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현 IBK기업은행 북한경제연구센터장 인터뷰-“대북경협 중국이 우위, ‘타이밍’ 놓치지 말아야”

“북한의 ‘단번 도약’, 스마트폰 다음은 전기차 될 것”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최근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이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에 저마다 경협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미 1990년대부터 남북 경협 연구를 외로이 추진한 선구자가 있다. 조봉현(54)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부소장 겸 북한경제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조 센터장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몇 안 되는 정통 북한 경제 전문가다. 박사 논문으로 ‘중소기업의 남북 경협 가능성과 활성화에 관한 연구’를 펴냈고 중소기업에서 대북 사업을 총괄하며 실무 경험도 쌓았다.

북한에 다녀온 것만 수십여 차례. 최근에는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남북 경협 시대의 초석을 닦는 데 역할을 다하고 있다.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7월 25일 조 센터장을 만났다.

-IBK기업은행이 지난 5월 ‘북한경제연구센터’를 신설했습니다.

“1990년 기업은행 조사부에 입행했어요. ‘무얼 연구하고 싶느냐’고 묻기에 ‘우리는 앞으로 북한 경제를 연구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한반도에서 북한 변수를 무시하고는 금융을 생각할 수 없고 중소기업을 전담하는 국책은행으로서 향후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IBK기업은행의 역할도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이후 실제 북한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죠.

올해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과거의 한반도가 아닌 새로운 한반도의 길이 열렸어요. 조직적으로 역량을 쌓아야 하는 단계가 된 거죠.

지난 5월 센터가 문을 열었고 최근 인력이 6명으로 늘어났어요. IBK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국책 금융회사인 만큼 중소기업이 남북 협력 시대에 참여해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잘할 겁니다.”

-처음 북한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평생을 바쳐 공부할 학문이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신문에서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에 걸린다’는 문구를 봤어요.

당시 한국 경제는 고성장을 이룩하던 시점인데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고민 끝에 분단에 기인한 경제구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체질적으로 허약한 것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가 계속 성장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분단 경제를 통일 경제로 바꾸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했죠. 그다음 남북한 통일 시 남북 경협의 주체는 누가 될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기업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연성과 민첩성을 갖춘 중소기업이죠. 대기업은 경직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북한의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당시 북한 경제와 중소기업이란 전혀 연관되지 않는 키워드를 가지고 박사 논문을 쓰게 됐죠. 그게 북한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비핵화와 경제제재를 둘러싸고 여러 말들이 나옵니다.

북·미 간 문제는 사건 하나하나 해석하는 것보다 큰 흐름 속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다만 아직까지는 서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북한이 핵시설을 신고할 것이고 미국도 그에 따른 대북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그러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같은 남북 경협 사업들도 재개할 수 있겠죠. 이후 북한이 추가적인 비핵화 검증에 들어가면 2020년 초쯤에는 우리가 구상하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 프로젝트들도 가동을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불신이 가라앉지 않고 있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협상 테이블에 앉았을까요.

“한국은행이 7월 20일 발표한 ‘2017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6년 3.9% 성장에서 2017년 마이너스 3.5%로 7%포인트 이상 하락했습니다. 굉장히 큰 낙폭이죠.

북한 내부 학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건설 사업도 계속되고 농업 생산량도 이어져 (한은 추정치보다 적은) 마이너스 1%~1%대의 성장을 했을 것으로 예측하기는 합니다만 아마 올해에도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다면 낙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북한은 무역이 GDP의 절반 정도를 차지해 대북 제재가 이어지면 북한의 경제활동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북 제재가 지속되는 한 김 위원장의 ‘경제 강국’ 목표는 불가능합니다. 성장은커녕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경제가 김정은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된 것입니다.”

-북한이 갖고 있는 잠재력을 어떻게 보십니까.

“3년 전 북한 시내에 갔을 때 길거리의 젊은 청년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다녔어요. 과거 ‘삐삐’나 유선전화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번에 스마트폰으로 확 뛴 것이죠.

북한에서는 ‘단번 도약’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은 더욱 많아질 거예요. 아직 자동차 생산 시설이 부족하지만 얼마 지나면 전기차 생산을 얘기할 것이고요. 이후에는 4차 산업혁명에 맞춰 인공지능(AI) 연구를 진행하겠죠.

