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비스포크’ 기획한 양혜순 삼성전자 상무…“생산 라인, 배송도 맞춤형으로 탈바꿈”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삼성전자가 맞춤형 가전 시대를 선언했다. 생활 가전의 철학이자 비전인 ‘프로젝트 프리즘(Project PRISM)’을 통해서다. 그 첫째 신제품인 ‘비스포크(BESPOKE)’ 냉장고는 지난 6월 초 출시 이후 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두 달간 판매된 삼성전자 냉장고 두 대 중 한 대가 비스포크로 나타났다.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비스포크는 삼성전자 가전의 혁신을 주도한다. 삼성전자는 비스포크 냉장고를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맞춤형 가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서울 강남구 삼성디지털프라자 강남본점에서 8월 14일 비스포크 개발 주역으로 상품 기획을 담당한 양혜순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를 만나 프로젝트 프리즘과 비스포크 탄생 스토리를 들어봤다.
“2만 개 조합 가능…‘나만의 냉장고’로 밀레니얼 취향 겨냥했죠”



‘가구 같은 가전’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기존의 삼성전자 냉장고와는 외관부터 큰 차이가 있다.
“가전은 오랜 기간 ‘백색 가전’이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기술 지향적이고 무거운 가전의 이미지가 최근의 달라진 주거 환경과 인테리어와 딱 들어맞지 않는 측면이 있었다. 가전제품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내부적으로 스터디를 하기 시작했다. 과거엔 공급자가 획일화된 제품을 기획해 소비자에게 대량으로 판다는 관점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이 직접 원하는 방향으로 맞춤형 가전을 만든다는 취지에서 ‘프로젝트 프리즘’이 탄생했다. 프로젝트 프리즘은 어찌 보면 생활 가전의 철학이다. 단조로운 백색 광선을 갖가지 색상으로 투영해 내는 프리즘처럼 다양한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반영된 가전제품을 기획하고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기존 부서가 아닌 일종의 태스크포스(TF)를 통해 프로젝트 프리즘을 기획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최근 소비 트렌드 변화의 중심에는 세대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기존 X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보다 더 중요한 세대가 되고 있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개발할 때 밀레니얼 세대에게 필요한 냉장고는 무엇일지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는 디자인팀과 개발팀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기존의 대량생산 방식으로는 개성과 취향이 뚜렷한 밀레니얼 층을 설득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게 비스포크라는 제품 콘셉트가 도출됐다. 맞춤형 양복과 같이 주문 제작한다는 의미다. 다음 나온 핵심 단어는 ‘개인화(customization)’였다. 맞춤 제작을 위해서는 기획뿐만 아니라 생산방식과 판매 방식이 다 달라져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획·개발·구매·제조·판매·물류·서비스 등 관련 부서에서 30여 명이 모여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됐다. 지난해 12월 본격적으로 기획을 시작해 올해 초부터 6개월 가까이 TF를 운영했다.”

밀레니얼 세대를 전담하는 조직이 있을 만큼 생활 가전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를 주력 소비 계층으로 보는 것인가.
“가전제품은 20대 후반에서 60대 이상까지 전 연령층이 구매한다. 삼성전자의 주력 고객층은 40~50대에 해당한다. 밀레니얼 세대가 속한 30대는 결혼할 때 새 가전을 산다.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고 자기 생활을 공유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이를 통해 자기 영향력을 키운다. 보이스가 큰 세대다. 그래서 부모 세대의 소비도 역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리드한다. SNS와 디지털에 강한 밀레니얼 세대를 잡지 않고서는 가전제품이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봤다. 프로젝트 프리즘이 철학이자 비전이라면 비스포크는 일종의 필명(pen name)같은 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원하는 조합의 냉장고를 선택할 수 있도록 선보인 제품이다.”

