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곽수종의 경제돋보기] 지금을 ‘위기’라고 말하는 세 가지 이유
[곽수종 한국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 한국 경제가 ‘위기’다, ‘아니다’를 놓고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경제계는 경제계대로 설왕설래한다. 2018년 말 이후 한국 경제의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외환위기’는 아니다. 외화보유액만 4000억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본질은 외화보유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처럼 0~1%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다는 ‘구조적 위기’ 국면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한 ‘위기’다.

첫째, 21세기 후기 산업사회의 시작은 미·중 간 갈등으로 시작됐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극복에 ‘중국 덕’을 본 것은 사실이다. 연간 수출액이 200억 달러를 넘었으니 말이다. 목마른 대지에 단비였다. 그런 의미에서 1992년 노태우 정권의 한·중 수교는 평가받아야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중국 경제는 19세기 인도와 함께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5% 비율을 차지하던 시대로 ‘굴기’에 성공했다. 바야흐로 G2의 시대가 된 것이다.

2018년 중반 이후 미·중 간에 관세로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아직도 갈등의 진행 향방은 불확실하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의 갈등은 1~2년 내에 쉽사리 정리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정도다. 한국이 미국 혹은 중국과 ‘균형’을 잡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째 ‘중국의 꿈’, 즉 ‘제조업 2025’는 한국 경제에는 ‘악몽’이다. 이미 인공지능(AI) 분야와 안면인식 그리고 드론 같은 분야는 미국 등 선진 기술에 근접했다는 평가다. 화웨이의 5G 장비 도입을 놓고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견제에 들어간 것도 같은 의미다. 그런 중국을 우리에게만 ‘덕’ 볼 상대만으로 간주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둘째, 인구의 고령화와 인구 수 감소는 결국 소비 감소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위기를 수출로 극복하자는 주장이 있다. 중국 14억 시장이 있으니 수출만으로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기업이 자신들이 만들 수 있는 값싸고 질 좋은 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낼 때까지 기다려 줄까.

그렇다고 치자. 위성항법장치(GPS)와 글로벌 네트워크 체제, 5G 기술, 디지털 센서 등 기술과 운용 시스템은 모두 중국의 기술을 차용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구글·퀄컴이 만든 윈도·안드로이드·통신반도체에 로열티를 내고 있던 ‘조세 경제(tax economy)’라는 2류 국가 경제구조는 단지 미국 중심의 우산 아래에 있던 한국 경제가 중국이라는 새로운 우산으로 바꿔 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단지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손 바뀜이 일어나는 것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많은 경제사회적 변수들까지 내재돼 있다.

셋째, 정부의 경제·사회 정책이 5년마다 180도로 바뀌고 사라진 결과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장기 불황이라는 답이다. 경제는 딱딱 끊어지는 스타카토의 음계가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같은 사회과학의 예술이다. ‘사회주의 경제’,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적 경제’의 역사적 의미와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미사여구가 전문가라는 지식인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조지프 슘페터 그리고 존 메이너스 케인스에 이르는 경제학은 각 시대 상황의 변화와 경제·사회 구조의 분배 시스템에 대한 변화와 도전이었다. 이러한 운용 법칙은 정부의 정책이 법과 제도를 통해 교육되고 공감대를 형성할 때만 가능하다.

지금 한국 경제에는 이 세 가지 경제 운용 법칙(modus of operandi)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래서 ‘위기’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08호(2019.01.21 ~ 2019.01.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