우리처럼 규제가 없기 때문에 인프라와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의 정책적 결정만으로 점프할 수 있어요. 또 이전에는 핵과 미사일 실험에 투입된 뛰어난 과학기술 인력들을 경제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죠.

여기에 우리와 해외의 선진 기술과 자본이 접목된다면 단기간 내 충분히 경제성장이 가능합니다.”

-남북 경협으로 한국이 얻는 실익은 무엇일까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성장이 정체돼 있다는 점입니다. 정체된 경제를 다시 도약시키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별로 눈에 띄는 게 없습니다. 우리 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대기업에 더 이상의 점프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는 유일한 돌파구가 북한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경협이 잘된다면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이 가능합니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성공한다면 우리 기업에는 투자처가 늘고 이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또 2400만 북한 인구는 중견·중소기업에 신시장이 열리는 기회입니다. 지하자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체 규모 7000조원으로 평가되는데 경제성 있는 지하자원도 4000조원 정도에 달합니다.

우리 연구소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한반도 신경제 구상 프로젝트가 추진되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03%포인트 이상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1인당 GDP는 2024년 4만 달러, 2040년 7만 달러 이상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5년간 연평균 14만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데, 5년간의 기간을 상정해 보면 새롭게 창출될 수 있는 총 일자리 규모는 72만5000개에 달합니다.

이는 물론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해 대북 제재가 완화된다는 가능성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지나치게 장밋빛 전망이 아닌가요.

“기회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거죠.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북한이 남한과만 경제협력을 생각할까요. 아닙니다.

남북이 단절된 지난 10년간 북한은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늘렸습니다. 현 상황에서는 중국과 중국 기업들이 우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북한에서 이권을 독점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치 있는 사업에 접근해 기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남북이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의 경제개발구에 개성공단과 같은 프로젝트를 5개 정도로 늘린다면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여전합니다.

“대북 사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그 어떤 사업도 리스크 없는 사업은 없습니다. 오히려 대북 사업이 다른 사업보다 안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베트남이나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리스크로 피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 손해를 채워 주나요. 예를 들어 개성 입주 기업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공장 문을 닫게 된다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과거와 같이 남북 경제 사업이 정치적 리스크로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앞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위해 남북 간 합의를 제도화하고 필요하면 법 제정까지 불사해 경제협력의 틀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다자간 협력입니다. 남북 협력에서 끝나지 않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에 한국 외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도 같이 들어와야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비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이제는 은행과 중소기업 지원 기관의 공동 진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예컨대 중소기업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과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 기관인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컨소시엄 형태로 북한에 들어가는 거죠.

2016년 2월 가동이 중단된 후 2년여가 흘렀는데 당시 입주 업체 125곳이 재가동을 시작하려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겁니다.

지원 기관이 외부에 있다면 현지 기업의 어려움을 알아채기 쉽지 않겠지만 지원 기관이 현장에서 물밑 지원한다면 이른 시일 내 안정화를 통해 재건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이전처럼)은행만 들어가면 제 기능을 다하기 어려워요. 단순히 임금을 지급하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나아가 이익 목적이 아닌 기업 지원의 형태를 취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의 안정과 발전은 물론 북한과 우리 정부로서도 굉장히 바람직한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경협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우선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전향적으로 나오도록 설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만일 제재가 완화되지 않더라도 그 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사업들, 예를 들면 지금 하고 있는 철도와 도로 사업 같은 일들을 앞으로도 계속 발굴해 준비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은행을 비롯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들이 남북 경협에 맞춤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을 제대로 아는 전문가’도 필요합니다. 전문가가 없는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면 훗날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 북한 전문가들은 정치·군사 분야에 치우치는 경향이 컸는데 앞으로는 북한 경제 전문 인력을 양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립대를 중심으로 북한경제학과가 만들어지면서 북한경제학에 대한 비율이 높아진다면 더할나위 없겠죠.”

약력: 1964년생. 동아대 경제학 석·박사. 중소기업진흥공단 조사연구처 선임연구원. 중소·벤처기업 부사장(경영 및 대북사업 총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부소장 겸 북한경제연구센터장.(현)

poof34@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