비스포크는 냉장고다. 다양한 백색 가전 중에서도 왜 냉장고부터 공략했나.
“주거 환경의 새로운 흐름을 보게 됐다. 신도시 등에서 새롭게 분양되는 아파트는 거실과 주방이 일자형으로 오픈된 구조로 돼 있다는 것이다. 지금 막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들은 대부분 다이닝 룸을 갖는다. 지금까지 냉장고는 주방 한쪽에 툭 튀어나와 있어 어색해 보였다. 달라진 주거 환경에서는 전체 공간에서 냉장고의 위치 그리고 핏(fit)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 빌트인 가전을 찾는 소비자들도 있다. 이제는 가전과 가구와의 조화가 필요한 시대다. 다이닝 룸의 가장 중심이 되는 냉장고부터 시작하게 됐고 앞으로 비스포크 개념은 계속 확대될 예정이다.”
“2만 개 조합 가능…‘나만의 냉장고’로 밀레니얼 취향 겨냥했죠”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소비 상품이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가전은 조금 뒤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고민은 없었나.
“가전은 개인화하기에 어려운 제품이다. 냉장고만 해도 1만 개 이상의 부품들이 조합돼 만들어진다. 주안점을 둔 부분은 핵심 가치를 찾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커스터마이징할 수는 없다. 가장 효과적인 가치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냉장고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사이즈나 필요한 조합이 모두 다른데 실제 사용하는 방법에는 큰 차이가 없다. 얼리기 위해서는 냉동실, 차갑게는 냉장실, 살짝 얼리려면 살얼음칸, 김치는 김치냉장고에 보관한다. 그것을 어떻게 조합할지는 다 다르다. 가령 김치냉장고를 어떤 때는 김치 저장고로, 어떤 때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 지금은 작은 냉장고를 갖고 있지만 아이를 낳으면 큰 냉장고를 갖고 싶어 한다. 그렇다고 기존 냉장고를 버리고 싶지 않고 새로 산 냉장고는 기존의 것과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자기만의 조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상식적인 선에서 시작한 것이다. 커스터마이징의 핵심 단어로 각자의 다른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모듈형’ 그리고 인테리어와의 ‘조화(키친 핏)’를 찾았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대량생산을 맞춤 제작으로 풀어내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공장의 라인도 완전히 달라야 할 텐데.
“커스터마이징을 위해 기존의 라인 하나를 완전히 비워 새롭게 바꿨다. 비스포크 맞춤 제작을 위한 공급망 관리(SCM)가 적용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탄탄한 시스템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례로 소비자가 매장에서 ‘나만의 냉장고’로 구성하면 각 색상과 재질 등이 시스템에서 주문되고 이후 제조가 시작된다. 생산 현장에서는 다양한 주문에 맞춰 자동 소팅을 통해 조립되고 물류에서도 주문별 배송 처리가 돼야 한다. 각 단계마다 이미지를 통해 주문대로 생산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출시 후 3개월 동안은 테스트 단계다. 소비자들이 어떤 색상, 어떤 조합을 좋아할지 지켜보면서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비스포크의 눈에 띄는 특징은 색상·재질·구성을 선택해 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나.
“모듈화라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디자인팀과 함께 선행 연구를 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냉장고 안에서만 모듈화를 시도했는데 여러 개의 냉장고를 붙여 하나처럼 보이면 그것도 모듈화가 될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조합해 놓고 보니 조금 심심해 보였다. 그렇다면 색상이나 소재를 다양화하면 어떨까 연구하다가 조금씩 발전한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추구하는 색상과 소재를 찾는 것도 과제였다. 처음에는 여러 색상과 소재를 펼쳐놓고 그중 선택하려고 했는데, 아예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국내외 디자인 박람회, 가구 박람회, 건축 박람회, 라이프스타일 박람회를 찾아다니면서 페인트·가구·조명·패션 등에서 영감을 받아 가장 트렌디한 색상과 소재를 정했다. 그렇게 3개의 패널 소재, 9개 컬러가 나오게 됐다(박스 참고). 가전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았던 새로운 색상과 소재들이다. 글램 화이트나 글램 핑크 등은 같은 화이트와 핑크보다 톤 다운된 게 특징이다. 패널 소재는 새틴 글라스라는 새로운 유리 공법으로 만들었다. 최근 매트한(광택이 없는) 컬러가 트렌드이기 때문에 이를 구현하려고 했다.”
“2만 개 조합 가능…‘나만의 냉장고’로 밀레니얼 취향 겨냥했죠”



해외 브랜드 중에는 컬러감이 돋보이는 가전이 있다. 백색 가전을 넘어 프리즘 가전으로 새 영역을 열었다면 타사와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소비자 중심 철학이다. 한 해외 브랜드는 색깔이 컬러풀하지만 한정돼 있다. 커스터마이징이라기보다 셀렉션, 선택 가능한 다양한 색상이 있는 것이다. 비스포크는 총 8개 타입에 적용할 수 있는 최대 조합의 수가 2만여 개에 달한다. 기존 빌트인 가전은 가구장과 붙어 있어 이사할 때 따로 떼어가기가 어려운 데 비해 비스포크는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다. ‘움직이는 빌트인’인 셈이다. 키친 핏(2012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의 일반적인 냉장고장 너비인 1070mm에 맞춰 좌우 여백을 최소화해 빌트인 가전의 효과를 낸 타입)으로 높이나 폭을 한국 주방에 맞췄다. 키친 핏을 통해 가구처럼 보이는 가전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

