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희 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 약사에서 국내 최초·최대의 독립형 호스피스 운영자로
"행복한 죽음을 도와드립니다."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 “죽음은 준비하지 않으면 ‘당하게’ 되고 준비하면 ‘맞이하게’ 됩니다.” 원주희 샘물호스피스 선교회 회장은 20년 넘게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고 있다.

원 회장은 호스피스라는 용어가 낯설었던 1993년, 10여 년의 준비 끝에 한국 최초로 독립형 시설 호스피스를 열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샘물호스피스선교회를 통해 모금된 후원금으로 샘물호스피스병원(용인), 구미 호스피스 쉼터, 네팔과 캄보디아 호스피스 시설에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의료법상 환자들에게 최소한의 본인부담금만 받고 비품비, 식사비, 장례비, 환자 가족의 숙식까지 사실상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가 약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말기 환자들의 인생 마지막 무대를 위해 봉사하는 이유가 뭘까.

◆버려진 농가주택에서 국내 최대 호스피스로

“육군 장교 시절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죽을뻔한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어요. 제대 후 약국을 운영할 때에는 폐결핵을 앓았죠. 죽음의 두려움을 직접 느끼고 극복한 사람으로서 죽음에 매여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어요. 돈이 많아야 편안한 마지막이 아니라 소외당한 사람들조차 마지막은 평등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ROTC 육군 의정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후 약사가 된 그는 37살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했다. 호스피스를 운영하기 위해 42살에 목사가 됐고 지인의 사과농장에서 낡은 농가주택을 개조해 말기 암 환자들을 돌봤다.

원 회장의 소문을 듣고 외부에서 봉사하러 온 의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하나 둘 늘었고, 후원금도 생기기 시작했다. 환자는 날로 많아졌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시설을 세 번이나 옮겨 다녀야 했다.

“‘장기와 시신을 팔아먹는 장사꾼이다.’, ‘암 환자가 목욕한 물이 논에 흘러오면 암이 전염된다.’ 등 거짓 소문이 퍼졌고 주민들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녀야 했어요. 20년 넘게 환자들과 함께 하며 체력적인 소모도 컸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에 맞서고 설득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죠.”

이제는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변화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독립형 호스피스가 됐다. 지금까지 샘물호스피스 병원을 거친 환자는 1만여 명. 환자가 늘면서 건물을 10번이나 증축해야 했다. 지금은 의사 8명, 간호사 70명. 요양보호사가 90명이 일하고 있다.

◆식사비, 비품비, 가족 숙식까지 전액 후원으로 운영
"행복한 죽음을 도와드립니다."
샘물 호스피스는 공간 디자인에서도 환자를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빨간 지붕을 단 하얀색 건물은 마치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아프면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 소외감을 느껴요. 요양 시설에 보낼 때도 왠지 모를 죄책감에 빠지죠. 그런 첫인상을 주는 게 바로 감옥 같은 건물 디자인이거든요. 죽어간다고 해서 버려진 인생이 아니잖아요.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생의 마지막 호텔이다.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VIP다.’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후원으로 운영되는 곳이라고 해서 꼭 허름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샘물호스피스, 에이즈 환자를 위한 치과 버스 등 샘물선교회의 모든 활동은 사실상 무료로 이뤄지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한 환자도 최소한의 본인부담금을 제외한 비품비, 식비, 가족의 숙식비까지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모든 활동은 후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포스코 청암재단에서 청암상을 통해 2억원을 후원받았죠. 이렇게 기업의 후원부터 몇 천 원씩 후원하는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이 모여 지금까지 총 350억원의 후원금을 받았어요. 이런 활동이 이어져야 나중에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아플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후원해주시는 것 같아요.”

샘물 호스피스 선교회는 1년에 한 번씩 회계 감사보고를 진행하고 매달 후원자들에게 뉴스레터와 보고서를 통해 투명하게후원 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2015년 7월 15일부터는 정부에서도 암관리법 내에 호스피스 활동을 포함시켜 제도권 안에서 운영하도록 했고, 2018년 2월 4일부터는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말기 암, 말기에이즈, 만성간경화,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제도권 안에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고, 운영 시스템도 안정화됐다.

“호스피스가 제도화되면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택’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아요. 웰 다잉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품위 있는 마무리예요. 죽음을 침묵하고 터부시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해요.

죽음을 알고 준비할수록 오늘의 삶이 더 중요해지거든요. 오늘이 내 아름다운 마지막 흔적이 될 수도 있으니깐요. 그래서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삶의 스승이죠. 그렇기에 죽음을 터부시하는 문화를 없애고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바른 교육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