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클리프 프라이어 영국 BSC CEO...정부 추진 중인 ‘사회적가치기금’의 모델


[영국 런던=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임팩트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정부는 올해 2월 향후 5년간 3000억원 수준의 사회가치기금(Social Benefit Fund)을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로 이 사회가치기금의 모델이 된 것이 바로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캐피털(BSC)’이다. 영국의 임팩트 투자 활성화의 중심 역할을 해 온 BSC는 2012년 설립된 일종의 사회 투자 도매 은행이다. BSC가 벤처캐피털(VC)이나 액셀러레이터 같은 중간 지원 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면 이들이 이를 사회적 기업들이나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빅소사이어티캐피털 본사에서 5월 11일 클리프 프라이어 BSC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임팩트 투자, 이전에 없던 방식 고민해야”
(사진) 클리프 프라이어 CEO는 2016년 3월부터 BSC의 CEO를 맡고 있다. 1만3000여 개의 스타트업을 키워낸 사회적 투자 재단 ‘언리미티드’의 대표를 지낸 바 있다. 50여 개 국가가 참여한 ‘글로벌 소셜 기업가’ 네트워크를 설립하기도 했다.

◆ “처음 시도했던 모든 것이 시행착오, 실패를 각오하라”

-한국은 최근 BSC를 모델로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BSC를 처음 설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영국의 BSC는 2012년 설립됐지만 처음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8년 무렵입니다. 본격적으로 첫발을 떼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만 4년이 걸린 거죠. 당시 영국은 이미 다양한 소셜 벤처들, 협동조합, 비영리기관들이 활약하고 있었고 이들을 위한 투자 또한 매우 다양했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관련 분야가 많이 발달해 있었죠. 그런데도 처음 시작 단계부터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데까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BSC도 2012년 설립됐지만 2014~2015년 무렵까지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투자 금액이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에서 2015년에만 투자 금액이 3배가 늘어났어요. 지금은 영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은 대략 20억파운드(약 3조원)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처음 2~3년간 시장이 거의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우리가 준비했던 계획은 다 틀렸던 겁니다. 실제로 소셜 벤처를 운영하는 기업가들이나 이들에게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우리 기대만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거죠. 이런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이 없었죠. 시장의 주체가 되는 기업가들과 투자자들이 ‘임팩트 투자’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건 한국을 포함한 그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시행착오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나기는 힘들거든요.”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BSC는 무엇을 했나요.

“임팩트 투자는 투자의 규모나 위험, 투자 기술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투자와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처음 2~3년 동안 BSC가 주력한 것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었어요. 기존 시장의 접근 방식을 차용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이 때문에 혁신적인 투자 상품을 개발하는 것부터 새로운 투자 대상을 발굴하는 것까지 모두 다 우리만의 시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 가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현재 BSC는 정말 다양한 분야에 새로운 방식의 투자를 폭넓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투자 모델의 대부분이 우리가 직접 개발한 것들입니다.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투자 모델을 도입하고 투자 대상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투자자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구도 우리에게 투자를 먼저 받겠다고 찾아오지 않아요. 저 또한 BSC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매일 발로 뛰어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지금도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우리가 먼저 밖에 나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투자 기회’를 만드는 걸 도와줘야 한다고요.”

◆ “연 30%씩 성장하는 영국 임팩트 투자시장, 대규모 자금 투입 효과”

-한국은 임팩트 투자시장이 이제 막 태동한 단계입니다. 초기의 시행착오 기간을 건너뛸 수는 없지만 이 기간을 짧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현재 저는 아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12개 국가에서 임팩트 투자를 활성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느낀 것은 모든 나라마다 각기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금융시장의 발전 정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문제들이 생겨난다면 국민들은 이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로 누구를 생각할까요. 미국은 ‘기업’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국은 ‘정부’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은 ‘기업과 정부, 민간’이 다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또 투자자들이 자신들의 금융 수익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얼마나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바로 이런 것들에서부터 논의의 출발점이 달라집니다.

한국에 해주고 싶은 가장 중요한 말은 이겁니다. 우리를 따라하지 마세요. 한국은 한국 시장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BSC를 포함해 영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이 겪어 온 시행착오를 통해 한국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찾은 답이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답은 아니라는 겁니다.”

-BSC가 ‘도매 은행’의 모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설립할 때부터 우리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영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었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소셜 벤처들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영국의 임팩트 투자시장’ 자체가 되는 것은 피해야 했죠.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셜 벤처들에 자금을 지원해주는 VC나 액셀러레이터 같은 중간 지원 기관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초기에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결국 BSC의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도매 은행’ 모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BSC는 출범 당시 6억 파운드(약 1조원) 정도의 자금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임팩트 투자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대규모의 투자 자금’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는 BSC가 도매 은행 모델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BSC는 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의 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했죠. 대규모의 자금이 받쳐줘야 사회적으로 주목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투자 자금을 임팩트 시장으로 끌어오는 데도 유리할 수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략이 통했나’를 묻는다면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겪은 많은 시행착오 중 하나죠. 하지만 현재의 시점으로 말하면 ‘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는 무엇보다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필요한 투자 자금보다 항상 더 많은 투자 자금을 준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현재 영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은 평균 연 30% 이상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가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더욱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할 것입니다.”

