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06호 (2019년 01월 09일)

김석동 “‘한민족 DNA’에 해답, 규제 풀어 마음껏 승부할 수 있게 해야죠”

[인터뷰]
-고대사 연구 책 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세계사 호령한 북방민족의 뿌리는 고조선”
- 대공황은 '수요 부족' 2008년 금융위기는 '부채' 때문
- 부채는 갚아야 끝나, 지금도 위기 진행 중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진실은 거꾸로
- 한국은행은 IMF행 주장, 내가 끝까지 반대
- 위기 극복 첫 출발은 '나 쁜살' 도려내기
- 한국, 지정학적으로 세계 제조업의 중심에 위치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그의 이름 앞에는 주로 ‘대책반장’, ‘소방수’, ‘구원투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금융실명제, 카드대란, 저축은행 구조조정 그리고 외환위기까지 한국 경제의 굵직굵직한 사건 때마다 최전방에서 해결사 역할을 도맡아 왔기 때문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다. 

그가 최근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그가 집필한 책은 의외로 ‘역사서’다. 그의 새 책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는 지난 2500년간 세계사를 호령했던 북방 기마민족의 광활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국내 대표적 경제 관료 출신인 그가 고대사 연구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 또한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1월 3일 김 전 위원장을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 경제는 지금 생각보다 더 엄중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이 이 위기를 극복해 내고 오히려 세계 속에서 더욱 크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로서 고대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나요. 
“30여 년간 대한민국의 다양한 경제 현장에서 일해 왔습니다. 기업에도 있었고요, 경제정책 관료로도 오랫동안 일했어요. 한국 경제가 성장해 온 과정과 위기를 극복해 온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제 전문가로서 놀라우면서도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1960년 이후 2016년까지 세계경제는 약 7.5배 증가했어요. 그런데 한국 경제는 약 40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에요.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 이런 역사를 가진 곳은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 온 경제성장을 ‘기적’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예전부터 역사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오랜 시간 이와 같은 기적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경제성장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인력·기술·자본이잖아요. 이 세 가지가 국내총생산(GDP)을 구성하는 요소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일으킨 기적은 이 세 가지 요소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문명의 뿌리, 가장 원류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한국인의 기적을 설명할 수 있는 최종 열쇠로 ‘한민족 DNA’를 발견한 겁니다.” 

-최근에도 ‘한국 경제 위기’와 관련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진단하시나요. 
“한국 경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한국 경제의 위험을 정부 정책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규제정책·노동정책·복지정책 혹은 공정거래 정책들이 위기를 초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입니다. 이렇게 덩치가 큰 나라가 정부 정책 때문에 쉽게 경제가 나빠지거나 좋아지지는 않아요. 기본적으로 한국은 세계시장 속에서 활약하며 성장해 온 나라입니다. 세계경제가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 세계경제가 더 암울해질 것으로 보입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어려움이 올 겁니다. 1920년대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는 1940년대에 회복됐고 세계경제는 1950년대에 회복됐습니다. 생각보다 경기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죠. 당시의 문제는 ‘수요 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2008년 금융 위기의 문제는 ‘부채’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가 40년 가까이 부채를 쌓아 오고 버블을 키워 왔습니다. 그게 터진 게 2008년이었죠. 이 부채는 수요 부족보다 훨씬 해결이 어렵습니다. 부채는 실제로 갚아야 해결되니까요. 사람들은 2008년 금융 위기가 해결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진행 중인 위기(ongoing crisis)’ 상태입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여파에서 세계경제가 회복되지 못했다는 건가요.  
“2008년 금융위기는 말하자면, 경제라는 배가 항해를 잘 하다가 암초를 만난 겁니다. 이 암초를 넘어가기 위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물(유동성 자금)을 퍼부었습니다. 그 결과 물이 흘러넘치게 된 겁니다. 물이 흘러가니까 사람들은 경제가 회복됐다고 생각하는데, 중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해결된 부채는 거의 없다는 겁니다. 미국의 가계 부채만 조금 해결됐고 거의 변화가 없다는 거죠. 더욱이 선진국에서 찍어낸 유동성 자금이 신흥국으로 마구 흘러들어가 전 세계가 빚더미잖습니까. 이것만 해도 시한폭탄인데 여기에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뇌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 

-한국 경제 내부적으로는 어떤가요. 가계 부채 등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데요. 
“나라 안을 들여다봐도 상황이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입니다. 쉽게 말해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마치 1km를 달려오면서 100m 달리기 하듯 한 겁니다. 너무 급하게 달려왔죠. 그러다 보니 숨이 차고 호흡 조절이 필요한 시기가 온 겁니다. 그 문제점들이 과도한 가계 부채, 산업의 경쟁력 상실, 저출산·고령화, 청년 실업, 고용 절벽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 경제의 미래가 굉장히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위기가 없다고 부인하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극복 방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을 지내면서 그 위기의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셨죠. 
“최근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화제잖아요. 당시 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10개월 앞두고 외화자금과장으로 부임했어요. 그 당시 제가 맡은 업무만 해도 환율·외화보유액·국제수지·외화수급 그리고 외국환평형기금 등을 모두 담당했죠. 말하자면 현장의 야전사령관 역할을 했던 겁니다. 당시 국내 은행이 부도나는 걸 막기 위해 새벽 2시, 3시까지 애를 썼었습니다. 저는 일부러 ‘국가부도의 날’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한국은행이 IMF에 가는 걸 반대했다고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당시 상황은 전혀 반대였어요. 저는 IMF 가는 걸 끝까지 반대했고 한국은행은 IMF에 가자고 주장했습니다. 더욱이 한국은행은 정부의 결정을 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어떤 결정에 책임도 권한도 없었고요. 위기와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게 당시도, 지금도 확고한 생각입니다.”  