맞춤형 냉장고를 선보이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
“초창기에는 특정 소비자의 것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과제였다. 주문 시스템과 제조 시스템이 연결되는 프로세스를 새롭게 만들면서 해결해 나갔다. 수요를 예측하는 것도 큰 애로 사항이다. 지금은 화이트·핑크와 같은 무난하고 또 밝은 색상들이 인기가 많다. 점차 더 과감한 컬러들이 늘어날 수도 있다. 소비자의 반응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유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문과 동시에 생산에 들어가는 주문 제작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각 사이즈별로 일부 패널은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특히 요즘은 빠른 배송이 중요하다. 전날 주문이 들어오면 다음 날 아침 생산을 시작해 생산은 당일 생산, 배송은 3~5일 사이에 완료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해 선보였다. 실제 반응은 어떤가.
“지금 판매되는 냉장고 두 대 중 한 대가 비스포크다. 연령대는 골고루 분포돼 있다. 40대 이상에서도 교체 수요가 많다. 500M급의 대용량 김치냉장고가 막 출시돼 겨울까지 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슈퍼픽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스페셜 에디션도 반응이 뜨겁다. 냉장고에 전에 없던 디자인이 가미돼 처음엔 내부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런데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해보자고 했다. 실제로 밀레니얼 세대뿐만 아니라 40대 주부들이 핑크색이나 스페셜 에디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밀레니얼 감성, 밀레니얼 취향을 가진 40~50대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조용했던 세대가 소비를 통해 자기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4050세대는 무겁고 진중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것이다. 요즘 취향족이라는 표현을 쓰듯이 사람들은 나이가 아닌 취향에 따라 그루핑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파급력이 60대 70대까지 확대되고 있다.”
“2만 개 조합 가능…‘나만의 냉장고’로 밀레니얼 취향 겨냥했죠”



현재 단계에서의 고민은 무엇인가.
“프로젝트 프리즘은 삼성전자 가전의 철학이다. 비스포크와 같이 구체적인 제품으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세탁기나 조리기 등 다양한 생활 가전은 맞춤형 제품으로 진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단계에서의 고민은 첫 커스터마이징인 모듈화에 대해 실제 소비자들이 만족해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또 한 장소에서 모듈화가 완성될 것인지, 다양한 소비자의 니즈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다른 영역으로 더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커버하는 데 현재 있는 가전으로 충분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있다.”



비스포크는 기술혁신에 대해서는 크게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냉장고의 기술은 사실상 완성형에 가깝다. 냉각·냉장 성능, 탈취 기능 등이 거의 다 완성됐다고 보면 된다. 키친 핏으로 선보이면서 추가된 기술들이 있다. 빌트인처럼 되면서 안쪽 기계실 열기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열기 배출 구조를 넣었다. 키친 핏을 구현하면서 도어가 얇기 때문에 에너지를 보존하는 기술들도 추가됐다. 소비자들이 가구 같은 가전이라고 느끼게 하는 숨어 있는 기술들이 있다. 다양한 선택권을 주려다 보니 가전업계 최초로 한 번에 전체 라인업을 다 선보이는 시도도 했다. 온도를 조절해 냉장·냉동·김치냉장고로 활용할 수 있는 변온냉장고도 처음으로 선보였다.”

삼성이라는 이름이 곧 브랜드다. 삼성을 떼고 비스포크를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비스포크의 가장 큰 장점은 ‘확장성’에 있다. 확장 가능하다는 점에서 먼저는 1도어 냉장고를 구입하고 이후에 4도어 타입을 추가로 구매하겠다고 하는 소비자도 있다. 고객이 추가하는 냉장고가 한 개일지, 두 개일지, 세 개일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로고가 앞에 보이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소비자를 위한 배려 차원에서 냉장고 안쪽 온도조절기 위쪽에 삼성 로고를 옮겨 달았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는 주거 형태가 자주 변한다. 이사도 잦고 인테리어도 바꾼다. 그때마다 패널만 교체해 냉장고 디자인을 달리할 수 있다. 삶의 변화에 따라 변주 가능하다는 점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큰 장점이다. 프로젝트 프리즘의 첫째 결과물이 비스포크 냉장고다. 앞으로도 새로운 제품들이 나올 것이다. 획일적이고 무거운 이미지의 가전이 아니라 고객 라이프스타일에 발맞추는 맞춤형 가전을 선보일 것이라는 점을 기대해 주면 좋겠다.”
“2만 개 조합 가능…‘나만의 냉장고’로 밀레니얼 취향 겨냥했죠”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8호(2019.08.19 ~ 2019.08.2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