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김태기의 경제돋보기] 참혹한 대북 경제협력의 교훈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2월 말로 예정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후엔 남북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문제를 양보하면 경제제재 완화를 선물로 준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남북 경제협력은 북한이 한국에 경제 지원을 부탁하는 처지에서 요구하는 위치로 바뀌게 될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인데다 평화 지상주의에 빠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선심 정책이 북한이 요구하기도 전에 미리 알아서 들어주는 분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개성공단으로 돈도 벌고 주민도 통제하는 재미를 봤다. 이 때문에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개혁·개방의 길을 걷기보다 곳곳에 여러 개의 공단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에 공단 건설과 전기·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요구하고 반도체를 비롯한 자동차·조선·철강 등 한국의 핵심 산업에 대북 투자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구상은 한국이 기대한 것처럼 핵위협 해소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도움이 될까.

대북 경제협력의 역사는 참혹했다. 같은 민족이니까 북한을 돕자는 ‘선의’, 경제협력으로 평화를 만들자는 ‘안보 논리’, 천연자원이나 저임금 메리트를 활용하자는 ‘경제 실익’은 모두 실패했다.

기억에서 멀어져 있지만 1980년대 북한의 요구로 투자했던 조총련 계열 기업은 거의 다 사라졌다. 1990년대 평양 부근 남포에 경공업단지를 만든 대우의 야심 찬 투자는 허망하게 끝났다.

2000년대 북한의 무력 위협을 해소한다고 만든 개성공단 사업은 투자 기업을 평화를 위한 지렛대가 아니라 북한의 인질로 만들었다.

중국도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낭패에 빠진 기업이 즐비하다. 특수 관계인 줄 알고 대북 투자에 나선 중국 기업은 북한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수정하자 투자 자금을 날리면서 철수했다. 중국 기업은 북한을 사기꾼이자 강도라고 비판했고 이러한 악평 때문에 북한과 중국의 거래는 물건이나 사고파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북한 또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외화벌이 정도로 취급했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대북 경제협력에 실패한 원인은 SOC 부족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있다.

경제협력의 핵심 요인인 신뢰가 대북 경제협력에 결여돼 있다. 시장경제에 반하는 노동조건, 계약 불이행, 당과 정부의 횡포, 관료의 부패 등이 그렇다. 남북 경제협력에 진짜 성공할 마음이라면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은 선심성 남북 경제협력 마인드를 버리고 북한은 남북 경제협력을 체제 유지에 이용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남북 모두 참혹한 대북 경제협력의 역사를 직시해야 할 이유다.
북한의 핵 보유로 남북 경협의 균형은 깨졌다. 신뢰를 쌓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한국은 남북 경협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에 경제 체제의 개혁과 대외 개방을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핵 폐기도 거부하고 개혁·개방도 거부하면 남북 경제협력은 없다고 명확히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 경협은 한국에 재앙이 될 것이다.

정부는 남북 경협의 전략과 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시대에 동떨어진 낡은 구상으로 국민에게 남북 경협의 꿈만 팔고 있다.

만일 정부가 남북 경제협력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기업이라도 정신 차려야 한다. 북한 투자를 강요하는 압력을 버텨낼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