한국의 실내 테니스장은 6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기업의 후원도 줄고 있다죠.

“한국 테니스 발전에는 삼성의 역할이 컸습니다. 1992년 삼성물산(이후 삼성증권) 테니스단 창단 이후 조윤정·박성희 등 걸출한 스타 선수를 키웠습니다. 두 차례의 US 오픈 16강을 이뤄낸 이형택 이형택테니스아카데미재단 이사장도 삼성물산 소속이었죠.

삼성은 2014년 삼성증권 테니스단을 해체했지만 정현에 대한 후원을 이어 왔습니다. 대한테니스협회 역시 삼성으로부터 2015년부터 3년간 매년 3억원의 주니어 테니스 발전 기금을 지원받아 왔습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덕희 선수를 후원하죠.

하지만 올 들어 삼성이 테니스협회 등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제2·3의 정현 육성을 위해 기업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향후 목표가 궁금합니다.

“우선 총 상금 규모 5만~15만 달러의 국제 남자 챌린저 대회(서울 오픈, 부산 오픈, 김천 오픈, 광주 오픈)를 8개로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세계 랭킹 60위권 선수들도 참가하는 대회입니다.

총 상금 5만 달러 규모 챌린저 대회를 개최하는 데 2억5000만원 정도 드는데 약 10일간 열리는 국제 대회인 만큼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습니다.

챌린저 대회보다 규모가 큰 세계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월드 투어 대회도 유치할 계획입니다. 우승 시 세계 랭킹 포인트 가점 기준에 따라 250대회, 500대회, 1000대회로 구분합니다.

챌린저 대회는 우승 시 80~125포인트를 부여하고 이들 경기의 상위 대회가 우승 시 2000점을 부여하는 4대 메이저 대회입니다.

한국경제신문과 업무 협약을 체결해 협회장 재임 기간인 2020년 안에 ATP 월드 투어 250을 반드시 유치할 겁니다.

한국경제신문은 과거 재무부장관기 금융회사 테니스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내 테니스 발전에 기여했었죠. 테니스 저변 확대와 유망주 발굴을 위한 공동 사업도 추진할 계획입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