-IMF에 가는 걸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가 있나요. 
“물론 어느 순간에는 IMF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을 겁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정책 입안자들이 ‘IMF에 들어간다’는 게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저는 중남미 35개 국가들이 IMF에 들어가는 걸 실제로 보고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 나라들이 IMF 이후 어떤 상황에 이르렀는지 봤기 때문에 최후의 순간까지 모든 방법을 다 써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철저한 고금리와 초긴축, 이 두 가지는 IMF가 항상 해 왔던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막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 한국은 굉장히 짧은 시간에 외환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인의 놀라운 점입니다. 저는 IMF 전에도 우리 경제가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경제구조 개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행의 부실을 정리하고 대외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는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경제 시스템을 바꿔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IMF라는 위기 상황에 봉착하자 전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그 어느 나라보다 이른 시간 안에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지금도 IMF 사람들이 당시 한국이 이뤄낸 걸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니까요. IMF는 우리에게 엄청난 고난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부실을 털어내고 왜곡된 경제 시스템을 바로잡는 기회가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위기에 강한 한국인의 DNA’란 무엇인가요.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끈질긴 생존본능, 경쟁에 있어서의 승부사 근성, 강한 집단 의지 그리고 해외시장에서 승부하는 개척자 정신입니다. 최근 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제가 한 작업은 과거 세계사를 호령했던 북방민족들과 우리 민족이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그 역사적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이었어요. 흉노·선비·돌궐·몽골·여진 등 북방민족은 짧게는 700년, 길게는 1400년간 경쟁력을 갖고 세계적인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고조선 민족’에서부터 유래됐다는 겁니다. 바로 그 북방민족 DNA의 원류에 해당하는 DNA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한민족이라는 겁니다. 위기에 강한 대한민국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방민족의 DNA를 공유하고 있는 몽골 등과 비교해 한국이 유독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한민족의 DNA’가 충분히 발현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가까운 예로 북한과만 비교해 볼게요. 같은 한민족의 DNA를 가지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은 매우 다르잖아요. 대한민국이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DNA가 유감없이 발현될 수 있도록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리더’의 역할입니다. 한민족 DNA의 네 가지 특징 중 ‘강력한 집단 의지’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굉장히 독특한 요소입니다. IMF 때 가장 잘 나타난 게 바로 이 강력한 집단 의지죠. 그런데 역사적으로 봐도 ‘강력한 집단 의지’는 아무 때나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좋은 리더가 있을 때 나타나는 거죠.” 

-지금 우리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좋은 리더’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좋은 리더’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 부하들과의 소통을 통해 이 미래 설계를 따라올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몽골의 칭기즈칸과 무굴제국의 바부르가 대표적인 예죠. 작게는 기업의 부서, 한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나라를 이끄는 것까지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강력한 폭발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구조조정입니다. 부채를 줄이고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 내고 또한 부실한 회사를 없애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나쁜 살을 도려내는 겁니다. 둘째는 산업혁명입니다. 나쁜 살을 도려내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살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생산방식의 결합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뭐든지 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셋째는 부동산에 대해 새로운 개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마음 놓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식주’를 해결해 줘야 합니다. 개인들은 평생 살아갈 주택에 대해, 기업은 공장 부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도록 해줘야 합니다. 국가가 공공 임대주택 개발을 통해 개인들의 집 걱정을 없애주고 또 기업들에는 산업단지를 제공해야 합니다. 1990년 부동산 특별 대책반장을 맡았을 때 공공 임대주택을 실현하는 게 꿈이었어요. 아직도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들이 10억원짜리 집을 사느라 빚을 질 필요도 없고 기업들도 마음껏 생산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책에서는 ‘한반도를 세계적인 물류·생산 기지화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미·중 무역 분쟁, 글로벌 경제 위기 등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입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가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을 때 이런 환경을 맞았다는 겁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입니다. 한반도는 세계 제조업이 연결되는 모든 자리를 점찍으면 그 한가운데 자리합니다. 중국의 방천과 북한의 나진항, 러시아의 하산 등 이 세 나라가 맞붙어 있는 접경 지역을 국제도시로 개발하는 겁니다. 중국은 이를 통해 태평양에 진출할 수 있고 러시아는 극동 지역에 생산 물류 기지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경제개발의 기회이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고요. 일본도 대륙과 연결할 수 있어 놓칠 리 없겠죠. 미국도 이런 거대한 아시아·태평양 경제개발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이번 세기 들어 신도시를 건설해 본 유일한 국가입니다. 도시를 건설하고 플랜트를 짓는 데서 인류 역사상 최단 시간 안에 최고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적 협력이 바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산방식의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6호(2019.01.07 ~ 2019.01.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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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1-0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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