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돋보기]
[강문성의 경제돋보기] ‘모범생’ 한국에 ‘성장 진단’이 다시 필요한 이유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2005년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 진단(Growth Diagnostic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로드릭 교수가 해당 논문을 통해 명확히 밝히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 격차를 줄이기 위해 개별 개발도상국 정부와 국제기구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과 성장 수준의 수렴(convergence)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지 못하고 현저한 성장 격차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이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이 논문에선 개발도상국의 추격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관련 정책이 해당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성장 제약 요인(binding constraints)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시행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성장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각국이 지닌 특수한 요인을 식별할 수 있는 ‘성장 진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문은 거시 경제와 개발 경제 분야의 학계뿐만 아니라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주목을 받았고 그 이후 다양한 논의와 추가 연구가 진행됐다. 이 연구에 힘입어 로드릭 교수는 2016년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의 맥밀런 박사 등과 함께 ‘구조적 변화, 기초 여건, 성장’이라는 책을 발간하게 됐다.
이 책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발 경제학에서 중요시하는 구조적 변화와 거시 경제학의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에서 강조하는 기초 여건에 대한 투자가 핵심적인 요인이다.
구조적 변화는 노동력과 자원이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은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제조업 등 산업화가 진행하는데 다양한 제약 요인을 지니고 있다. 또 기초 여건에 대한 투자는 인적자본, 인프라, 제도와 규제 등을 개선하는 정부의 정책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초 여건의 확충은 다양한 제약 요인에 의해 지체되는 상황이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저해한다.
이와 같은 경제 개발, 거시 경제 성장 측면에서 한국은 국제 사회에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즉 한국의 영화·드라마·K팝이 이끄는 한류의 ‘원조’가 사실은 1970~1980년대부터 경제 개발과 성장 분야에서의 한국 경제인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의 경제 성장 경험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지식 공유 사업(KSP)이 그중 대표적인 예다. 이는 개발도상국의 당면한 과제에 대한 수요 조사를 통해 한국의 경험을 전수해 주는 사업이다.
하지만 최근 KSP 사업을 수행하는 전문가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이 KSP 대상 국가가 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현재의 한국이 과거의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한국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 경제가 지닌 성장 제약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로드릭 교수의 논문 이후 발전해 온 ‘성장 진단’을 한국 경제에 적용해 볼 때 한국 경제 역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최근 한국 경제가 경험하고 있는 민간 투자의 부진은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이 겪는 전형적인 문제다. 또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제조업 의존 경제 구조에서 탈피해 지식 경제 기반, 고부가가치 산업 구조로의 전환 역시 시급하다. 규제 공화국인 우리는 과연 지속 성장을 위해 기초 여건 투자와 구조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을까.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