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24호 (2019년 05월 15일)

‘투사’가 된 황교안-‘독사’ 이해찬 대결, 시작일 뿐

[지금 정치판에선]
-전국 순회 투쟁 黃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20년 집권론’ 내세운 李 “역풍 맞을 것”

황교안 대표. 1957년 서울 출생. 경기고,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 합격(23회). 대검찰청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창원 지검장. 부산, 대구고검장.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자유한국당 대표(현).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5월 4일 진행된 자유한국당의 3차 대규모 집회는 황교안 대표의 전국 순회 장외투쟁 출정식이었다. 한국당 당원과 지지자 5만 명(한국당 자체 추산)이 광화문 광장을 꽉 채웠다.
 
황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쉰 목소리로 “성대가 찢어지게 생겼다. 저보고 목소리를 포기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목청이 올라갈 때는 간간이 갈라지기도 했다. 그는 연설에서 ‘죽을 각오로 투쟁’을 10번 넘게 외쳤다. 독재라는 단어를 18번 언급했다. 황 대표는 5월 7일부터 ‘국민 속으로, 민생 대장정’ 이름으로 전국을 돌며 장외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당 내에선 ‘정치 초년병’ 황 대표가 취임 100여 일 만에 ‘투사’와 ‘저격수’로 확실히 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재임 시절 낮은 톤의 목소리와 절제된 언행을 보인 그가 이렇게까지 변신할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한 당직자는 “‘미스터 법질서’와 ‘미스터 공안’이란 별명을 가진 황 대표는 투쟁과는 거리가 있는 ‘대쪽’ 이미지의 이회창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전 총재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는데 적어도 정치적 수사(修辭)와 행동 면에서는 판이하게 달라 의외”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정치권에선 그가 2월 말 대표로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장외투쟁을 예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취임 첫날 “책상 앞 정당이 아니라 현장 정당이 돼야 한다”며 “정권의 폭정에 맞서 나라를 지키는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뒤 그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등을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에 지정하는 안건을 두고 벌인 ‘투쟁’ 과정에서 그의 선명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 등의 발언은 맛보기에 불과했다. ‘독재 타도’는 그의 일상적인 용어가 됐다.

5월 7일부터는 ‘국민 속으로, 민생·투쟁 대장정’에 들어갔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투쟁’이라고 규정했다. 약 3주 일정으로 부산과 서울을 종단한다. 제1야당 대표가 중앙 정치 무대에서 벗어나 장기간 ‘순회 투쟁’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 “전국 순회 투쟁, ‘황교안 대 문재인’ 구도 구축 목적”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패스트 트랙을 철회하지 않으면 장외투쟁을 지속할 계획이다. 황 대표의 측근인 추경호 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은 “여권의 선거법 개정과 공수처법 추진을 좌파 정권의 장기 독재 음모 시도로 보기 때문에 이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도록 국민과 함께 기필코 저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황 대표의 강도 높은 투쟁은 여러 목적을 노린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인 그는 ‘정치 초년병’으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할 필요가 있다. 전국 투어 장외투쟁은 대중과 접촉을 늘리는 기회다. 범보수를 하나로 뭉치고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등으로 나눠진 당을 결속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런 목적들이 제대로 먹혀들어 간다면 ‘황교안 대 문재인’ 대결 구도를 확고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강경 투쟁은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리얼미터가 5월 7~8일 전국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3.1%포인트)한 결과 한국당의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올라 34.8%, 더불어민주당은 36.4%로 집계됐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가 오차 범위 내로 좁혀진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5월 7~8일 실시한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신뢰 수준 95%에 표본 오차 ±3.1%포인트)에서 황 대표는 17.6%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다. 이런 결과는 한국당이 웰빙 이미지에서 벗어나 야당다운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보수를 결집하는데 성공했다는 증표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고민도 있다. 강경 거리 투쟁 지속은 차기 집권을 갈망하는 보수 진영엔 소구력이 높지만 ‘민생 외면’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중도 지지층 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좌파 독재 타도’를 앵무새처럼 외치는 것은 자기만족은 될지언정 국민의 삶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해찬 대표. 1952년 충남 청양 출생. 용산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제13~17, 19~20대 국회의원. 서울시 정무부시장.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국무총리. 문재인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연합뉴스



◆ ‘범보수 통합’ 위한 리더십 발휘 여부가 관건

이 때문에 한국당이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황 대표는 장외투쟁, 나경원 원내대표는 장내에서 역할을 찾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문제는 한국당의 ‘회군’ 명분이다. 선거법과 공수처법의 패스트 트랙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한국당을 장내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적어도 한국당과 합의 없이는 이 법안들을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을 여권이 공식적으로 약속하는 수준은 돼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황 대표의 장외투쟁이 의도한 대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장외투쟁 이후 범보수 진영을 실질적으로 통합해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 승리를 이끌 발판을 마련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최우선 관건이다. 더욱이 황 대표의 여의도 상대는 ‘독사’, ‘면도날’, ‘송곳’ 등 별명이 붙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다. 7선의 이 대표는 정치 9단으로 불릴 만하다. 정치 초년병인 황 대표의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이 대표는 황 대표의 장외투쟁에 대해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기승전 황교안’ 비판이다.

그는 4월 22일 황 대표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한 데 대해 “정치를 처음 시작한 분이 그렇게 입문해 막판에 무엇으로 끝내려고 하는가.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고 정면 반박했다. 마치 정치 선배가 후배에게 한 수 가르치는 투다. 5월 8일엔 “과거에는 장외투쟁이 언로가 막힌 야당의 저항 수단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이번처럼 전 국민이 제1야당이 일으킨 폭력 사태를 지켜본 상황에서는 역풍이 불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의 한 측근은 “황 대표의 장외투쟁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패스트 트랙을 둘러싼 두 사람의 ‘일합’이 ‘간보기’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대표는 20년 집권론을 내세웠다. 황 대표는 정권 탈환을 공언했다. 1차적으로는 내년 총선 승리가 두 사람에겐 양보할 수 없는 지상 과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사사건건 벼랑 끝 대결을 벌일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이 대표와 황 대표는 이력과 생각이 다르고 현안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은 총리 출신이라는 것을 빼고는 공통분모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렇다 할 인연도 없다. 이 대표는 1988년 36세의 나이에 의원 배지를 단 뒤 정치와 행정(총리와 교육부 장관) 경험을 두루 했다. 황 대표는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30년 넘게 검찰 조직에 몸담았다. 두 사람은 2015년 2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신경전을 펼친 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관련해 황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가 “충분히 법리를 검토해 결정한 것”이라고 하자 이 대표는 “교언으로 답변할 뿐 진심으로 하지 않는다. 진정성 없는 답변은 들을 가치가 없다. 들어가라”고 쏘아붙였다.

장외로 나간 황 대표에 맞서 이 대표는 벌써부터 총선 체제에 들어갔다. 그는 내년 총선 목표를 지역구 240석, 비례대표를 포함해 260석 확보를 제시했다. “총선에서 승리하면 충분히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한국당의 장외투쟁 일변도는 여당으로서도 큰 부담이다. 여권이 국회 통과를 추진하는 추가경정예산안과 법안 등이 발목이 잡힌다면 국정 운영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며 거리의 투사로 나선 ‘정치 초년병’ 황 대표와 진보 진영 연대를 구축해 재집권을 노리는 이 대표의 대결 결과가 궁금하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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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5-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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