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 건축·호텔·유통 등 다양한 사업과 시너지 기대
- 재계 순위 50위권에서 33위로 키워내
면세점에 이어 항공까지?…거침없는 정몽규의 리더십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종횡무진하고 있다.

1999년 현대산업개발 회장에 취임한 그는 주택 건설을 중심에 둔 건설업을 발판으로 유통업(면세점)과 호텔·리조트업에까지 영역을 확장한데 이어 이제는 2조원대의 매물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까지 뛰어들며 항공업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지금의 HDC그룹을 일궈낸 정 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아는 이들은 역시 ‘승부사’라는 평가를 내린다.

◆ 정 회장이 직접 나선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 9월 3일 아시아나항공 매각 예비 입찰에 미래에셋대우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전략적 투자자(SI), 미래에셋대우가 재무적 투자자(FI)를 맡았다.

그동안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군에 HDC현대산업개발은 언급되지 않아 관련 업계는 놀란 분위기다.

더욱이 미래에셋대우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금산분리) 규정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지배 주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인수가 성사되면 실질적인 경영 주체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움켜쥐게 된다는 점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의 참여에 더 큰 관심이 쏠린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참여는 정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온 시점부터 인수전 참여를 위해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로 친분이 두터운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과 여러 차례 직접 만나 물밑 논의를 진행해 왔다.

이 둘 사이의 관계는 개인 친분을 넘어 사업적으로도 막역한 사이다. 2017년 HDC현대산업개발이 미래에셋대우에서 ‘부동산114’를 인수하는 등 신뢰 관계가 두텁다.

인수전 참여를 위한 일련의 작업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그룹 내 고위 관계자들은 물론 인수 참여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임직원들도 입찰 당일 발표 직후에야 알았을 정도다. 이 때문에 대외 업무를 보는 홍보·마케팅팀 직원들이 진위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에 눈독을 들인 것은 HDC그룹의 사업 다각화를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정 회장은 HDC그룹의 주력인 건설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면세·레저·액화천연가스(LNG)·부동산 개발 사업 등에 진출하며 꾸준히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2018년 기준 전체 매출의 51%, 영업이익의 61%를 HDC현대산업개발에서 올릴 정도로 그룹 전체 실적이 건설 사업에 크게 편중돼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건설 사업 가운데서도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를 앞세운 주택 사업에 강점을 지닌 건설 업체로 평가되는데 국내 주택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민간 택지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장기적으로는 주택 공급 감소 등으로 시장 둔화가 예상된다.

정 회장이 건설 사업의 실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항공업에서 그룹 외연 확장의 돌파구를 찾는 이유다.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성공하면 신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면세점과 레저 사업에서도 항공 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품에 안는다면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으로 쌓아 온 해외 인프라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HDC그룹은 그동안 국내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정 회장의 해외 인프라를 활용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HDC그룹의 위상 확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사업 다각화와 신사업에 도전한 경영인
면세점에 이어 항공까지?…거침없는 정몽규의 리더십
아시아나항공 적격 인수 후보는 애경그룹과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 또 다른 사모펀드 스톤브릿지캐피탈 등 4곳이다. 이 중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투자업계와 산업계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애경그룹이 유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은 ‘머니 파워’에서, 애경그룹의 ‘항공업 운영 노하우’에서 강점이 있다는 평가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금액은 2조원대 안팎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때문에 투자업계에서는 애경그룹보다 자금력이 앞서는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의 자금력은 상상 이상이다. 미래에셋대우의 순자본비율(NCR)은 2046%(상반기 말 기준)로 업계 최고 수준이고 HDC현대산업개발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 규모도 1조1773억원으로 넉넉한 편이다.

더욱이 HDC현대산업개발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HDC그룹은 최근 몇 년 사이 정 회장의 과감한 투자와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급성장해 왔다. 2014년까지만 해도 HDC그룹은 15개 계열사에 자산 7조2000억원 규모로 재계 순위 50위권에 머물렀지만 2019년 현재 자산 규모 10조원대, 재계 순위 3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2017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직접 택지를 사들여 주택을 공급하는 HDC그룹에는 최상의 사업 환경이 조성됐고 회사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2017년 자산 규모를 6조9000억원으로 불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이보다 1조원 이상 늘어난 7조981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자산 규모는 10조5970억원으로 전년 대비 2조6000억원 이상 늘어났다. 회사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니다. 수익성도 알짜다. HDC그룹의 당기순이익은 1조1920억원으로 자산 5조원 이상 59개 기업집단 중 11위다.

HDC그룹보다 당기순이익 규모가 큰 기업집단은 삼성(40조6330억원)·SK(22조6680억원)·현대차(4조770억원) 등 10대 기업집단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10대 기업집단 중 롯데그룹(5520억원)과 현대중공업그룹(3020억원)의 당기순이익 규모가 HDC그룹보다 적다.

이들 기업진단의 한 해 매출액은 최소 52조7250억원(농협)으로 HDC그룹의 10배가 넘는다. HDC그룹보다 재계 순위가 낮으면서 당기순이익 규모가 큰 곳은 넥슨(1조2570억원)이 유일하다.

HDC그룹의 고성장은 정 회장의 과감한 사업 다각화 전략이 시장에서 통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끊임없이 사업 다각화와 신사업에 도전해 왔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을 종합 부동산 인프라 그룹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눈에 띄는 신사업은 2015년 호텔신라와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한 것이다. HDC신라면세점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2017년 1분기에 흑자를 기록했다. 2~3분기에도 연속 흑자를 내며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HDC신라면세점은 같은 시기 인가를 받은 신규 면세점 중 가장 빨리 적자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또 지난해 2월에는 600억원 투자로 부동산114를 인수해 온·오프라인 비즈니스 플랫폼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밖에 정 회장은 지난해 그룹을 지주사인 HDC와 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로 분할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자체 개발 사업 비율을 높이고 레저와 상업 시설 개발, 임대 등 사업 다각화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는 오크밸리리조트를 운영한 한솔개발을 인수해 ‘HDC리조트’로 새 단장을 마쳤다. 이를 발판으로 HDC그룹은 주택·건축·토목 등 시공 위주 사업을 넘어 임대와 운영 관리·호텔·면세점·유통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정 회장의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 도전은 사업 영역 확장뿐만 아니라 그룹 내 다양한 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