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16호 (2019년 03월 20일)

통찰력과 정직, 문익점이 실천한 ‘목화씨의 법칙’

역사 속 인물에게서 배우는 경영 이야기 ⑥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우리나라 열린 지 몇 천 년인가 / 백성이 옷 입는 것 다 이유 있네 / 선생이 가져온 그 물건 / 재화되어 오래도록 영원하다.”

문익점을 기리며 조선 초기 뛰어난 문장가 김종직이 썼던 시의 일부다. 또한 이이·송시열·김굉필·조식 등 당대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그의 공적을 칭송한 것을 여러 문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익점이 살던 시대(고려 말, 조선 초기)의 지식인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정몽주처럼 직접 정치에 참여한 지식인, 이색(李穡)처럼 백성의 삶과 정치를 다 떠나 후학 양성에 매진한 지식인, 정치가 아닌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에 참여한 지식인들이다. 문익점은 셋째에 속한 현실 참여형 지식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문익점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식인의 역할을 고민한 실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원래 조선 후기 등장한 실학은 현실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학문이다.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경세치용·이용후생·실사구시 정신을 토대로 연구하고 적용하고자 했다. 또 조선의 실학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나라가 백성을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문익점은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서민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당대의 주류 학문인 유학 이외에 ‘농상집요’와 같은 실생활에 바탕을 둔 학문과 지식을 탐구했다. ‘농상집요’는 1273년 편찬된 중국 원나라 때 농서다. 이 책은 고려와 조선의 농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농상집요’에 따르면 목화씨를 심는 장소는 모래와 흙이 적당하게 섞인 땅, 습하지 않고 비옥한 땅을 택하라고 권하고 있다. 습기가 많으면 목화가 자라기 어렵다는 등 상세한 재배법을 기술하고 있고 목화 재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설명하고 있다.

◆‘서민들의 삶’에 집중했던 문익점
만약 문익점이 실용 학문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한반도에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실천적인 지식을 추구했고 그런 의미에서 문익점이야말로 진정한 실학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문익점은 어떻게 목화의 가치를 깨달았을까. 수많은 지식인과 관료들이 중국에 오갔음에도 그 누구도 문익점과 같은 혁신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반면 문익점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 서민들의 실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그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찾아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익숙한 경영 시스템과 제도에 적응해 불편함이 없으면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만큼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익점은 달랐다. 그는 실천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나라의 근간인 농업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켜 민초들의 생활 여건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여느 사대부들과 다른 그만의 통찰력을 발휘해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고민했고 끝내 혁신에 성공했다.

이렇듯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통찰력이 문익점 혁신의 본질이다.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서는 경영인들이 더욱 본받아야 할 중요한 가치다. 모든 산업 분야가 위기라고 한다. 하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혁신적 통찰력은 새로운 활로를 열어줄 것이다. 혁신은 곧 살아남는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나기 어렵기 때문에 남달라야 한다. 즉 ‘남다른 것’ 자체가 차별화이고 곧 혁신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 기업들은 단 한 번의 혁신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혁신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목표로 하는 ‘지속 성장’이 관건이다. 문익점은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정직’을 꼽았다.

◆‘정직’, 지속 성장을 위한 조건
문익점은 정직을 기본으로 목화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냈다. 정직하려면 먼저 정보를 공개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봤다. 문익점의 목화씨 보급 과정을 생각해 보자. 그는 5개 유력 가문에 목화 재배 방법과 기술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자신의 모든 열정을 바쳐 얻어낸 모든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은 지금도 발휘하기 쉽지 않은 용기다. 그의 정직한 공개 덕분에 목화 산업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한반도 전역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처럼 정직하게 정보를 공유하면 신뢰가 생긴다. 신뢰가 생겨야 거래가 오래 가고 서로를 믿으니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래서 정직은 신뢰를 낳는다. 반대로 신뢰가 깨지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의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문익점이야말로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면서 신뢰를 쌓은 이였다. 그는 자신이 평생 보여준 신뢰를 목면 산업 확산의 자본금으로 삼았다. 백성들 역시 그가 선보인 목면, 다양한 제품, 기술에 신뢰를 가졌고 그 결과 전국적인 목면 재배와 기술이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겨자씨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겨자씨는 참깨 알보다 더 작은 씨앗이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겨자씨가 싹을 틔우면 키가 4~5m 이상 자란다. 그래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을 ‘겨자씨를 뿌린다’고 비유한다. 작은 시작이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겨자씨의 법칙을 ‘목화씨의 법칙’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약력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한국 화장품과 제약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윤 회장은 농협중앙회를 거쳐 1974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0년 한국콜마를 설립하고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 1조원의 기업으로 키워 냈다. 2017년엔 이순신 리더십을 전파하는 사단법인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6호(2019.03.18 ~ 2019.03.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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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4-0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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