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훈 왓챠 대표…“5억 건의 ‘별점 데이터’가 가장 큰 무기”
“미디어 시장은 승자 독식 불가능…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걱정 없죠”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박태훈 왓챠 대표와 인터뷰한 9월 18일은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합작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가 공식 출범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에 앞서 CJ ENM과 JTBC도 신규 OTT를 내놓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사부터 대기업까지 토종 플랫폼들은 너도나도 ‘타도 넷플릭스’를 외치며 나서는 상황이다.

OTT 시장의 경쟁이 달아오르곤 있지만 스타트업 ‘왓챠’는 이럴 때일수록 ‘본분’에 충실할 계획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본분은 ‘유저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공급에 집중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 왓챠 본사에서 만난 박 대표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등장을 환영한다며 “미디어는 승자 독식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 시장으로, 좋은 콘텐츠만 있으면 시청자들은 기꺼이 여러 미디어를 동시에 시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플랫폼이 유저를 독식하기보다 왓챠와 넷플릭스·웨이브를 번갈아 사용하는 소비자 층이 더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왓챠플레이라는 플랫폼을 만든 계기는 무엇입니까.

“공대 출신으로 과거엔 게임 개발자로 일하면서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그 당시 관심 있었던 아이템은 ‘개인의 취향 찾기’였죠. 마침 창업을 함께하던 멤버들이 모두 영화를 좋아했어요. 동시에 영화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2012년 사람들이 재미있게 본 영화를 서로 추천하고 영화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칠 수 있는 ‘왓챠’를 론칭했어요. 특히 유저들이 본 영화에 대해 스스로 별점을 매기고 축적된 데이터를 토대로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집중했죠.


하지만 왓챠는 영화를 자주 보는 ‘헤비 컨슈머’에게 적합한 서비스예요. 대중적인 서비스를 출시해야겠다는 생각에 2016년 OTT 플랫폼 ‘왓챠플레이’를 론칭했어요. 지금 왓챠플레이를 통해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 등 총 6만 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어요.”

▶왓챠플레이는 어떤 기준으로 콘텐츠를 유통하나요.

“왓챠플레이의 강점은 왓챠를 통해 수집한 유저들의 ‘별점’이에요. 지금까지 누적된 별점의 수만 5억 개예요. 콘텐츠에 별점을 열심히 매길수록 유저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정확한 추천이 이뤄져요. 왓챠의 유저들은 이미 추천제에 익숙해져 있어요.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가 곧 콘텐츠 선정 기준이 돼요. 유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들여와야 하니까요.”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걸’에서부터 미국 드라마 ‘킬링이브’와 ‘체르노빌’ 등 독점 콘텐츠들은 어떻게 왓챠플레이에 입성하게 됐나요.

“왓챠 내부에는 콘텐츠에 관심 있는 직원들이 많아요. 박찬욱 감독이 영국에서 드라마를 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콘텐츠를 왓챠플레이에 입점시키자는 내부 의견이 나왔어요. 마침 ‘리틀 드러머걸’을 국내에 방영할 방법을 검토하던 박 감독님도 방송사보다 심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OTT 플랫폼에 관심을 보였어요.

여러 조건을 조합한 후 국내 유저들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됐죠. ‘리틀 드러머걸’에 대한 반응이 좋아 독점 콘텐츠를 연이어 확보하게 됐죠. 왓챠플레이가 콘텐츠 공급자들과 맺는 계약 방식은 건마다 다르긴 하지만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수익 배분’이에요. 유저들이 더 많이 콘텐츠를 보면 볼수록 더 많은 정산이 이뤄지는 방식이죠. 이는 대부분의 콘텐츠 공급자들이 선호하는 방법이기도 해요.”

▶특히 왓챠플레이는 다량의 영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왓챠플레이는 외국 영화 중에서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운 작품’에 주목하고 있어요. 지금의 국내 영화 시장은 작은 영화들이 성적을 내기 어려워지고 있죠.

대규모 블록버스터처럼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영화가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작은 영화들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처럼 작은 영화들엔 왓챠플레이와 같은 OTT 플랫폼이 ‘온라인 영화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추석 연휴 전에도 토론토 영화제에 참석했어요. 세계 각국의 영화제를 누비며 왓챠플레이에 입점시킬 만한 영화들을 찾고 있죠. 영화제 마켓에서 만난 배급사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영화는 좋기는 한데’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분들이 많아요. 배급에 따른 수익을 걱정하는 거죠.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왓챠플레이가 할 수 있을 거예요.”

▶화질이나 자막에 대해 아쉽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초창기 공개한 작품들은 수입사나 배급사에서 받은 영상의 화질 자체가 좋지 않은 것이 많았어요. 하지만 화질에 대해선 차차 좋아지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특히 HBO의 드라마 ‘체르노빌’을 독점 공개한 후 화질에 대한 호평이 늘었습니다.

앞으로 화질과 음향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자막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논의도 꾸준히 시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과거에 방영됐던 작품들의 자막은 지금의 젠더 감수성과 맞지 않는 것이 있어요.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는 형식이죠.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선 자막 전수 검사를 통해 직접 검수하고 수정할 계획입니다.”

▶넷플릭스처럼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은 있나요.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지 확정짓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특히 우리는 국내 유저들의 취향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어 시장에 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죠.

이를 위해선 투자 유치가 필요하겠죠. 약 200억~300억원의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어요. 또 지난 7월 중소벤처기업부와 기술보증기금이 선정한 ‘예비 유니콘 특별 보증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왓챠플레이의 해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첫 해외 진출 국가는 어디인가요.

“영화에 별점을 매기고 추천받는 ‘왓챠’는 이미 일본어와 영어 버전으로 출시됐어요. 다만 OTT 왓챠플레이는 한국에서만 론칭했는데 내년 초 일본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에요. 2015년부터 왓챠를 통해 모아둔 일본 유저들의 콘텐츠 취향 데이터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봐요.

자국 콘텐츠 소비 비율이 절반이 넘는 나라는 미국·인도·중국·일본 그리고 한국이에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왓챠를 통해 유저들의 취향을 알아봤죠. ‘발리우드’ 영화 위주의 인도나 해외 기업들의 진출이 어려운 중국을 제외하고 일본이 가장 진출하기 적합한 나라였어요. 동남아시아 등도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롱텀에볼루션(LTE) 요금제가 대중적이지 않아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 같아요.”

mjlee@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