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강문성의 경제돋보기] ‘디플레이션’ 향해 가는 한국 경제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최근 한국 경제에서는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0.4% 하락했다는 발표에 이어 8월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 0.6% 하락했다.

또한 물가 관련 통계치 중 고려해야 하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경제활동을 반영하는 종합물가지수) 역시 2018년 4분기 이후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나타내자 디플레이션에 대한 논란이 정부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은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산물 가격, 국제 원자재 가격 등의 변동 부분을 제외한 근원(core)물가지수를 고려하면 지난 8~9월 미약하나마 상승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자에게는 당장 좋은 일인데 무엇이 문제일까. 이는 물가가 하락하는 이유에 있다. 만약 물가가 하락하는 이유가 생산기술 발전에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즉 생산기술이 발전해 같은 양의 생산요소를 투입하더라도 더 많이 생산하거나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경제의 효율성이 증대돼 경제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해지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수요가 늘지 않아 물가가 하락한다면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총수요 부진에 따라 물가가 하락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물가가 하락하고 있으므로 소비자는 당장 소비하는 것보다 나중에 소비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현재의 소비가 줄어든다.

줄어든 현재 소비는 기업에는 재고 증가를 의미하기 때문에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GDP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이런 인식이 경제 주체 사이에 확산된다면 경기는 점차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본격화됐다고 보기에는 아직은 이른 판단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것은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있고 민간 소비 역시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가 처한 냉철한 현실이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201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가계 부채 규모(지난 6월 말 기준)가 155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간 이자 부담(3% 가정)만 50조원에 이른다.

연간 민간 소비가 900조원을 웃도는 수준을 고려할 때 가계 부채에 따른 이자 부담만으로도 민간 소비의 확대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투자 부진에 이어 민간 소비까지 위축되고 이러한 총수요 부진으로 디플레이션이 확대된다면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투자와 소비가 반응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정책적인 대응 전략의 부재는 일본이 밟았던 ‘잃어버린 20년’의 실마리였다.

미·중 무역 마찰의 지속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점차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 일본 사례를 볼 때 총수요 부진 우려를 간과할 일만은 아니다. 단순히 정부 발표처럼 ‘관리물가’에 따른 소비자물가지수의 하락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정책 당국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증대시킬 수 있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6호(2019.10.14 ~ 2019.10.20)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