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권한 막강하지만 동지에게서도 총 맞는 자리…축배·독배 동시에 들어야
원내대표가 뭐길래…“적·아군·여론 사이에서 고독한 외줄 타기”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원내총무(지금의 원내대표)는 적뿐만 아니라 아군과도 싸워야 하고 여론의 눈치도 봐야 한다. 협상은 주고받기여서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아군부터 등 뒤에서 총을 쏜다. 적과 아군, 여론 사이에서 고독한 외줄 타기를 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협상의 명수로 꼽는 김윤환 전 민정·민자당 원내총무가 생전 기자에게 한 말이다. 정치권에서 또 다른 명(名) 협상가로 꼽는 고(故) 박상천 전 국민회의 원내총무는 “한손엔 축배 한손엔 독배를 들고 있는 게 원내총무의 숙명”이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이래도 저래도 욕먹는 원내대표를 왜 하려고 할까. 정치인들 사이에선 “국회의원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의원이 얼마나 좋은 줄 모르고 원내대표를 해 보지 않으면 원내대표가 얼마나 좋은 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겐 꿈의 자리다.

그래서 재수·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 3수 도전에 나선 이종걸 의원은 후보자 토론회 때 “이번에 떨어지면 자살할지 모른다”고 ‘협박성’ 발언을 한 것은 유명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세 번 도전 끝에 성공했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재수해 원내대표가 된 뒤 올해 5월 임기를 마쳤다.

◆ 성공리에 임무 마치면 대표·대선 도전에 나서

원내대표가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권의 실세 중의 실세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원내대표는 과거 원내총무로 불렸다. 원내총무 시절엔 독립적인 역할보다 당 총재의 의중을 반영해 여야 협상에 임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다가 2003년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처음으로 원내대표라는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다른 당에서도 이런 명칭을 사용하면서 현재와 가까운 역할과 위상을 갖게 됐다. 대표와 거의 맞먹는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서 ‘빅2’로 불린다.

국회법상 원내대표의 권한은 △소속 정당 의원들의 상임위원회 배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및 간사 임명 △교섭단체 대표 연설 등이다. 이보다 더 주목받는 역할은 예산안과 주요 법안 처리 문제,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진행 등 여야 협의가 필요한 모든 사안에 대한 협상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 수많은 현안에 대한 사령탑 역할을 하다 보니 임기 내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다.

각 당 원내대표는 1주일에 두 번 원내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국회 업무에 관한 한 대표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자유한국당은 원내대표 후보가 정책위원회 의장을 러닝메이트로 지명해 함께 경선을 치른다. 원내대표가 정책위 의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는 것이다.

원내대표를 성공리에 마치면 당 대표나 광역단체장, 대선 도전에 나서는 게 일종의 정해진 수순처럼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통합민주당·민주당 등 시절 포함)은 박상천·정세균·원혜영·박지원(현 민주평화당 의원)·김한길·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대표 또는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다.
자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 등 포함)은 박희태·서청원·홍준표·안상수·김무성·황우여 전 원내대표가 원내대표를 마치고 당 대표에 선출됐다.

화려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충도 만만치 않다. 여야의 대결이 격해지면 협상가라기보다 전투 지휘관으로 변신해 최일선에서 싸워야 한다. 당내에서도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위험한 자리이기도 하다.

박상천 전 국민회의 원내총무가 ‘한손엔 축배 한손엔 독배’를 거론한 이유다. 권한이 큰 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엄청난 스트레스가 뒤따른다. 홍영표 전 원내대표는 임기 말 “이 힘든 걸 왜 하려고 했느냐”고 푸념했을 정도다. 그는 원형탈모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협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도에 물러난 사례도 많다. 대부분 당내 우군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맡아 세월호특별법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당내 거센 비판을 받고 취임 5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강재섭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005년 사학법 협상 결과에 대한 당내 거센 반발로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새정치민주연합과 협상을 벌여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타협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국회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한 국회법 개정안을 함께 국회에서 처리한 것이 발목이 돼 5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애초부터 강하게 반대했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데 이어 유 전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인’으로 낙인찍었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서로 격한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지만 한편으론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의 자리를 갖기도 한다. 여론의 질타뿐만 아니라 당내에서도 비판에 시달리며 일종의 동병상련의 아픔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 국회 정상화 불구 ‘지뢰밭’…“13대 국회 타협 정신 배워야”

5월 8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선출됐을 때 정치권에서는 나경원 원내대표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1980년대 학생 운동권의 대표 주자였던 이 원내대표와 판사 출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나 원내대표의 판이한 이력 때문이었다. 이 원내대표가 취임한 직후엔 ‘밥 잘 사주는 누나’라는 말이 나오고 맥주 회동까지 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패스트 트랙(신속 처리 안건) 지정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충돌한 끝에 국회 정상화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자유한국당이 뒤집으면서 나 원내대표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끝없는 공방에 여론이 악화하자 결국 여야는 6월 2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사법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한 연장에 합의했다. 자유한국당이 상임위원회 활동에 복귀하면서 국회 정상화 수순에 들어갔다.

하지만 여야의 격한 대립으로 세 달 가까이 국회가 공전한 것은 타협과 협상의 부재라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이 장외에서 장내로 장소만 옮겼을 뿐 진짜 진검승부는 이제부터다. 특히 여야가 첨예하하게 대립하는 추가경정예산안·선거법·공수처법 등은 국회 파행을 부를 ‘휴화산’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 전문가들은 13대 국회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988년 13대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된 상황에서 여당인 민정당의 김윤환 원내총무와 김원기 평민당 원내총무는 숱한 막전막후의 밤샘 협상 끝에 5공 청산이라는 난제에 대한 타협을 이끌어 내는 데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 협상에 나섰던 김원기 전 국회의장의 회고다. “민주화 이후여서 처리해야 할 과제가 많았다. 대통령은 전혀 개입하지 않고 5공 비리와 지방자치제 시행 등 난제를 밤 새워 토론해 가면서 하나하나 해결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정신에 입각해 여소야대라고 해서 야당이 과도한 힘을 앞세워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여당의 역할을 존중했다.”

김윤환 전 원내총무도 “상대의 살을 베어내길 원한다면 내 살도 베어낼 각오를 해야 한다. 여당도 야당의 ‘투쟁 본능’ 생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약력 : 1964년 충북 충주 출생. 충주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의장.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 제17대, 19~20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제18대 대통령선거 민주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약력 : 1963년 서울 출생. 서울여고, 서울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 합격(34회). 부산, 인천지법 판사. 17~20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세계대회 조직위원장.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1호(2019.07.01 ~ 2019.07.0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