-BSC는 2012년 정부의 주도 하에 설립됐지만 ‘독립적인 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독립성이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수익률과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임팩트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투자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독립성’이 중요한 더 큰 이유는 우리가 ‘도매 은행 모델’을 선택한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BSC는 처음부터 ‘임팩트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목표가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자면 BSC 역시 ‘정부’가 아닌 철저히 ‘시장이 주도하는’ 기관으로 운영돼야 했죠. 독립성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한국은 임팩트 투자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임팩트 투자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제는 정부 혼자서 풀 수 없고 민간의 힘만으로도 풀 수 없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임팩트 투자의 역할은 바로 정부와 민간의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겁니다.

임팩트 투자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팩트 투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사회문제들은 분명 적지 않습니다. BSC는 현재 소셜 하우징, 클린 에너지 등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심각한 사회문제들은 해결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이르면 이를수록 사회에 미치는 해가 훨씬 줄어들고 다루기도 쉬워집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는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벌어진 이후 해결에 나서는 경향이 있습니다. 임팩트 투자는 이를 ‘선제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임팩트 투자도 ‘투자’이기 때문에 투자자에게는 수익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입니다. BSC에서는 임팩트 투자를 위해 상당히 혁신적인 투자 상품들을 도입한 바 있습니다. 사회성과연계채권(SIB)이 그중 하나죠. 피터버러 교도소 재소자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민간에서 500만 파운드를 투자 받았습니다. 이후 재범률을 낮춘 성과에 따라 수익률을 얹어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는데, 6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 투자자들은 원금과 연 수익 3%를 챙겨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모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 모델이 성공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입니다. 이미 영국 교도소의 재범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해결책이 확실했기 때문에 투자를 선택한 겁니다. 특히 최근에는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VC 등을 포함한 투자 전문가들 또한 임팩트 투자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수익률도 정통적인 금융 상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더 높은 것도 늘고 있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투자는 임팩트 투자뿐만 아니라 그 어떤 투자라도 위험합니다. 마찬가지로 시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위험 요소를 줄여 나가는 혁신을 꾀한다면 임팩트 투자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이 발전하기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영국과 한국 시장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이미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영국에 비해 한국은 이제 막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단계라는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를 키워나가는 데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련 기관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임팩트 투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중간 지원 기관들이 필요합니다. 또 사회적인 역할을 잘 수행해 줄 수 있는 NGO와 소셜벤처 같은 플레이어들도 필요하고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서 재정적으로 더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분야에 투자하고 직업을 찾고자 하는 인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알고 있고요. 한국은 임팩트 투자시장이 전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성장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잠재력이 크죠. 적어도 한국의 임팩트 투자시장은 영국보다 빠른 속도로 성숙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용어 설명-임팩트 투자

투자 행위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나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나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행태를 말한다. 이전까지의 착한 투자는 사회적으로 ‘나쁜 기업’을 배제하고 ‘착한 기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사회책임투자(SRI)와 유사하지만 임팩트 투자는 구체적인 수익률을 가지고 사회문제나 환경문제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업이나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며 장기적으로 투자한다는 점이 다르다.

◆ 돋보기- 재범률 낮아지면 수익도 쑥쑥…영국의 사회성과연계채권(SIB) 모델

최근 임팩트 투자는 만성적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각국 정부와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복지 진영에서도 이목을 끌고 있다. 정부가 채워주지 못하는 틈새를 임팩트 투자를 통한 민간 자본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피터버러시에서 발행하는 사회성과연계채권(SIB : Social Impact Bond)이다. SIB는 정부 예산과 민간 자본 간의 일대일 매칭을 통해 사회 서비스에 투자하는 채권을 말한다. 민간 자본은 일반 투자자들로부터 펀딩을 받는다. 투자자들은 사회적 기업이 약속한 사회적 성과를 달성하면 이와 연계해 수익금을 지불 받는 방식이다. 이 SIB가 처음 나온 곳이 바로 영국이다.

2010년 영국 법무부는 피터버러 교도소 출소자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 SIB를 발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임팩트 투자 운용사인 소셜파이낸스가 중간 운용을 맡아 500만 파운드(약 70억원)를 조성, 이 기금으로 출소자 3000명의 주거와 일자리와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데 투자했다. 투자 목표는 재범률을 영국 평균보다 7.5% 이상 낮추는 것이었다. 6년간의 프로젝트 결과는 성공이었다. 재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은 수형자들의 재범률은 영국 평균보다 9% 낮았다. 재범률이 크게 감소하며 영국 정부 또한 관련 예산의 75% 이상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원금과 연 수익률 3%를 챙겨갔다. 이후 SIB는 빈곤$환경 등 다양한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한국을 포함한 18개국에서 80여 건 이상 진행되고 있다.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