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40여 명 출마 예상

…“정권 후반기 국정 동력 될 것”이라지만 “靑 근무가 금배지 디딤돌인가” 비판도

‘순장조’ 사라진 靑…대규모 ‘총선 하방’ 뭘 노리나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다른 당에 앞서 총선 룰을 확정한데 이어 이해찬 대표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이 ‘20년 집권론’의 전초전이라고 보고 일찌감치 총력 체제 구축에 나선 것이다. 이미 지난 1월부터 문재인 정부 전반기 청와대와 내각을 떠받쳤던 참모들과 장관들을 출마시키기 위한 ‘총선용 하방(下放)’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1차 청와대 참모 인사, 4월 개각, 7월 2차 청와대 참모 교체에 이어 8월 중으로 예상되는 추가 개각으로 주요 인사들이 잇따라 정치권으로 돌아가고 있다.

물론 이들의 청와대 경력이 ‘당선 보증수표’는 아니다. 같은 당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는 곳이 많아 당내 경선 고비부터 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진문(眞文·진짜 친문재인)’, ‘범문(凡文)’, ‘비문(非文)’ 간 공천 혈투가 불가피해졌다.

총선에 나갈 것으로 예상되는 청와대 참모들은 40여 명에 달한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 한병도 전 정무수석, 권혁기 전 춘추관장,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은 지난 1월 1차 참모진 개편 때 청와대를 나와 선거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서울 종로 출마가 유력시된다. 이곳 민주당 현역 의원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곳 출마 가능성이 있어 당내 교통정리가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윤영찬 전 수석은 성남 중원 출마를 선언했고, 한병도 전 수석은 최근 민주당 전북 익산을 지역위원장에 임명돼 지역을 누비고 있다.
‘순장조’ 사라진 靑…대규모 ‘총선 하방’ 뭘 노리나
◆ “신인 가산점…靑 참모들에게 총선 길 열어주려는 것”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은 자신이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울 관악을에서 뛰고 있다. 그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패한 바 있다.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은 서울 양천을, 김봉준 전 인사비서관은 경기 남양주을,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은 서울 강북갑, 나소열 전 자치발전비서관은 충남 보령·서천, 김금옥 전 시민사회비서관은 전북 전주갑에서 금배지를 노리고 있다.

복기왕 정무비서관은 충남 아산갑,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했던 박수현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자신이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충남 공주·부여·청양,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은 서울 강서을,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경기 시흥갑,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은 경남 양산갑, 권혁기 전 춘추관장은 서울 용산, 조한기 제1부속비서관은 충남 서산·태안에서 각각 출마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행정관급 인사들도 대거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 기용이 유력한 조국 전 민정수석을 부산에 출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권 내에서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부산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부산 민심이 여당에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며 “조 전 수석을 이곳에 출마시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입각했던 장관들도 줄줄이 여의도로 향하고 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대구 수성갑)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부산 진갑),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충북 청주 흥덕)은 지난 4월 친정에 복귀해 지역구 활동에 여념이 없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경기 고양병),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경기 고양정),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서울 강동갑) 등 현역 의원 출신 장관들도 정치권 복귀 채비를 하고 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홍종학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도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순장조’ 사라진 靑…대규모 ‘총선 하방’ 뭘 노리나


◆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정권 심판론’ 역풍 불 수도

역대 정부 청와대에서도 참모들이 총선에 나서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과 같이 이렇게 대규모로 출사표를 던지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 정치권의 반응이다.

여권 관계자는 “역대 정부에서는 자신의 정치를 포기하고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하며 끝까지 보좌해 이른바 ‘순장조’라는 소리를 들었던 참모들이 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이런 현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른바 ‘진문’ 소리를 듣는 참모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집권 후반기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집권 4년 차를 앞두고 실시되는 내년 총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평가는 물론 2022년 대선 전초전의 성격도 지닌다. 총선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정권 후반기 국정 운영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역대 정부 대부분 집권 3년 차를 넘어서면 각종 게이트들이 터지고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레임덕에 빠졌다. 여당에서부터 청와대에 등을 돌리고 대통령이 임기 막판 소속 정당을 탈당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했던 것이 우리 정치의 비극적인 역사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의회 권력을 공고히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친문 인사들의 주장이다.

한 친문계 중진 의원은 “대통령의 국정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측근들이 의회에 진출한다면 국정 운영에 큰 동력을 얻을 수 있다”며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진문들이 당에 돌아와 총선을 주도하고 문재인 정권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진박(眞朴·진짜박근혜)’계 인사들을 대거 공천하려다가 이른바 ‘옥쇄 파동’ 등 극심한 계파 갈등을 불렀다.

이는 정권 말 비박계 세력이 커지면 여당 내에서부터 청와대에 등을 돌릴 것을 우려한 친박계의 선거 전략에 따른 것이었지만 국민의 호응을 얻기는커녕 선거 참패를 부른 요인이 됐다.

민주당에서 총선 룰을 고쳐 신인들에게 많은 가산점을 주는 것도 정치 신인이 많은 청와대 참모들의 여의도 입성 문을 넓혀 주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친문 진영이 친문 참모들을 조직적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때문에 당내 비문(非文·비문재인) 의원들은 세력화하기 시작한 청와대 참모 출신들을 심상치 않게 보고 있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비문 중진 의원은 “당 내에서 진문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조직화된 다른 세력이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진문 중 진문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 총선 전략을 짜는 민주연구원장에 임명된 것과 함께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몰려오는 것에 대해 잔뜩 긴장하고 있다”며 “공천을 앞두고 계파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친문 참모들의 대규모 출마에 대해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다. 청와대 근무를 금배지를 달기 위한 디딤돌, 경력 관리용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해야 할 참모들이 불과 4~5개월 근무하고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복은 있지만 참모 복은 없다. 청와대부터 보신처를 찾아 총선에만 나가려고 한다”며 “김 전 대통령이었다면 이런 참모들에게 날벼락을 쳤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 측근 참모들의 대거 출마는 자칫 여당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가 ‘문재인 대 반문재인’ 구도를 만들어 내면서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당은 벌써부터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고 있다. 역대 선거에서 집권 중반기를 넘어 치러진 총선은 대부분 집권 세력에 불리했다. 정권 심판론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6호(2019.08.05 ~ 2019.08.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